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법칙에 염증을 느껴본 적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런 적이 없다면 정말 멋진 일이다!)
사람들과 발 맞추어 굴러가는 것이 힘들어 잠깐 쉬었는데 그런 나는 필요 없다는 듯이 여전히 뚜벅뚜벅 잘 걸어가기만 하는 사회.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으면 금방 뒤쳐져 버릴 것 같은 기분. 주변에 범접할 수 없이 대단하고 멋진 것들은 많고, 그들과 비교해 내 존재는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
앞의 문단과 같은 생각을 자주 한다면, 당신의 삶에는 회복기가 필요하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또 다른 물음이 솟아오른다.
게임 속 세계처럼, 회복 물약을 마신다고 회복되는 세상도 아닌데 우리는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도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소개하고 싶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저자 패트릭 브링리의 삶을 담은 에세이다.
<뉴요커>에서 일하던 저자는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을 잃게 되고, 그 이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지독한 무기력함에 빠지게 된다. 더 이상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일은” 할 수 없게 된 저자가 선택한 것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세상에서 빠져나가 오로지 아름답기만 한 세상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속임수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75p)
책은 죽음과 삶을 동시에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친형과의 행복했던 순간들, 형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순간들을 그리며 마음껏 형을 그리워한다. 저자가 형을 많이 사랑했고, 기억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 책은 형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저자의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이다. 고요한 미술관에서 작품을 마음껏 바라보고, 관람객들의 안내를 돕고, 동료 경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은 그렇게 특별하거나 놀랍지는 않다. 대신 묘한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고요 속에서 형을 애도할 시간을 가지고, 생각을 정리하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나가는 모습이 마치 하나 둘, 침착하게 다시 삶을 살아 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저자에게, 또 저자의 모습을 보는 우리에게 회복 물약이 되어줄 수 있던 걸까.
정해진 답은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답은 ‘일상’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일상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를 비롯한 경비원부터 직원들,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들과 같은 사람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들, 대작들, 조각상, 이집트 전시관의 미라와 유적들... 그 모든 것들에는 인간들이 삶을 살아 나간 흔적과 일상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우리와 다름없이 오류투성이인 다른 인간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메트입니다.” (329p)
저자는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바라보며 형과 가족들이 함께였던 평온한 한때를 떠올렸고, 그 순간을 기억한다. '대작'이라는 화려한 이름이 붙었지만 그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모습, 현재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돌이켜 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할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브뤼헐의 이 명작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170p)
저자는 미술관을 나가기 전, 이탈리아 수사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자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그림으로 꼽았다. 그림의 하단에 십자가에 박힌 예수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있는 모습을 보며 삶을 떠올린다. 혼란하고 복잡하며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게 일상이다.
나만이 삶을 어려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지도.
“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가운데 부분이 혼란스러운 일상생활을 제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로 가득하고, 모순적이고, 가끔은 지루하고 가끔은 숨 막히게 아름다운 일상. 아무리 중차대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기저에 깔린 신비로움이 숭고하다 할지라도 복잡한 세상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돌아간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삶은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3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