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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21세기는 지속적 위기 상태다.


전쟁. 팬데믹. 기후위기. 경기침체. 기술격차. 인간은 상시적 위기 속에서 ‘나 자신’이라는 좁은 범위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공동체 윤리가 해체되고 타인의 고통이 자본주의 경쟁의 부산물로 취급되는 시대에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두 편의 영화가 개봉했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그저 사고였을 뿐’과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을 장식한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기본적인 윤리와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행동이 불일치하는 순간, 개인은 ‘위기 상태’라는 특수 언어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그저 사고”였거나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식이다.


두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고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지금 우리에게 이러한 텍스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속적 위기 상태’ 속에서 우리는 집단적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선택의 권리가 있다. 선택의 자유에 한계가 있을지라도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각자 소유한 조건을 가지고 ‘할 것이냐, 말 것이냐’ 즉 ‘예스 오어 노(Yes or No)’라는 단순한 결정을 내릴 자유의지를 가진다.


결국 모든 행동의 책임은 오롯이 나 자신에게 있다. 어떤 말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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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는 아내와 두 아이, 반려견과 함께 평온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회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재취업을 준비하지만 쉽지 않다. 그동안 이뤄놓은 것들을 하나씩 빼앗기면서 만수는 어떻게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만수가 재취업을 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경쟁자 제거하기’다. 누구나 한순간 ‘경쟁자가 모조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이러한 개인의 욕망을 실현시키면서 ‘실업 스트레스가 한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단순한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봐도 만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기형적인 살인 행위를 하는 만수는 절박하다기보다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게 보인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빌려 곳곳에 만수의 살인 행위에 대한 허점을 남긴다. 특히 그가 경쟁자 범모를 죽이는 장면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기가 찬다. 자신이 이상화한 가족상을 지키기 위해 변화한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로 회귀하는 선택만이 올바르다고 믿는 고집으로 스스로를 불쌍히 여긴다. 만수는 일시적인 욕망에 집착하는 인간일 뿐이다.


“실직당한 게 문제가 아니라 실직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문제”다. “어떻게”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가꾼 집을 팔고 가족들이 누리는 물질적 풍요를 줄이며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선택을 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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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에 한 남자가 운전 중 실수로 개를 친다. 놀란 아이에게 부모는 “그저 사고였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개를 친 건 아빠잖아. 그게 무슨 신의 뜻이야.”라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폭력을 “사고”라는 말로 회피할까?


바히드는 오래전 억울하게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이후 여전히 후유증을 시달린다. 눈을 가리고 고문을 당했기 때문에 자신을 고문한 정보관의 얼굴을 알 수 없지만 그의 의족 소리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어느 날, 바히드는 동일한 의족 소리를 듣고 그를 고문한 정보관이라 추정되는 남자를 납치한다.


하지만 남자의 정체를 확신할 수 없었던 바히드는 자신처럼 고문당한 피해자들을 찾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산통을 겪는 남자의 아내를 돕고 그를 대신하여 출산 기념 과자를 사고 간호사에게 팁을 준다.


그의 행동을 보며 ‘위기 상태’에서도 행사할 수 있는 ‘인간의 도리’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을 평생의 트라우마로 몰아넣은 사람에 대한 복수보다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은 결코 실제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만약 그가 복수를 택했더라도 관객은 그를 비난할 수 없었을 거다. 그에게 복수라는 확실한 살해 동기가 있었고 복수 대상에게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살인은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러나 바하르는 남자를 풀어준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개인의 윤리에 따른 선택을 하는 바하르와 어쩔 수 없다는 말에 기대어 살인을 저지르는 만수를 비교하며 개인의 선택이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에 대한 서로 다른 대답을 확인한다.


누구나 악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을 선택하는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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