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연말, 국립오페라단은 바그너 예술의 정점으로 꼽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무대에 올린다. 이 작품은 2012년 정명훈의 지휘 아래 콘서트 오페라 형식으로 국내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전막 그대로 무대화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연 시간이 무려 5시간 40분에 달해, 이례적으로 평일에도 오후 3시부터 공연이 시작된다.
인간의 사랑과 욕망을 철학적으로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독일 켈트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코른웰의 왕 마르케의 조카인 트리스탄은 아일랜드 공주인 이졸데를 왕의 신부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졸데는 과거 자신의 약혼자를 죽인 자가 트리스탄임을 알게 되고, 굴욕적인 결혼을 하느니 죽음을 택하고자 트리스탄과 함께 독약을 마시려고 한다. 그러나 시녀 브랑게네가 그것을 사랑의 묘약으로 바꿔 버리고, 둘은 지독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밀회를 이어가던 이들의 관계는 왕의 심복인 멜롯에 의해 발각되고, 트리스탄은 결투를 벌이다 치명상을 입는다. 트리스탄은 고통 속에서 다시 이졸데를 만나게 되자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이번 공연은 서울시향이 13년 만에 오페라 연주에 나서며, 세계적인 '바그너 스페셜리스트' 얍 판 츠베덴(Jaap van Sweden)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만큼 깊이 있는 해석과 압도적인 음향미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무대 공간은 스위스 출신 슈테만 메르키(Stephan Märki)의 현대적인 해석으로 재탄생해 원작의 '바다 위 항해가 아닌 '우주의 여정'으로 표현된다.
메르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서사에서 사랑의 좌절과 비극이 아닌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우주 그리고 자유로움에 초점을 맞췄다. "사랑과 자유를 제한했던 세계를 뒤로 하고 무한하고 자유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는 거대한 우주선 형태로 그려지며, 우주 공간을 시각화기 위해 조명과 거울 등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우주복, 방어복, 해군복에서 영감을 받은 의상은 극 후반부에서 ‘새로운 세계를 마주했을 때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액체처럼 흐르는 질감이 더해질 예정이다.
세계적인 바그너 스페셜리스트들의 캐스팅 역시 주목할 만하다.
트리스탄 역에는 당대 최고의 헬덴테너, 스튜어트 스켈톤(Stuart Skelton)이 맡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의 대표 레파토리로 “어두운 음색을 갖고 트리스탄의 복잡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들려줬다”는 평을 받았다. 그는 바그너의 <발퀴레>를 얍 판 츠베덴이 지휘하는 홍콩 필하모닉과 음반으로 녹음하고, 베를린 필하모닉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협연하는 등 전 세계 바그네리안의 사랑을 받고 있는 테너다.
그와 호흡을 맞출 이졸데 역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캐서린 포스터(Catherine Foster)가 맡는다. 그녀는 2023년 메르키 연출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이졸데 역을 소화했으며 이 당시 “신비로운 동화 속 생물처럼 연주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고통받는 존재로 분했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트리스탄에는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Bryan Register)가 출연한다. 바리톤풍 음색과 극적인 표현력을 자랑하는 그는 평론가 들로부터 “괴물 같은 연기”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졸데의 또 다른 캐스팅은 체코 출신의 소프라노 엘리슈카 바이소바(Eliška Weissová)다. 그녀의 폭발적인 에너지는 무대에 새로운 긴장감을 더할 것이다.
이번 무대에는 국립오페라단이 발굴한 신예 성악가도 함께 한다. 지난 8월에 열린 제 24회 국립오페라단 성악콩쿠르 금상 수상자인 테너 이재명은 마르케 왕의 심복, 멜롯 역으로 출연해, 신선한 에너지를 발산할 예정이다.
우주 속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노래로 국내 바그네리안의 마음을 울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오는 12월 4일부터 12월 7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