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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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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소설 『기록실로의 여행』에는 기억을 잃은 채 어딘가에 갇힌 노인이 나온다. 스스로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저 ‘미스터 블랭크’라 불리며 외부에서 주어지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자신의 상황을 해석해야 하는 처지다.

 

작가와 독자, 인물 간의 경계를 흔드는 이 소설에서 홍콩 시립현대무용단(CCDC)의 예술감독 상지자는 영감을 받아 ‘Mr. Blank’를 만들었다. 2018년 초연한 이후 지속적인 변화를 거친 이 작품이 ‘홍콩위크 2025@서울’을 맞아 ‘Mr. Blank 2.0’으로 서울에서도 관객을 만났다.


막이 오르면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반투명한 유리벽이 설치되어 있다. 유리벽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열댓 명의 무용수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져 각자 무작위적이고 반복적인 동작을 수행한다. 무언가를 휘갈겨 쓰고, 벽을 두드리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벽에 기대어 서 있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고, 동작이 겹치지도 않는다. 물리적으로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각자 고립된 현실에 갇힌 듯한 모습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이 공간에서 불안해하고 강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정도다.


무용수들은 자신의 동작에 몰두한 나머지 문이 열리고 빛이 새어 들어올 때도 눈치채지 못한다. 열린 문으로 교도관 같은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기존의 무용수들은 이들과 대립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도 이 공간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이 공연에는 명확한 적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불안하고 답답하다는 감정만 품고 괴로워할 뿐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억압하는 주체는 보이지 않는데 억압당하는 감정과 느낌만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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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의 위치도 독특하다.

 

유리벽의 존재는 관객이 무대에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다. 관객은 공연을 감상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관객이 무용수의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장에 와 있다는 전제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다. 때로 무용수들이 유리벽을 두드리거나 객석을 응시할 때면 오히려 관객이 관찰의 대상이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대 바깥에 설치된 여러 대의 모니터는 CCTV처럼 무대 곳곳을 비춘다. 처음에는 관객이 무대를 더 잘 볼 수 있게 돕는 장치처럼 보이지만, 공연이 진행될수록 모니터는 시선을 더 분산시킨다. 무대의 일부만을 보여줌으로써 의도치 않게 현실을 왜곡하고,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관객이 길을 잃게 만든다. 무용수들이 같은 장소에서 다른 현실을 살듯, 관객도 같은 공연을 보지만 서로 다른 장면을 목격한다. 누군가는 주의 깊게 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예 없었던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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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차례 암전 후 무용수들은 둘, 셋씩 짝지어 상호작용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역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반복될 뿐이다. 어떤 움직임도 유리벽을 넘어서지 못한다. 한 무용수가 무대를 돌며 계속 날려 보내는 종이비행기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 무의미한 순환과 더불어 벽을 치는 몸의 소리, 절규, 거친 숨소리는 관객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여러모로 불편한 공연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까닭은 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찾고 싶어 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억압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초상이다. 목소리는 좀처럼 합쳐지지 않고 파편화된 개인은 자기 강박에 빠져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소통할 방법이 없고 시도도 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달로 정보와 이미지가 범람하지만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현대인의 불안은 외부의 뚜렷한 적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의 적이 부재하고 모든 것이 관점의 차이라는 인식이 근원적인 불안을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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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서 무용수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비로소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한다. 군무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몸짓이 모여 의미를 만들어내고, 다함께 유리벽을 두드리며 깨고 나오려 한다. 한 사람이 유리벽을 두드리는 소리는 불안감으로 다가오지만 모두가 함께 두드리는 소리는 저항의 에너지로 느껴진다.

 

잠시나마 관객의 시선은 무대 중앙으로 모이고, 모니터를 힐긋대지 않아도 무대 전체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암전이 찾아오고 나면, 무대는 가장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무용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고립된 채 무의미한 움직임을 반복한다.


무용수들이 벽을 부수거나 탈출한 게 아니라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작품은 카타르시스 대신 씁쓸함을 남긴다. 관객은 공연이 끝나도 끝난 것 같다는 느낌을 쉽게 받지 못한다. 무대 위 감시하에 무용수들의 반복되는 움직임이 우리의 일상과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강박을 깨고, 나에게로 수렴하는 움직임 대신 세상으로 나아가는 움직임,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어떻게 가능할까.

 

공연은 답을 제시하는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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