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도 사람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특별히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라고 느꼈던 적은 없다. 사람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수많은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일은 행운이다. 이건 이런저런 생각 후 내린 결론이었다.
돌이켜보면 원체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나는 인간관계로 행복했던 기억보다 곤란했던 경험이 더 많았다. 사람이 싫은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사람과 있을 때 곤란함을 느꼈던 기억이 많으니, 날 곤란하지 않게 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글감으로 꺼낸 건 나에게 있어 꽤 기념비적인 일이다. 부끄럽지만 이전까지만 해도 인간관계라는 주제로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으니 말이다.
조금 오랫동안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사람은 어디에 속해있다고 해서 반드시 소속감을 느끼는 존재는 아니다. 수백수천 명의 사람 사이에서도 바다 위의 부표처럼 부유하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꽤 오랜 기간 군중 속에서 고독을 느낀 채 살았다.
그런 외로움 속에서 4월의 어느 날 문득,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건 아트인사이트 오프라인 모임 참여를 위해 사전 질문지를 작성할 때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 초대는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가장 먼저 ‘Project 당신’을 떠올렸다. 초면의 에디터분을 만나 티타임을 나눴던 순간, 셀프 큐레이션으로 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정리했던 순간이 그 어떤 문화 초대 경험보다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다.
그러다 또다시 빛나는 사람의 덕후가 된 나를 보며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 나는 예술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구나. 나의 관심 축은 예술 그 자체보다 ‘사람’에게 있구나. 나도 사람을 좋아하고 있었구나.
일주일 동안 세 번의 공연 티켓팅을 자처하고, 주말에 있을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급하게 경기 북부에서 대구로 갈 차표를 알아보는 나를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할 일은 태산인데도 잠을 줄이면서까지 7년 전 무대 영상을 찾고 있는 내가 그저 황당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움직이게 만드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행히 대구는 가지 않아도 되었다. 다른 콘서트와 페스티벌 티켓팅을 성공했다. 휴.)
4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성수에서도 같은 감각을 느꼈다. 아트인사이트 첫 기획전에서 작가분들과 작품에 관한 담화를 나누며 처음으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순간이 완전무결한 흥미로 다가왔다. 그 속에서 나는 예민하게 레이더를 세울 필요도, 내 생각과 말을 과도하게 검열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작가와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기만 하면 되었다.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내게는 그런 관계가 놀라울 뿐이었다.
아트인사이트 첫 기획전의 작가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에, 최애의 오래전 무대 영상을 스크랩한 후에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문화예술 속에서 사람을 느끼고 있었다. 예술가의 세계를 들여다본다는 건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제야 내가 삶을 살아오며 보인 행보가 이해되었다. 항상 마음을 잘 열지 못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누군가를 좋아했다. 대상은 바뀌어도 그 패턴은 반복되었다. 사람으로 인해 곤란해하면서도 또다시 사랑으로 보듬고 싶은 사람을 물색했다. 나는 그림을 꾸준히 그리지도, 악기를 전문적으로 연주하지도 않지만,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을 끊임없이 마음에 담았다.
그렇다. 나는 자신만의 세계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사람이 좋다. 자신의 방식대로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그 힘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사람들이 좋다.
놀랍게도 지금은 소속된 곳에 꽤 안정적인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모두가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서로를 돕는, 건강한 집단에 속해있다. 같은 비전을 그리는 사람들은 평화롭고 따뜻한 에너지를 뿜는다. 이런 사회도 있구나, 싶어 신기하다.
그런 걸 보면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언제 닫힐지 나도 모른다. 언젠가 내 마음은 마치 로판 웹소설의 북부 대공 남자주인공이 사는 세계처럼 추위만 남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이니까.
사람은 경험을 통해 계속 변화한다. 그러니 나는 이 에세이를 나를 정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좋은 경험을 기억해 두면 언제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언젠가 마음이 닫히게 되면 나는 이 글을 기억하고 싶다. 나도 마음을 잘 열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더불어 좋은 경험을 이끌어 준 모든 분께 이 글을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