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일주일에 한 편씩 오피니언을 기고하다 보니 에디터 활동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그간의 노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하나의 증표로서 컬쳐리스트에 초빙되었다. 잘 써진 날도, 못 써진 날도, 후련한 날도, 찝찝한 날도 있었지만, 끝은 곧 새로운 시작으로 탈바꿈했다. 다시 문화예술을 깊이 향유하고 글을 쓸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에 마냥 기뻤다. 처음 에디터로 선정되었던 날도 그랬는데, 부족함에서도 가능성을 봐주시는 아트인사이트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컬쳐리스트가 되고 나니 기고 탭도 다양해지고, 문화초대의 폭도 한층 넓어졌다. 그럼에도 에디터 시절부터 가장 기대했던 건 다름 아닌 ‘모임’이었다. 글쓰기를 주제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산 넘어 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산 넘어 산(^^^)의 시작


 

‘글쓰기’를 주제로 같은 기수의 세희님, 수빈님과 모이게 되었다. 에디터로 활동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가시적인 독자나 평자가 없다는 점이 막막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지인에게 보여주자니 오글거림과 민망함이 몰려왔고, 혹독한 비평 앞에 굳건할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마음 따뜻한 두 명의 글쟁이이자, 든든한 독자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달에 한 번 정도였지만, 우리는 각자의 문장을 쪼개 읽으며 대화를 나눴다. 부족한 점이야 들춰보면 한 트럭은 나오겠지만, 세희님과 수빈님은 내가 쓴 글을 읽으면 ‘이미지’가 그려진다고 했다. 세상이 이보다 착한 비평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 덕분에 막막함의 담이 조금은 허물어진 듯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였을까, 세희님이 우리 셋의 이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셨다. 모두 이름에 ‘ㅅ’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름 가운데 글자에 말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ㅅ’과 닮은 ‘^(윗꺽쇠)’를 세 개를 이은 ‘^^^’가 모임의 이름이 되었다. 언뜻 보기에 산 모양으로도 보이는듯 싶어서 , ‘산 넘어 산’이라고 읽기로 했다. 글쓰기란 다소 험난한 이 과정이 곧 산을 넘는 일 아니던가.

 

 

 

뮤즈(Muse) 유인하기


 

뮤즈는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다. 예전에는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우연히 굴러들어 온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읽지 않더라도 책장을 채우고, 졸더라도 영화관에 가야 뮤즈의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다.

 

당장 마감이 코앞인데, ‘야먀(이것도 산이네!)’도 정하지 못했을 때는 괜히 속이 울렁인다. 그래서 하나 얻어 걸리라는 마음으로 평소 주위에 미끼를 뿌려두곤 한다. 그렇게 해서 뮤즈와 원만한 합의를 마치면, (수빈님의 표현을 빌려) ‘작두를 타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래서 글 자체에 대한 애기뿐만 아니라 각자의 영감 출처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서 글감을 찾는 일은 씨앗부터 일일이 경작하는 일이라면, 서로 소재를 공유하는 건 모종으로 받는 일이다. 어려운 과정을 하나 건너뛰는 셈이다.

 

뮤즈는 늘 가까워졌다가도 놓치기 일쑤지만, 셋이 함께 코너로 몰면 할 만한 작업이 된다. 덕분에 모임 날에는 볼거리, 읽을거리가 한층 풍성하다.

 

 

 

누가 누가 잘 쓰나, 소비 자랑하기 대회


 

‘^^^’의 중심에는 글쓰기(Writing)도 있지만,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가 ‘돈 쓰는(Shopping)’ 일 즉, 소비 공유하기다. 책, 다이어리처럼 글쟁이다운 것들도 있고, 키링, 파우치, 옷처럼 ‘나다운’ 것들도 있다. 소비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비대면 모임이라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각자의 소비를 들여다보며 자연스레 서로를 알아갔다.

 

 

낚시.jpeg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세희님의 ‘낚시 장난감’이다. 작은 물고기 모형을 자석 낚싯대로 건져 올릴 수 있는데,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난다. 최근에 집중력이 떨어질 때마다 무릎에 두고 낚싯줄을 내리신다고 한다. 이상하게 마음이 진정되는 건 덤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집중을 위해 오히려 주의를 돌리는 역설적인 의식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 또한 마시지 않아도 커피 한 잔은 꼭 내려두고 시작한다. 어느 날은 입도 대지 않고 얼음이 다 녹아버린, 더는 ‘아아’라고 부를 수 없는 음료가 남는다. 그래도 그만큼이 집중한 거라 위안을 삼기도 한다. 우리는 글을 위해 이렇게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글쟁이의 기댈 구석


 

최근에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미미한 슬럼프였을지도 모른다. 달에 한 번 기고하면서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오히려 글의 밀도가 떨어진 듯했다. 주어진 지면을 제대로 채우지 못할 때, 괜스레 죄책감을 들었다. 다만, ‘^^^’이 없었다면 이런 고민을 나눌 곳도 없었을 것이다.

 

 

IMG_5697.JPG

 

 

우리말에 쌍시옷(ㅆ)은 있어도 시옷(ㅅ)을 세 개 붙인 글자는 없다. 하지만 ‘산 넘어 산’은 그냥 그 시옷 세 개를 붙여 버리기로 했다. 산이 기대어 있는 모양이 퍽 귀엽고, 정답다. 산 넘어 산이면 가다가 지칠 법도 한데, 기대어 오르다 보면 그 길도 완만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첩첩산중(疊疊山中) 글쓰기 여정도 이 정도면 할 만 하다.

 

모임의 끝을 아쉬움으로 남겨두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언제 어떻게 안부가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은 나의 기댈 구석, ‘ㅅ’과 닮은 사람들(人)이 있다. 내 이름의 시옷은 어딘가 뾰족해 보였는데, 어느새 이토록 따뜻한 글자가 되어버렸다. 나도 그들의 기댈 구석이 되려면 약간의 서운함을 품고 다음 글을 쓰러 가야 한다, 총총.

 

  

백승원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저장증을 고치기 위해서 날을 정해 물건을 버리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