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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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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내가 머릿속으로 상상만 하던 이야기를 실체화된 글로 풀어내고자 고른 전공이었지만, 야심찬 포부와는 달리 나의 글은 점점 초심을 잃어가 목표 없이 나뒹구는 표류 상태가 되었다. 복수전공으로 수업을 들어야했던 탓에 매번 전공과목만 5개씩 들어야했고, 어느새 수많은 과제 제출일이 깨끗했던 캘린더를 더럽히기 시작했다.


과제 폭풍에 휩쓸리다보니 내게 글쓰기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고, 나의 이면을 투영하는 거창한 과업이 아닌 그저 빨리 해결하고 처리해야 할 골칫덩이가 되어있었다. 어느 정도로 스트레스였나면, 어릴 적 학원 숙제가 너무 하기 싫어 답지를 구해 적절히 베꼈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를 정도였다.


어릴 적 답지를 베낀 것처럼 다른 글을 표절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마감 시한만 맞춰 제출한 과제를 다시 읽는 건 내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합평을 준비할 때도, 받을 때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한 학기를 보내다보면 어느새 단편 소설 두 개와 시 대여섯편, 희곡 한 편, 두 개의 비평문이 노트북 폴더 안에 쌓여있었다.


뿌듯함보다는 의심이 머리를 메웠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부터 나의 글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것에 의구심이 들었다. 의문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외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엔 내가 헤쳐 나가야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했다. 사실 멀리하고 싶지도, 싫어지지도 않았지만 직장에 들어가 이런 저런 짜증에 시달리다보니 노트북 화면에 할애할 에너지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쩌다 퇴사를 하게 되었고 무언가 쓰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려던 찰나, 두꺼운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무작정 노트북을 펴 타이핑으로 감정을 배설하기보다 글쓰기를 다룬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책이 살만 루슈디의 [진실의 언어]였다. 게으름 탓에 세계문학엔 문외한이었지만, 어쩐지 우리나라가 아닌 타국의 거장에게 끌렸다. 그리고 이 우연한 선택은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의문을 선명하게 비추게 되었다.


 

 

이야기를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 – 고전에서 답을 찾다


 

이 책을 쉽게 요약하기 위해 과거 화제가 되었던 박찬욱 감독의 인터뷰를 인용하려한다.

 

그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요즘 영화도 좋지만 옛날 영화도 유심히 보고 공부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선배 영화인으로서 하는 슬기로운 조언으로 비춰질 수 있다. 이 인터뷰가 이슈가 된 건 다음으로 언급된 이유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은 요즘 영화를 베끼면 표절 시비가 걸리지만 옛날 영화, 그 중에서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영화를 베낀다면 뭔가 있어 보이고 세간의 인정을 받는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었다. 베꼈다는 표현이 어딘가 거슬릴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했을 때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표절, 오마주간 애매한 차이를 명확히 설명해주는 대답이 된다.


살만 루슈디도 이와 비슷한 논리를 펼치며 자신의 생각을 차근차근 정립해 나간다. 심지어 그는 고전이 참고로 했던 신화의 기원을 언급하며 태초부터 인간이 이야기를 갈구했던 존재임을 증명한다. 이야기는 태초에 노래로 불리고, 종교와 연결되며 신화가 되고, 그 신화가 시간과 공간의 변동을 거치며 고전이 되는 과정. 그리고 이렇게 탄생한 고전이 다시 현대 문학, 우리가 즐기는 여러 이야기로 재탄생한 결과가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다.


저자인 살만 루슈디는 머나먼 나라의 거장인 만큼, 문화권도 우리와 아주 상이하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문학 세계와 펼치는 논리는 우리나라의 독자가 보아도 충분히 공감할 만큼 적절하고 체계적이다. 책 속에는 이야기를 원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욕구부터 자유의 제한, 차별, 혐오 등 사회 문제에 대항하는 문학의 기능까지. 독자로서 또는 작가로서 생각해볼만한 내용들이 충실히 담겨 있다.


책에 담긴 다양한 내용 중 필자가 개인적으로 공감했던 부분은 현실에 빗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조언은 내가 썼던 글, 이야기를 넘어 많은 창작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견이라 생각한다. 우리 문학계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으로 문학의 색깔을 정의하지만, 살만 루슈디는 신비로운 세계를 다룬 고전이야말로 철저히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 이야기한다.


이는 작품을 창작할 때에도 도움이 되지만 역으로 고전에서 당대 사람들과 작가가 바라보는 시각을 이해하는데도 좋은 수단이 된다. 이처럼 [진실의 언어] 안에는 독자로든, 작가로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꼭 소장해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내 글이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게 된 건, 생각이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제로 내는 글이라던지, 마감 시한에 쫓겨서 낸 글이라던지. 이런 이유는 핑계이지 않을까. 본질은 나의 마음이 너무나 어지러웠을 뿐인데.


살만 루슈디의 [진실의 언어]를 읽으며 알게 된 결정적인 사실은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나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재밌게 해주는 것이든 자신의 생각을 사회의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든. 결국엔 내가 글을 통해 비추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깨우치는 게 우선이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게 될지, 어떤 이야기를 담게 될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이 책이 내게 훌륭한 글쓰기 지침서가 된 건 분명하다. 이 책을 통해 이전처럼 쫓기지 않고 내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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