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EUNU]
처음에는 화가 났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별이 이것뿐이라는 것에.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그동안 너의 키는 한 뼘도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머무름은 우리에게 안정을 가져다주었지만, 점점 너는 좀처럼 벗어나질 않았어. 난 여전히 더 높이 날아보고 싶었는데. 그때 나는 너와의 이음새를 꺾었어.
잘라내고 나서야 주위가 보였어. 한 발짝 물러서서 보니 우리가 머문 세상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어. 이렇게 비좁은 곳에서 우린 서로라고 외쳐왔나 봐. 그래서 아직 못해본 것이 많다고 느꼈던 걸까, 너와 나눴던 일들이 이젠 소꿉장난 같아. 끝내 넌 쉬운 길을 택했고, 널 따라 걸어온 내 발걸음에 답하지 않았어. 내 삶에서 넌 유일한 자랑거리이자 낙이었는데, 덕분에 이젠 너 말고도 재밌는 것들이 많아. 좋은 일이지?
네 세상의 경계를 따라 너의 흔적을 하나하나 지워갔어. 기억을 정리할수록 네 꽃잎 한 장 한 장이 같이 떨어져 갔어. 슬프진 않았어. 처음부터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듯, 꽃이 피었다면 언젠가 지고 맺을 때가 오는 거니까.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하진 마. 요즘 날씨가 유독 흐려. 구름이 잔뜩 몰려온 채로 멈춰 서서 비도, 해도, 별도 뜨지 않고 있거든. 그래서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모르겠어. 분명 칠흑 같아도 빛나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온 어제에 물음이 피어나. 네가 보여준 세상, 네가 들려준 이야기, 새롭게 꾸게 된 꿈까지 다 부정하게 되면 어쩌나, 하고.
네가 품어 주었던 내 열들을 기억해? 어제밖에 없었던 내게 내일을 알려줬었어. 그런데 정작 지금의 우리에게서 내일을 찾을 수 없게 되었네. 이제는 이런 생각마저 들어. ‘돌고 돌아 널 택했던 나마저 미워하게 될까?’ 겨우 친해졌는데, 또다시 난 열들을 밀어내야만 하는 걸까. 지금의 내게 가장 두려운 일이지만 어쩌면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고도 많이 생각했어. 한결같이도 서투르고 투박해서, 그래서 이제껏 서투른 별을 붙잡고 있던 걸까 봐. 그때 우리는 온전히 서로였었잖아. 그래도 네게 주었던 꽃잎들은 남겠지. 네가 주었던 조각들은 남겠지. 이제 마지막 인사야. 나는 다시 홀로 다음을 헤매러 가. 타들어 가는 파편들을 겨우 붙잡고서, 새로운 물음에 답하러.
잘 가, 내 첫 별
첫 피움
처음 보았던 내일
너의 머무름에 더 이상 답하지 않을게. 언젠가 서로가 완전히 어제가 되었을 때, 부디 오래 우리의 처음을 곱씹어줘. 더는 나눈 시간이 얼룩지지 않도록.
이제 우리 오랜 그림자까지
안녕, 별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