한 곳의 여행지
정말 최근 홍콩 여행을 다녀왔다.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 취업 시장의 한파를 제대로 맛봐서인지, 따듯한 나라로 떠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함께 여행에 가기로 한 친구와 의견을 모아 선택한 여행지 홍콩. 잠깐이지만, 11월부터는 무더위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다. 선선한 초여름 날씨에 기대어 사뿐히 걸어 다니다 보면 그 날씨처럼 걱정과 고민은 훌훌 털어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교적 짧은 비행을 마치고 밟은 홍콩 땅은 푹신했다. 같은 아스팔트 도로여도 습기를 한껏 머금은 탓인지 구름 위를 걷는 듯했달까. 어쩌면 그저 내딛는 발걸음마다 기쁨과 행복이 가득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시내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눈을 붙였다가 뜨기를 반복할 무렵 버스는 우리를 숙소 앞 정류장에 내려줬다. 빼곡한 건물들과 그 사이를 아스라이 지탱하며 걸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어디선가 맡아본 것같은 익숙한 향기.
두 번의 경험
분명 와봤다. 그것도 10년도 더 된 아주 어릴 적! 그땐 다 기억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하며 마지막 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건 어린 마음에서 우러나온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나보다. 분명 익숙한 동네지만 한편으로는 낯설었다. 그간의 기억이 휘발된 것일까. 하나 명백히 기억나는 것은 너무나도 습한 여름이었다는 것이다. 맞다, 추석 연휴를 맞아 9월에 가족들과 홍콩에 방문했었지. 물속을 거니는 듯한 습기로 온몸을 흠뻑 적셨던 아찔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다행히도 다시 찾은 11월의 홍콩은 바람이 선선히 불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똑같은 여행지에서 지루함을 발견하지 않길 바라며 첫 걸음을 옮겼다.
친구와 처음으로 챙긴 끼니는 딤섬이었다. 연일 컵라면과 덮밥류로 끼니를 때웠던 과거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홍콩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속이 허전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더니, 그 이야기가 나의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렸다. 그땐 어찌나 싫었던지 고등학생 때 홍콩식 아침 죽, ‘콘지’를 주제로 말하기 대회에 참가했었다. 주제는 <내 생애 최고의 음식>. 물론 내 발표문은 최고로 별로였던 음식을 토로하는 쪽이었다. 지금껏 경험한 음식 중에 그보다 더 강렬한 기억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먹은 모든 음식이 별로인 것은 아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도, 에그타르트는 과거나 현재나 기대만큼 고소하고 입에서 살살 녹았다.
에그타르트 외에도 홍콩에는 참 유명한 것들이 많다. 도심을 가르며 지나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 반짝이는 야경들과 화려한 네온사인은 어릴 적에도 분명히 느꼈던 것들이다. 이번에 마주한 것들 역시 변함없이 기억속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당시엔 영화 <중경삼림>을 몰랐고, 지금은 너무도 잘 안다. 페이와 663의 이야기가 습한 공기를 뚫고 물감처럼 번지던 어지러운 연출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어지러움과 혼돈 한가운데 무언의 질서가 서려있는 홍콩의 모습이 맞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전혀 모르던 새로움도 느꼈다. 첫 번째로는 마침내 방문한 디즈니랜드에서의 추억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디즈니랜드지만 동심으로 돌아가 가장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서구룡 아트파크와 현대미술관처럼 개방,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다채로운 건축물이 보여주는 한층 더 화려해진 홍콩의 모습이다. 과거의 모습에서 레이어드처럼 켜켜이 쌓이는 눈 앞의 풍경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 번째로는 밀접하게 바라본 그곳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었다. 정해진 코스 대신 로컬 맛집에 직접 발로 찾아가 좁은 공간 속 부대끼며 따듯한 완탕면을 나누던 틈 사이에서 왠지 모를 애틋함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세 개의 기억
흔히 홍콩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빽빽함에 압도된다. 10년 전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보다 몸도, 마음도 더 작은 꼬마아이였으니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이나 이질적이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처음으로 떠난 해외여행지였기에 부모님 뒤에서 바라본 세상은 그저 광활함 그 자체였다. 어린 나를 가만히 꺼내 올려 친구와 두 번째 여행을 떠났고, 3박 4일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빛바랜 기억과 동고동락한 이번 여정의 끝에서 느껴진다. 그때도, 지금도 아닌 어떤 기억이 또 희미하게 만져지는 것만 같다. 두 번째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조금 더 깊어진 마음으로 여행지의 꿈을 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습했지만 시원했고, 맛없지만 맛있었고. 지루했지만 즐거웠다. 10년 전과 지금, 두 번의 경험으로 빚어진 세 개의 감각이, 홍콩 단 한 곳의 여행지로 남아있다. 시장의 생화 향기와 기름진 음식 냄새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고, 그게 곧 화음처럼 들려오던 코 끝의 음표. 그걸 나도 모르게 따라나섰던 순간을 움직이지 않게 다이어리에 핀으로 고정해뒀다.
화려하고 입체적인 홍콩이 그렇게 바로 내 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