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이지만 솔직히 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먼저 시를 몰랐다.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건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한 뒤였다. 그전까지 나의 관심사는 방송, 영상, 드라마처럼 실용적인 글쓰기였고, 시나 소설 같은 순수문학은 내 세계 바깥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첫 학기 시 수업은 나에게 거의 외국어처럼 들렸다.
내가 이 학과에 들어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
하지만 정작 학교에서 배운 것은 대부분 시와 소설이었다. 낯설고 어려운 장르였다. 반면 내 주변의 동기들은 시를 사랑했고, 그들의 언어는 언제나 감각적이고 세련돼 보였다. 그들의 글과 내 글을 비교할수록, 나는 이곳에 잘못 들어온 게 아닐까 의심했다. 시는 나에게 넘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 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미 산 아래에 서 있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읽기라도 해보자 마음먹고 시집을 펼쳤다.
하지만 시는 읽어도 읽히지 않았다. 문장은 분명 내가 아는 언어인데, 그 안에서 무슨 말을 하려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시를 읽는다는 건 글을 읽는 게 아니라 숨은 마음을 해독하는 일 같았다. 그러다 보니 시에 대한 벽은 더 높아졌고, 수업 시간마다 점점 움츠러드는 내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복도에서 수업을 기다리다 시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시 합평을 잘해? 나는 시를 하나도 몰라서 뭐라 할 말을 모르겠어.”
그 친구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나도 시 잘 몰라. 그냥 보고 느껴지는 걸 말하는 거야.”
그 말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시를 잘 쓴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결국 모른다고 말하다니. 그런데 동시에 깨달았다. 시를 잘 아는 사람이란 애초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 친구는 단지 자신이 느낀 것을 믿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시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다.
‘그래, 나도 그냥 느껴보면 되지 않을까?’
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느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시가 처음으로 조금은 내 언어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지금도 나는 시를 잘 모른다. 다만 이제는 시를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게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의 나는 시를 하나의 정답처럼 여겼다. 숨겨야 하고, 비유해야 하며, 직설은 금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숨기지 않아도 괜찮고, 때로는 솔직하게 말해도 좋다. 중요한 건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무엇을 느꼈느냐’인 것 같다.
시를 쓰는 일은 이제 나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의 언어가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형식이 중요하겠지만, 나에게 시는 여전히 모르는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시를 쓰기에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