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째 가을을 수놓는 음악 축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2025
2007년 시작된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rand Mint Festival, 이하 GMF)은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매년 가을 열리는 대표적인 인디 음악 축제다. 올해로 19회를 맞은 GMF는 '한국형 어반 뮤직 페스티벌'의 원형으로 평가받으며, 한 세대의 음악 감수성을 형성해 왔다.
GMF는 대형 무대나 해외 스타 대신 '도시 속 피크닉', '가을의 음악 정원'이라는 고유한 정체성을 선택했다. 국내 인디와 모던 팝 뮤지션을 중심으로 한 라인업 구성은 이 축제의 핵심 전략이다. 잔디밭 위 돗자리, 프로그램 북을 든 관객들, 서늘한 가을 공기 속 울려 퍼지는 라이브 사운드. 이런 요소들이 어우러지며 GMF는 단순한 음악 행사를 넘어 가을을 상징하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GMF의 성장은 2000년대 후반 한국 인디 음악의 자생적 확장기와 궤를 같이한다. 당시부터 현재까지 국내 인디씬의 흐름을 기록해 온 이 축제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음악 시즌을 준비하는 상징적 행사로 기능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월 18일 토요일, 올림픽공원 곳곳은 GMF의 첫째 날의 열기로 가득 찼다.
10월의 공기는 서늘했지만, 올림픽 공원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부드러웠다. 올림픽공원에 들어서자, 잔디 위로 퍼지는 드럼 리듬이 가장 먼저 귀를 두드렸다. 올해 GMF는 예년보다 더 정돈된 구성 속에서, 늘어난 무대의 규모와 다양해진 연출로 밴드들의 개성과 완성도에 더더욱 집중한 페스티벌이었다.
이 글에서는 토요일 라인업 중 KIK, 리도어, 유다빈밴드, 오월오일, 페퍼톤스, 실리카겔의 무대를 다루었다. 각 팀의 음악은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지만, 결국 같은 시간 안에서 서로의 다채로움을 완성했다.
KIK
- Setlist: Captain's order / 3333 (Unreleased) / LP Club / Ferrari / Timer / SIMPLE / AH
2025년 6월에 데뷔한 신예 밴드 KIK은 세련된 일렉트로닉 리듬과 팝 기반 사운드를 선보인다. 멤버들은 각기 다른 곳에서 활동하다 모였고, 도시적인 감각이 녹아 있는 곡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인디씬에서 주목받고 있다. GMF 무대는 그들에게 신인으로서의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생각한다.
이날 KIK의 공연은 ‘소리의 선명도’를 기준으로 삼은 듯했다. 여백을 과도하게 채우지 않은 간결한 리듬, 정교하게 조율된 신스 사운드, 그리고 멜로디 라인이 남기는 깔끔한 여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Ferrari’에서는 팀이 추구하는 방향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복잡하지 않은 구성 속에서도 기계적인 리듬과 인간적인 보컬 톤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잔잔하지만, 집중되는 정확한 오프닝을 완성했다.
리도어 (REDOOR)
- Setlist: Intro / Dear Freddy / 사랑의 미학 / 세상:소음 / 영원은 그렇듯 / 아직도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요 / Intro / 욕망주사기 / 내 방안은 푸른 바다 / 우리 아픈 이야기
2020년 1월 결성된 리도어는 자연의 고요함을 담는 4인조 모던 록 밴드다. 서정적인 멜로디와 동양적 감성이 결합된 사운드가 특징이며, 홍대 인디씬을 무대로 꾸준히 활동해 왔다. 감정선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하는 이들의 음악은 부드럽지만 단단하다.
이날 무대는 긴장과 안정이 교차하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영원은 그렇듯’의 부드러운 시작은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겼고, 이어진 ‘아직도 사랑하면 안 되는 건가요’에서는 가사와 멜로디의 섬세한 조합이 리도어 특유의 감정선을 완성했다.
특히 ‘욕망주사기’에서의 리듬 전환은 공연의 흐름을 또렷하게 바꾸는 지점이었다. 곡 하나하나가 무겁지 않게 흘렀지만, 전체적으로는 묵직하고 응축된 인상을 남겼다. 리도어는 이날 ‘감정을 다루는 방식의 다양성’을 보여준 팀이었다.
유다빈밴드 (YdBB)
- Setlist: Intro / 어지러워 / LOVE SONG / 강가에서 / 20s / 항해 / 축배 / GET LUCKY! / LETTER / 바람 / 오늘이야
싱어송라이터 유다빈을 중심으로 2019년에 결성된 유다빈밴드는 포크와 팝을 오가며 일상의 감정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청량함과 진심이 공존하는 음악으로 20대 청춘의 정서를 대변하며, 꾸준한 스트리밍과 공연을 통해 탄탄한 팬층을 쌓아왔다.
그리고 그들의 공연은 단정함 안에 뜨거운 열정이 담겨있었다. 무대를 자연스럽게 즐기는 분위기 속에서 음악 본연의 결로 관객과 호흡했다. ‘항해’에서는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는 관객들의 움직임이 이어졌고, ‘20s’와 ‘강가에서’는 곡이 가진 서정성을 충분히 살려냈다.
한 곡이 끝나도 여운이 길게 이어졌으며, 연주와 보컬의 온도는 흔들림 없이 유지됐다. 유다빈밴드는 이날 무대에서 ‘밴드 사운드의 안정감’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오월오일 (OWALLOIL)
- Setlist: Rooftop / Wish / Lunch Time / She said / Scentria Forest / 노란세상 / Echo / London Time /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에게 / Cherry Roman Candle
2018년 결성되어 2019년 데뷔한 오월오일은 신스팝과 록을 기반으로 한 3인조 밴드다. 도시적이면서도 따뜻한 정서를 함께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며, 인디 씬에서 감각적인 밴드로 꾸준히 주목받고 있다.
이날의 오월오일의 무대는 시종일관 부드러운 흐름을 유지했다. 곡이 가진 리듬의 결이 일정하게 이어졌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생생히 눈에 보일 정도로 멤버 간의 톤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공연의 색을 완성했다. ‘노란세상’에서 보여준 균형감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가며, 오직 사운드의 농도만으로 공연을 완성했다. ‘Echo’와 ‘London Time’으로 이어지는 중반부는 팀의 정체성을 가장 명확히 드러냈다.
짙은 여운과 함께 오래 남는 단정함이 중심에 있었다.
페퍼톤스 (PEPPERTONES)
- Setlist: 도망자 / New Standard / 아시안게임 / 태풍의 눈 / 스퀴즈번트 / 겨울의 사업가 / Shine / 21세기의 어떤 날 / 아나까나 – 조혜련 / 빠나나날라 – 조혜련 / 나 요즘 파이 됐대 (π) / 고장난 타임머신 / New Hippie Generation / 라이더스 / 행운을 빌어요
2003년 이장원과 신재평이 결성한 2인조 밴드 페퍼톤스는 일렉트로닉 기반의 밝고 낙관적인 사운드로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아 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속 가능한 긍정’을 유지해 온 그들은 GMF에 2007년부터 근속으로 참여 중이다.
이날 페퍼톤스는 도깨비 가면을 쓰고 등장하며 유쾌한 시작을 알렸다. ‘Shine’과 ‘21세기의 어떤 날’은 오랜 시간 쌓아온 낙관의 언어를 다시 확인시키는 순간이었고, 유튜브 뜬뜬을 통해 조혜련과 함께한 '메카니즘'의 곡인 ‘나 요즘 파이 됐대(π)’와 ‘고장난 타임머신’을 통해서는 페퍼톤스의 긍정적인 분위기와 청춘을 향한 메시지가 조혜련의 위트와 만나 관객들에게 열기를 더해주었다.
유쾌함과 정교함이 공존하는 무대, 그것이 바로 페퍼톤스의 힘이었다.
실리카겔 (SILICA GEL)
- Setlist: Juxtaposition / Realize / Andre99 / T+Tik Tak Tok / On black / Eres Tu / Sister / 모두 그래 / Kyo181 / NO PAIN / Ryudejakeiru / Big Void (미발매 곡) / (Encore) Desert Eagle
2013년에 결성된 실리카겔은 록 기반에 그들만의 사이키델릭함을 듬뿍 담은 독창적인 밴드로 국내외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 록 씬을 대표하는 팀이다.
이날 덜어낸 무대 연출은 무대 조명으로 채웠고, 오직 음악에 집중한 몰입형 공연으로 그들의 무대는 관객을 압도했다. 빛, 사운드, 리듬이 하나의 구조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공간에서 숨 쉬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
공연의 흐름은 후반으로 갈수록 곡의 밀도를 높였고, 미발매 곡 ‘Big Void’에서는 실리카겔이 표현하는 사랑을 미리 느낄 수 있었다. 곡이 끝나도 공기의 떨림이 남을 정도로 잔향이 짙었다.
실리카겔은 공연의 마무리를 ‘에너지의 잔향’으로 대신하며, GMF 토요일의 피날레를 완벽히 장식했다.
마지막 무대의 앵콜이 끝나고 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났지만, 오후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선율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다른 온도의 리듬이 가을의 공기 안에서 겹치며 하나의 결을 만들었으며 메인 무대와 서브 무대를 오가며 관객들이 그린 동선은, 각자만의 페스티벌 지도가 되었다.
록 밴드의 강렬한 기타 리프도, 어쿠스틱 싱어송라이터의 섬세한 속삭임도, 사이키델릭한 실험적인 사운드도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향해 있었다. 그 문장은 '음악으로 이어진 하루', 그리고 '함께 듣는 순간의 의미'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였지만, 그 시간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올림픽공원 위에 잔잔히 내려앉은 그 여운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서 천천히 울리고있다.
내년 가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