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검색 한 번으로 전세계의 명작들을 볼 수 있는 시대이다.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연 뒤 포털사이트나 A.I를 활용한 앱을 활용해 보고 싶은 작품 이름 하나만 검색해도 그에 관련한 정보와 사진, 심지어는 활용할 수 있는 굿즈까지 쏟아지는 정보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실제‘에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나 그림과 사진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마주할 수 있음에도 아직까지도 꼬박 15시간을 날아가 유명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급변하는 정보의 시대에서 고전 명작의 존재가 주는 이유를 이번 전시를 통해 알아보게 되었다.
샌디에이고에서 날아온 편지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전시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개관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전시이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그리고 모던아트에 이르는 600년의 서양 미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상설 소장품 65점이 최초로 공개되며, 그중 25점은 세계 최초로 해외 반출되는 의미 있는 전시라고 한다.
전시에 들어가게 되면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대한 소개와 전시에 대한 설명 영상이 관람객을 반기게 되는데 캘리포니아의 따뜻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광화문에까지 느껴졌다. 인상 깊었던 점은 이번 전시가 단순히 서양의 미술사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천재이기 이전에 한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기장을 읽는 것처럼 그들의 관계와 서로가 작품에 미친 영향까지 큐레이션 한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각 섹션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마이클 브라운 박사‘가 직접 명화에 대해 설명하는 < 명화의 순간들 > 영상이 배치되어 있어 작품이 주는 의미와 그 시대의 상황, 작가들이 겪던 역사까지 입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1차원적으로 단순히 작품을 보는 것보다 훨씬 풍성하게 작품을 느낄 수 있게 큐레이팅 된 점이 이번 전시가 얼마나 ‘소통’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시각으로 느끼는 생명력
서양 미술사의 600년의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들을 소개하는 전시인 만큼 시대별로 흐름에 맞춰 전시 방향이 진행되었다.
눈길이 가던 점은 시대마다 전시장의 벽 색깔이 달라지는 것이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 시대는 진한 보라색과 자주색을, 로코코와 신고전주의에선 진한 녹색을,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 부분은 심해 같은 깊은 푸른색을, 마지막으로 20세기의 모더니즘에선 부드러운 분홍색을 칠하였다. 이는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들이 주로 보여주던 이야기와도 관련 있는 색처럼 보였는데, 진한 보라색과 자주색을 띠던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와 종교 속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이 많아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미스터리하면서 성스러운 시대의 반영을 무거운 색으로 보여준 듯했다.
전시장의 인테리어도 성스러운 느낌이 나게끔 마치 성전 안에 있는 듯한 디자인 속에 작품을 배치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초대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진한 녹색으로 보이는 로코코와 신고전주의 작품들은 바로크 시대의 무거움을 벗어나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한 왕가 모습을 특징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프란시스코 고야‘와 ‘베르나르도 벨로토’ 등의 작품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생기 넘치면서 우아한 균형을 유지하는 명작들을 돋보이게 끔 색을 잘 선택한 것 같았다.
19세기 혁명과 산업화를 거치며 예술에도 큰 변동이 일어났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이 사실주의와 인상주의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런지 깊은 심해의 색을 닮은 진한 푸른색으로 전시장이 표현되었다. ‘클로드 모네’와 ‘에드가 드가‘ 와 같은 빛과 색채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가들이 많은 시대여서 그런지 역동적이고 과감한 붓 터치가 인상적인 작품들과 푸른색이 띄는 차분함과 생명력이 잘 어우러지는 섹션이였다.
마지막으로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20세기 모더니즘’ 섹션은 부드러운 분홍색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확실히 지난 섹션들이 띄고 있던 원색들을 보다가 채도가 낮아진 전시장으로 들어가니 묘하게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서 처음으로 분홍색을 발견한 사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모더니즘의 작품들은 전통을 거부하고 작가들의 시선과 생각이 담긴 추상적이고 색채가 눈에 띄는 명작들이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막시밀리앙 뤼스‘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피에르 보나르‘의 몽퇴씨의 초상은 작품 속 곳곳에 분홍색이 점묘법으로 스며들어 있어 전시장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이번 전시를 통틀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도 모더니즘 섹션에 있었는데 ’호야킨 소로야‘의 라 그랑하의 마리아와 ‘수잔 발라동’의 창문 앞에 있는 젊은 여인 두 작품이다. 특히 ‘라 그랑하의 마리아’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공식적으로 첫 기증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작품 특유의 투명함에 계속 눈길이 가는 명작이었다. 모든 섹션 중 개인적으로 모더니즘의 작품들이 특히나 사진으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색감과 붓 터치를 보여주었는데 직접 작품과의 눈 맞춤을 할 때 느껴지는 생명력이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가장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청각으로 느끼는 시대의 풍미
이번 전시에서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바로 섹션 별로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했다는 것이다.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넓은 공간이 주는 울림과 사람들의 조용한 웅성거림 속에 관람을 하거나 도슨트를 듣느라 이어폰을 꽂고 관람한 기억이 많다. 그러나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에서는 작품에 집중하다보면 작게 들려오는 음악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을 보는 것을 넘어서 그 시대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은 체험 선사해 줬다. 이번 전시의 음악 감독이 직접 선정해서 그런지 자칫 음악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생각의 자유를 방해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그 시대를 풍미 있게 맛보게 하면서 내가 이 시대에서 이 그림을 처음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까지 불러일으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섹션의 음악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인데 바로크 시대 작곡가 쿠프랭(Couperin)을 오마주한 프랑스 작곡가 라벨(Ravel)의 ‘Le Tombeau De Couperin’을 선곡했다는 점이었다. 음악 감독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문답‘이라는 주제 의식을 통해 시대와 시대의 연계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선곡을 했다 한다. 과거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모습도 동시에 보여주는 주제가 이번 전시의 핵심인 ‘소통’으로서의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 색다르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예술은 왜 존재하는가, 어떤 미드(미국 드라마)의 에피소드 중에는 흉측한 조각상이라도 그로 인해 사람들이 소통하기 때문에 예술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잇는 미술관’이라는 비전을 갖고 있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마음처럼 시대와 시대를 잇는 입체적 경험과 공간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는 모두에게 스스로 소통하는 큰 원동력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