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서양미술 600년 한눈에
60명의 서양 미술 거장 작품 65점이 한자리에
해외 반출 없던 상설 컬렉션 25점, 한국에서 최초 공개
언제부터였을까. 어디에서 어디까지, 누구에서 누구까지라는 제목의 전시가 흔해지기 시작한 건.
사실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의 이유에서 흥미가 가지 않았는데 전시 소개를 살펴보니 구미가 당겼다. 누구의 어느 작품이 아니라 미술사조를 훑는 구성에 샌디에이고 미술관 개관 100주년을 앞두고 첫 외부 반출 작품까지 있다니 마치 한정 마케팅에 홀린 것처럼 ‘이건 봐야 해’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전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본격적이었다. 이런 말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모처럼 ‘전시 다운 전시’라고 느껴졌다.
필기구와 음식물, 그리고 커다란 카메라 반입 금지, 촬영은 일부 작품만 가능. 예전에는 흔했던 규정인데 sns 마케팅과 미술관 문턱 낮추기가 맞물려 미술관이 포토존이 되는 게 자연스러워진 현재에서는 보기 드문 규정처럼 느껴졌다.
입장한 순간 강렬한 붉은 벽과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로고, 그리고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 첫 작품을 보기도 전, 한 걸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굉장히 공을 들인 전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의 해설 영상을 두어 각 섹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 그리스도의 체포, 패널에 유채와 템페라, 1515년경
섹션 1: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해당 섹션에서 가장 신선했던 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이었다. 마이클 브라운이 영상에서 몇 번이고 언급하고 강조했던 ‘보스’가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작품 수도 적거니와 한국에서는 작품이 전시된 적 없는 작가였다.
기독교에 대한 정보가 적은 편이라 작품에서 사용한 색채의 의미나 헤일로 표현을 눈여겨보는 편인데 보스의 작품은 화풍부터가 독보적이었다.
고요한 모습의 그리스도와 몰래 빠져나가는 유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린 베드로까지 모든 게 인상적이었다.

앤서니 반 다이크,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1636~1638년경
섹션 2: 바로크
르네상스의 종교화 중심에서 세속적인 주제의 풍경화, 풍속화 등으로 장르가 확장되는 시기라서 전시된 작품 수가 적더라도 작품은 다채로웠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다고 하면 궁정화, 귀족의 초상화의 원형처럼 느껴지는 반 다이크의 작품이었다.
영국 왕비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상을 보면, 광택감이 드러나는 풍성한 드레스, 진주 액세서리와 손에 쥐고 있는 꽃에서 우아함과 기품이 드러난다.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기품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하느님의 어린 양, 캔버스에 유채, 1635-1640년경
섹션 말미를 장식하고 있는 수르바란의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엄숙한 분위기에서 양이라니? 하면서 보는데 어린 양의 머리 위에는 후광이 있었다. 그렇다. 평온하게 누워있는 경건한 어린 양은 구세주 예수였다.

베르나르도 벨로토, 베네치아, 산 마르코 분지에서 본 몰로 부두, 캔버스에 유채, 1740년경
섹션 3: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그린 듯한 풍경이다. 성당과 시계탑, 그리고 궁전까지 인상적인 모든 게 한 폭에 담겨있는 이 작품은 그랜드 투어 유행이었던 당시, 각광받는 도시인 베네치아를 방문한 한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으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언뜻 보면 베네치아를 이상적으로 그려낸 어떤 풍경화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당시의 유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메리 카사트, 푸른 보닛을 쓴 시몬느, 캔버스에 유채, 1903년경
섹션 4: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격동적인 사회의 변화와 함께 예술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던 시기, 예술은 일상과 친밀해지기 시작했다. 같은 인물화더라도 이전까지의 경직된 느낌은 사라지고 사적인 공간, 친숙한 인물, 밝은 색채가 두드러진다.
메리 카사트는 아이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지 않는다. 구도나 소품을 이용한 위엄과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정말 평범한 여자아이의 모습.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서 수줍음이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막시밀리앙 뤼스, 노트르담 대성당, 캔버스에 유채, 1900년경
섹션 5: 20세기의 모더니즘
좋아하는 시기이고 좋아하는 화가도 많다.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하고 이전까지 본 적 없는 작품을 통해 화가들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는데 그것들을 넘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뤼스의 점묘화였다.
점이 한데 어우러져 색채를 이루는데 내가 보고 있는 색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카메라도 가져다 대었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아야만 알 수 있는 작품. 뤼스는 노트르담 대성당은 여러 날 여러 모습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어느 계절의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한 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푸른 어둠이 곳곳에 있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밀도 있는 전시다.
600년 서양 미술사를 한 곳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 미술사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이 전시로 입문하시면 됩니다’라고 소개할 법한 그런 전시. 반대로 말하자면 미술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유명 작가의 유명 작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벨라스케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어야 무난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