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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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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튜브에서 유리아 배우가 부른 〈사랑은 마치〉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배우의 청아한 목소리와 노래의 섬세한 음색이 잘 어우러져 한동안 정말 많이 반복해 들었었다. 그렇게 즐겨 듣던 곡을 실제 무대에서 듣게 될 생각에 공연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니버설아트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레드북〉이라는 공연 제목처럼 붉은색과 금빛이 어우러진 화려하고 중후한 무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 고전적인 미장센은 빅토리아 시대 런던의 겉으로 보기에 완벽하지만 속으로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상징하는 듯했다. 마치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온 듯한 기분 속에서, 나는 이 화려한 배경이 곧 안나의 자유로운 정신과 강렬하게 대비되리라 예감했다.

 

뮤지컬 〈레드북〉은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분위기가 짙은 런던을 배경으로, 사회적 규범에 맞서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여성 작가 안나의 여정을 그린다.

 

작품의 핵심 메시지인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단순한 여성의 성장담을 넘어,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신을 정의하고 세상에 증명하려는 모든 개인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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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안나 역의 아이비는 안정된 감정선과 풍부한 표현력으로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이끌었다.

 

특히 〈로렐라인 언덕의 여자들〉을 함께 부르는 장면에서는 능청스러운 유머와 카리스마를 능숙하게 오가며 극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그가 유머러스한 모습 아래 숨겨진 안나의 고독한 작가 정신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내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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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성과 원칙만을 숭상했던 변호사 브라운이 안나를 만나 점차 감정적 이해와 따뜻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극의 중요한 축이다.

 

브라운 역을 맡은 지현우는 처음에는 고지식하고 답답하지만, 안나의 진실 앞에서 점차 세상의 편견을 깨고 성장하는 신사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로렐라이 언덕 멤버들을 비롯한 앙상블은 그 자체로 유쾌한 연대와 활력을 불어넣으며, 무거운 시대극의 공기를 환기하는 감초 역할로 공연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음악적 스펙트럼과 대조 


 

가장 인상 깊었던 넘버는 예상대로 내가 극의 시작점으로 삼았던 〈사랑은 마치〉였다.

 

사랑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바라보던 안나와 브라운이 점차 상대의 관점을 이해하고, 진정한 관계의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졌다. 이 넘버는 사랑의 가치를 영원불변함이 아닌 끊임없는 변화와 이해에서 찾는 안나의 진리를 설파했다.

 

반면, 보수적인 신사들이 자신들의 견고한 틀을 노래하는 〈신사의 도리〉는 그 우아한 선율 아래에 깔린 시대적 편견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며 음악적 대조를 이루었다.

 

이처럼 유쾌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음악적 구성이 160분의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붙잡아 두는 힘이었다.

 

 

 

주제의 응축과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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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작품의 주제가 응축된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은 시대의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안나의 신념을 폭발적으로 드러낸다.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성애의 내용을 다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상황에서도 안나가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특히 법정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안나는 정신 질환을 주장하면 선처를 받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작품을 읽은 독자들의 진심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겉으로는 미련해 보일지라도, 그 선택 속에는 세상의 시선보다 자신의 진실을 택하는 안나의 숭고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이 장면에서 안나를 향한 조명이 그녀의 주변을 완전히 어둠 속에 고립시키며, 홀로 진실을 택한 주체적 인간의 고독한 용기를 더욱 극적으로 각인시켰다.

 

 

 

시대극의 외피, 현대를 향한 질문


 

지난 시대를 돌아보면,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레드북〉은 그 역사를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게 그려내며, 여성들이 자유를 쟁취하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한다.

 

이처럼 〈레드북〉은 시대극의 외피를 지녔지만,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나는 나를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타인의 평가와 검열 속에서 스스로를 지우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안나의 '레드북'은 그 답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상징적인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내 안의 진실을 기록하는 ‘나만의 기록’을 시작할 용기를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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