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이전에 [The person : 02. 사람하는 사람]이라는 에세이에서, 내가 사람을 좋아한다는 점을 깨닫고 놀랐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사실과 심리적 성숙에 대한 고민은 또 별개의 것이었다. 내게 심리적 성숙이나 인간관계라는 주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한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근래에 그 숙원 사업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소설’이었다. 최근 두 권의 소설책을 전혀 다른 내용이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는데, 사실은 인간의 심리적 성숙이라는 같은 주제를 말하고 있었다.


두 권의 책 속에는 내가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나의 조각들이 그대로 나를 비추고 있었다. 한쪽은 삶을 지나치게 진지하고 까칠하게 받아들이는 꼬장꼬장한 중년 남성, 그리고 한 쪽은 ‘K-장녀’로 자신의 감정과 인생 전반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 여성의 이야기였다.


두 주인공이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 말하자면 끝도 없다. 우선 사람들과의 ‘스몰토크’를 어색해한다거나 딱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엇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늙은 주인공의 모습은 나와 같았다. 삶은 덧없는 것이라며 극단적 허무주의에 빠지면서도 점점 집 앞 고양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순적이고 기이한 태도마저 나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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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오베라는 남자' 스틸컷

 

 

자연스레 나의 과거를 돌아봤다.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오해 없이 주변에 잘 전달하고 있었던가? 사회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보편적 표현을 나는 원활하게 사용하고 있었던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젊은 여성이 주인공인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 가장 공감했던 예시는 무엇이 기록해야 할 정도의 일인지 판단하는 것을 어려워해서 일상을 잘 기록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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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텅 빈 인스타그램 계정 피드

 

 

나 역시 SNS를 그저 ‘보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었다. SNS 피드는 습관처럼 구경하지만 정작 내 계정에 무언가를 올리지는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깔끔한 상태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딱히 무엇을 기록해야 할지 모르겠기에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쪽이 가까웠다. 뭔가 기록한다고 한들, 그것이 어디에 필요한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게다가 감정을 느끼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느끼지 못한 것처럼 회피하는 모습부터, 타인에게 의지하는 법을 알지 못해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모습까지 나와 같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느끼는 것들에 대해 정의하는 일이 어색하다. 어떤 현상에 대해 ‘넌 어땠어?’라는 질문이 들어오면 ‘음...’하며 생각을 로딩하다 멈춰버리곤 한다. 당장은 좋지도 않고 싫지도 않다고 말하려다, 결국 말을 삼키는 경우가 다수다.

 

 

“가끔 너를 보면 무언가 회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내가?”

“응, 물론 넌 굉장히 책임감 있는 사람이지. 성실하고, 그런데 그게 뭐랄까, 이런 설명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육체적인 성실함이랄까? 네 몸의 움직임에 대한 성실함과 솔직함이지. 어떨 땐 네가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거든.”

“…내가?”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정이 있긴 하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가끔…”

윤주가 뜸을 들엿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만한 이야기라면 그는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늘 빙빙 돌렸다.

“가끔은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 그 감정을 분명히 느꼈지만 느끼지 못한 척하는 것처럼 말이야.”                                                       

 -’타로카드 읽는 카페’ p. 138

 

 

소설을 읽으며 나는 묘하게 슬펐다. 그러나 동시에 안도감도 들었다. ‘이건 나구나.’라며 깨달은 지점들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를 약간은 이해받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게 그동안 덮어두고 모른척해 왔던 나의 이야기들을 나는 소설을 통해 제대로 직시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소설이 내게 필요한 이유를, 심리적 결핍의 순간에 진입하면 다른 콘텐츠들을 뒤로하고 소설을 손에 쥐는 이유를 깨달았다. 내가 외면해 오던 그 결핍의 정확한 지점을 작가가 섬세하게 그려냈을 때, 나는 나의 내면이 누군가에게 ‘언어화’되었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두 소설 모두 결국 주인공들은 세상에 마음의 문을 열고, 전보다 심적으로 성숙해진 상태에 이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나약하다. 여전히 흑백의 세상에서 가끔 극단적인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감정을 느끼고 정의하는 일을 회피하기도 한다. 소설을 읽으면서도 ‘소설 같은 이야기’라며 회의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 같은 그런 허구의 세계에도 ‘나’와 유사한 존재가 있다. 소설은 내게 구원이 되지는 못하나, 최소한 희망은 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여전히 고독한 순간에 소설을 손에 쥐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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