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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는 히스토리고, 미래는 미스테리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 명언은 '현재를 살아라'와 같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에 얽매이지 않고 오늘에 집중하라는 말은 용기와 희망을 주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현재를 살기 위해 과거가 필요하진 않은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과거가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과거'란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소라네오 감독은 이 질문에 어떤 답을 내리고 있는지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들어보려 한다.
1. 모든 시제가 교차하는 세계
소라 네오 감독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자행된 조선인 학살의 역사 안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일본 대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시점, 과거와 현재는 얼마나 다르며 자성하지 않은 채로 맞이한 일본의 미래에 희망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감독은 공존할 수 없는 시공간을 하나로 묶는다. 그리하여 <해피엔드>는 모든 시제가 교차하는 세계가 되었다. 영화의 중심인물 후미, 유타, 코우는 각자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후미는 사회의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인물로, 운동권 사람들과 함께 1960년대를 상징하는 포크송을 부른다. 이외에도 후미의 대사, 의상 컨셉, 밴드 친구들 중 유일하게 코우와 대화를 나누는 설정 등 여러 요인들이 후미를 과거에서 온 인물로 느껴지게끔 한다. 유타는 밴드 구성원의 주축으로, 테크노 음악에 흠뻑 빠져있다. 유타에게 미래란 그저 창밖에 존재하는 배경일 뿐이다. (유타의 면접 장면, 무력으로 시위대를 진입하는 모습이 유리창 밖으로 재현되면 유타는 그저 바라보고 있다.) 반면 코우는 후미의 영향을 받아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코우가 걱정하는 ‘미래’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파시즘을 모방하는 자국의 미래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미래이다. 이 두 개의 미래가 서로 충돌하며 갈등하는 코우를 보여준다.
이들의 우정이 깨지고 변화하는 모든 과정은 앞서 제시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감독의 고뇌를 닮아 있다. 요컨대 감독은 현재에 오롯이 발을 딛고 서 있기 위해,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를 불러낸다.

2. 코우의 시선이 가닿는 곳
재일한국인 코우는 뒤를 돌아본다. 코우는 왜 뒤를 돌아보는 것이며, 한때 자신을 지탱하던 우정과 음악을 뒤로하고 왜 후미와 동행하는 것일까?
영화에서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장면이 있다. 자위대가 강의를 위해 학교에 방문한 날, 코우를 포함해 귀화하지 않은 학생들은 교실에서 내쫓겨 AI 감시 카메라 앞에 선다. 그들이 뒤를 돌아 카메라를 응시하면 현재, 극장에 앉아 있는 관객에게 닿는다. 이때 관객은 새삼스레 자신이 앉아 있는 자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숏의 배치다.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숏 이전에 배치된 숏을 떠올려 보면, 카메라를 향해 보란 듯 도발하는 아타의 행위가 웃음을 자아낸다. 이러한 숏의 연결은 유타를 향해 뒤돌아선 코우가 유타를 향해 ‘웃고 즐기는 사이 다 죽어’라고 말한 것처럼, 침묵과 응시를 통해 보는 주체에게 말한다. 웃고 즐기는 사이 다 죽는다고.
영화의 마지막, 코우가 다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웃고 즐기던 유타가 없다. 치안 시스템에 의해 보호받던 유타는 그들이 약속한 안전으로부터 탈출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시선(코우)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행위(유타)로 연결되는 시점이다.
요컨대 해피엔드의 풍경은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이 아닌 동시대의 결핍을 발견하고 행동하는 것에 가깝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래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경유지로서 과거를 소환한다.

3. 두 세계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틈
영화는 재난 세대의 무기력함과 차별과 폭력에 순응하고 동조하는 세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진을 선택했다. 물론 지진은 하나의 의미로 귀결되기 어렵다. 자연적 재난, 잠재적 불안 등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지진이 이뤄낸 작은 성취에 집중하고자 한다. 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학교에서 지진은 다른 형태로 기능한다. 이를테면 코우와 유타를 경계 짓던 뚜렷한 선은 지진에 의해 흐릿해진다. 지진 경보 알림음은 음악 동아리 친구들에게 빼앗긴 음악 장비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수직으로 세워진 교장의 스포츠카가 ‘쿵’ 소리와 함께 완전히 전복되는 장면은 진동이 만들어낸 저항의 틈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일 테다.

해피엔드로 볼 수 없는 <해피엔드>에서 오히려 희망을 발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폭력의 세계와 마주 보고 있는 또 하나의 세계. 큰 세계를 두드리는 뜨거운 청춘의 공간. 후미, 유타, 코우는 각자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진동한다. 그러자, 이 굳건하던 세계가 함께 진동하기 시작한다.

4. 부치지 못한 편지
영화의 엔딩, 이제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시점에 유타는 잠시 코우의 공간을 침범한다. 이 찰나의 시간은 프리즈 프레임을 통해 길게 포착된다. 감독은 이 같은 연출 방식에 대해 편집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느껴지는 애잔한 마음은 아마도 되돌아갈 수 없는 시절, 이미 분열된 그들의 우정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감독의 유년 시절을 그려낸 <해피엔드>는 일종의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보인다. 한때 나의 세계를 지탱해 주던 친구들에게 보내는 고백인 것이다. 영화는 일본의 근미래를 상상하며 시작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되어 돌아온다. 영화의 배경, 인물의 상징성, 사운드까지 미래에서 과거의 한 조각을 음미하는 이유는 사실 소라 네오 감독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제 코우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당신에게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야기가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