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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비가 많이 왔다. 신촌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은, 예전에 교수님의 연극을 보러왔던 이후 처음 찾는 곳이었다. 그때도 언덕을 오르고 또 올라 공연장을 찾아갔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비를 뚫고 공연을 보러 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유난히 공연을 보러 가는 날마다 궂은 날씨를 동반하는 편인 날씨 도둑이라, 이 날도 예외는 아니구나 싶었다. 하필이면 신발을 신고도 바닥에 질질 끌리는 긴 청바지를 입어, 신발 끝이 젖은 채 바지 끝단까지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에 젖은 바지자락을 밟으며 꾸역꾸역 언덕을 올랐다. 다리가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메리홀 소극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학생들이 가득했다. 과제를 하고, 수업을 마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러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처럼 학교에 다녔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억이 아주 오래전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티켓을 받고 소극장 벤치 구석에 앉았다. 팜플렛을 들고 공연 시간이 임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클래식 공연은 늘 프로그램을 미리 공부하며 준비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은 달랐다. 나는 대부분 시놉시스조차 읽지 않고 무대 위의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낭만적인 개소리’ 이 제목이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도대체 이 연극은 뭘 말하고 싶어할까? 제목의 의미를 계속 굴려보다가 객석으로 입장했다.

 

블랙박스 공연장의 무대는 거대한 굴뚝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굴뚝 난간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동네를 걷다보면 흔히 보이는 ‘누구는 반성하라’,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그런 현수막들. 대부분이 닿지 않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외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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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고진웅은 노조의 대표격인 인물이다. 그는 오랜 시간 굴뚝 위에서 노사 협의를 위해 농성을 벌였다. 영겁의 시간이었다. 끝이 있으리라는 마음가짐 하나로, 그리고 굴뚝 아래의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고진웅은 계속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아래에서는 노사 협의에 성공했다는 긍정적인 답을 주었다. 그렇게 고진웅은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하지만, 굴뚝의 사람들을 아래로 끌어내리자마자 회사는 곧바로 입장을 바꾼다. 이미지를 훼손하였다는 이유로, 노조 사람들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이다. 그 순간 고진웅은 계속 노조를 유지할 것인지, 혹은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서라도 새로운 삶을 찾을 것인지 고심한다.

 

결국 고진웅은 기업의 인사팀장 자리를 받는다. 20% 인원 감축을 지시한 회사 측에 따라, 함께 노조 활동을 이어가며 회사를 향해 맞섰던 사람들을 하나씩 잘라내기 시작한다. 잘라낸 사람들 대부분은 고진웅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동고동락해온 동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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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진웅은 사람들을 잘라낸다. 굴뚝 위에서 허공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아무도 보지 않는 글에 달린 나지막한 댓글처럼, 언젠가 사람들에게 닿을 것이라 믿었던 그 마음은 끝끝내 아주 깊은 곳에 숨겨버린 채로 사람들을 자른다. 잘려나간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고진웅은 그 사연을 외면해버린다.

 

그러나 회사의 사정이 점점 더 안 좋아지자, 고진웅은 궁지에 몰린다. 회사에서는 고진웅을 내세워 감축 인원 자살 사건을 무마하려하고, 노조는 고진웅을 배신자로 몰아세운다. 가족들 마저 돌아선 고진웅이 기댈 곳은 없다. 고진웅은 이제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봉착한다.

 

결국 그는 다시 굴뚝 위로 올라간다. 현수막을 걸고, 또다시 허공에 외친다. 그의 마음은 처음 올라갈 때와 달랐을까. 아니면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맴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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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의 테마곡은 아이들이 부르는 동요였다.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뭐든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내포한 노래. 그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에 기대어, 사람들은 뭉치기 위해 애쓰고, 또 다시 나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고진웅은 그 노래를 부르며 굴뚝을 빙글빙글 돌았다. 언젠가 바뀔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놓지 않으며.

 

끝끝내 고진웅은 회사를 고발한다. 고발의 굴레는 계속 이어진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고진웅은 언제쯤 굴뚝에서 내려올 수 있을까?

 

굴뚝은 그의 인생을 비추는 메타포처럼 보인다. 위태로운 추락 방지 난간이 겨우 몸을 지탱하고, 그 부실함을 현수막이 가리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안전망이라 믿지만, 그 아래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공허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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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고진웅의 삶을 통해, 권력과 소시민의 다툼 속에서 겪을 수 있는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상황과, 그 안에서 개인이 신념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에 대해 묻는다. 그 굴뚝의 위험함을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그저 낭만적인 생각으로 버티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슈만과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관계에 대해 인상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브람스는 슈만을 음악적으로 존경했다. 그리고 클라라를 사랑했다. 슈만과 클라라가 결혼한 이후에도 브람스는 평생 그 둘의 곁에 머물렀다. 얻지 못한 클라라의 사랑을 기다리면서, 브람스는 얼마나 슬펐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들으며 생각이 바뀌었다. 누구보다 잔잔하고 안정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그 곡을 통해 나는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뿐만이 아님을 떠올렸다. 브람스는 그 두 사람의 곁에서 사랑의 곁을 맴도는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이토록 인간의 감정은 다양하고 저마다의 사연이 복잡함에도, 연극은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나누는 사회를 비춘다. 하지만 우리 감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수많은 사정과 감정이 얽혀 우리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건, 그 내부의 복잡한 결을 인지하고, 나의 목소리가 닿아야 할 방향을 분명히 아는 일이다. 그 방향을 알고 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낭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다.

 

연극이 끝나고 다시 빗길을 걸었다. 비는 그쳤지만 땅은 여전히 젖어 있었고, 바지 자락도 마르지 않은 채였다. 고진웅은 굴뚝에서 내려올 때, 굴뚝 위의 생각들을 온전히 말려버릴 수 있었을까. 그 의문이 내내 머릿 속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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