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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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던 기억들은 해상도가 낮다.

 

그 이유를 말하려면 처음으로 콘택트렌즈를 산 중학교 1학년 때로 돌아가야 한다. 단짝 친구와 워터파크에 가기 위해서였다. 시력이 좋지 않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남들 눈엔 내 눈이 흐릿해 보일 정도로 도수가 높은 안경을 껴 온 것은 한창 외모에 신경 쓰던 사춘기 청소년의 콤플렉스였다. 엄마는 나를 아울렛 이월 상품 코너에 데려가 유행이 이미 빗겨 지나갔지만 내 눈에 아직 예쁘고 꽤 비쌌던 수영복을 사 주었다. 못생긴 안경을 끼고 가고 싶지 않다고 철없이 주장하자 최초의 콘택트렌즈를 사주신 것이다. 동네 안경원에서 싸게 파는 30개들이 일회용 렌즈를 두 팩씩 구매했다. 잔뜩 설렌 마음으로 워터파크에 갈 준비를 했고, 잘 다녀왔다. 화학 약품들이 잔뜩 들어간 물속에서 렌즈를 끼는 게 안구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후의 일이다.


그 뒤로도 몇 번 렌즈를 꼈다.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 가기 위해 서너 번 정도였을까? 서투르다 못해 우스웠던 중학생 때의 화장 실력과 그런 나를 놀리던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때까지만 해도 렌즈를 끼우는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을 하며 종종 느꼈던 이질감을 무시했다. 초점이 잘 안 맞거나, 흐릿하게 앞이 보일 때가 있었다. 기껏해야 1년에 손에 꼽힐 정도로 렌즈를 끼니까 적응할 턱이 없으니 낯섦을 괜히 불편함이라고 느끼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렌즈를 더 자주 꼈다. 시험이 끝나고 교복을 입고 놀이공원에 갈 때는 물론이요, 축제, 체육대회, 수학여행 등 특별히 꾸미고 싶은 날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렌즈가 내 눈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갈 무렵이었다. 내 양쪽 눈은 시력 차이가 크기에 이를 고려해 각각 따로 맞췄는데도 어딘가 불편한 것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멀리 있는 간판 정도는 눈을 찡그려 적당히 읽고 길을 찾아 무난하게 할 일은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집에 오면 그날 봤던 공연의 배우 얼굴이나 영화 자막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잘 보이지 않아서 대충 넘겨짚고 잊어버린 것 같았다. 문제와 원인을 파악했음에도 렌즈를 다시 맞출 생각은 없었다. 안경원을 또 찾아가는 건 귀찮았고, 애초에 렌즈를 자주 끼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대량 구매를 했기 때문이다. 처음 산 60짝의 렌즈는 도통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돈이 아까웠다. 도수가 맞지 않는 렌즈를 끼고 나가면 어딘가 핑 도는 듯 어지러운 것 같다가도 다른 데 집중하면 금세 잊어버렸다. 특히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나면 더욱 그랬다. 가끔 끼던 작은 한 쌍의 물건이 내 일상에서 차지한 건 그 정도의 자리뿐이었다.


그 이후로 축제도, 체육대회도 지나 수학여행을 갔다. 주인을 잘못 만난 껍질들은 빠짐없이 그때를 담았다. 그래서 나와 함께한 물건 중 설렘이 가장 짙게 밴 물건은 콘택트렌즈라고 하겠다. 설레는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렌즈 통을 열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게 정반대였더라도. 부푼 마음을 안고 간 제주도 수학여행에선 사흘 중 이틀을 감기와 차멀미, 생리통이 겹쳐 내내 헛구역질했다. 아픈 몸 탓에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목구멍 끝에서부터 신물이 올라와 눈앞이 눈물로 흐려졌었다. 대학 입시가 끝나고 가족들과 처음으로 떠난 태국 여행 중에 길에서 깨진 유리 조각을 밟고 발이 찢어진 적도 있다.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우울함과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기도 했다. 수능이 끝난 후 온갖 구직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넣기만 하다 드디어 구한 아르바이트 첫날 근무가 끝난 후 잘린 적도 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시원찮았나 보다. 그 뒤로도 일자리는 구해지지 않았고, 몇 번 더 실습까지 갔지만 일머리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동안 근로계약서를 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큰 기대가 꺾일 때는 언제나 큰 생채기가 남는 법이었다. 점점 자신감이 깎이다 보니 더 큰 실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하던 하루가 뜻밖의 일로 무너진다는 것은 뜻밖의 일로 새로 나갈 구멍이 뚫릴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제주 수학여행 패키지에 포함된 공연 관람 일정에서 아픈 나와 함께 버스 맨 앞자리에서 멀미하던 담임 선생님 둘만 빠져 근처 잔디밭에 앉아 나눈 대화는 엉클어진 시야와 달리 선명하게 귀로 들어왔다. 예정된 일정은 완전히 틀어졌지만 불안하고 서러웠던 마음은 오히려 잔잔해졌다. 그 특별한 시간 동안 담임 선생님과 대화하며 요즘 무엇이 고민인지, 앞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툭 터놓고 이야기했다. 선생님의 조언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제주의 온풍과 햇살을 등에 지고 팔뚝에 기어오르는 풀벌레를 느끼는 건 값비싼 무료였다. 공연을 보고 나온 친구들이 그 공연이 아주 지루했다고 투덜거렸을 때는 괜히 기분이 좋아 실실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태국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다친 발을 이끌며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는 우연히 옆방 투숙객들과 마주쳐 함께 근처 현지 식당에서 식사하게 되었다. 즉흥 연주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다른 테이블 관광객들이 자기 일행 중 생일인 사람이 있다며 케이크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사원이 내려다보이는 수영장과 근사한 레스토랑이었지만 그곳에 갔었다면 그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계속 카페, 식당, 대형 문구점 아르바이트 실습을 전전하다 잘렸지만 끝내 한곳에 정착해 몇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 안에서 계속해서 좌절과 우울한 사건들은 찾아왔지만 반대로 나 스스로가 유능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마음이 꽉 차게 행복했던 그런 순간들은 아직도 동이 나지 않은 렌즈 탓에 흐릿했다. 그렇지만 그 순간의 행복과 만족감만큼은 지금까지도 뚜렷하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뒤, 오늘이 완벽할 것이라는 확신이 없어도 나는 계속해서 시린 눈을 뜨고 멀리 보기로 결심한다. 나는 본래 걱정이 많아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을 미리 상상해 혼자 불안해하곤 했다. 그리고 그 예상이 맞아떨어질 때도 있었기 때문에 내게 기대란 긴장으로도 치환된다. 다시 생각해 보면 모든 기대와 긴장의 한 끗 차이에서, 집 밖에 나올 적 매번 들썩이는 마음은 죄가 없었다. 오늘 하루를 망친 건 내가 운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내가 부주의한 탓에 실수를 연발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남은 시간은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훨씬 많다. 매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지 못하더라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고, 기대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도수가 맞지 않아도 남은 일회용 렌즈를 다 쓸 때까지 놀러 나갈 때마다 계속 끼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아도 처음 방문한 곳에서 최고의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오늘 아르바이트에서 진상 고객에게 시달렸지만 내일 만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오늘은 최악의 상황만 겹쳤지만 내일 혹은 모레, 그 이후에는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


곧 한 해가 지나간다. 내가 좋아했던 저화질들은 더 이상 서랍에 누워 있지 않다. 그리고 나는 이제는 도수가 맞는 소프트렌즈를 샀고, 렌즈를 끼지 않고도 매일 어떤 일이든 고대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불확실을 감수하며 세상에 직접 몸 닿아 넓히는 내 두 눈은 점점 삶의 해상도를 높여갈 거다. 나는 이제 확신이 없어도 괜찮다. 눈앞을 가리는 것이 먼지든 눈물이든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더 앞을 바라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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