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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무언가를 꾸준하게 기록하는 것은 나에게 힘든 일이었다. 실험을 관찰하고 기록한다거나 하는 그런 기록 말고 일기를 쓰는 것과 같은 기록 말이다. 정확히 횟수를 세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살면서 10번 정도는 일기나 블로그를 꾸준하게 쓰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노력들은 나에게 작심삼일로 돌아왔다. 아니, 솔직히 말해보자면 작심삼일이라고 표현하기도 뭐하다. 왜냐하면 99.99…%의 확률로 하루의 기록만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정말 딱 몇 번 이틀 정도 늘어난 적은 있었지만, 이틀 때부터 귀찮음이 범벅이 되어 하지 말 걸 그랬다는 말이 정말 목까지 차올랐었기 때문에 사실 그냥 100%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기록이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냥 일기 쓰기부터 교환일기, 세줄일기, 블로그 작성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보려고 했고 나에 맞춰서 변화까지 시켜가며 꾸준하게 기록을 남겨보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온갖 방법을 사용해 보았음에도 나는 실패라는 결과만을 받았다. 결국 나는 그냥 포기했다.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도 쓸데없이 계속해서 하루에서 이틀이면 포기했기 때문에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노력을 다른 곳에 쏟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올해 초, 핸드폰을 하며 놀고 있던 나에게 ‘일력’을 작성해서 기록하니 좋다는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외국에서 사온 작은 일력을 뜯어가며 뒤에 얼마만큼의 분량이 되던지 그냥 당일마다 있었던 일들이나 생각을 작성한 뒤 파일에 모아 보관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커피를 좋아한다면 카페 영수증을 모으는 등의 기록 활동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도.

 

앞서 말했듯이 그렇게 기록하려는 행동에 실패만을 받았고 결국 그런 기록을 포기하기까지 했던 내가 ‘일력 작성’이라는 기록법에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교환일기나 세줄일기 등 다른 기록법을 도전해 볼때에도 아예 흥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떠오르는 기록법은 없었다. 거의 몇 주를 일력 작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유론 일력 작성이라는 기록법이 짧고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모아두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와 상반되는 귀찮음도 컸기 때문에 최대한 단순한 방법을 찾았었다. 세줄일기를 시도해봤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니고 포기해도 그냥 없었던 일이 되는 일기 작성이라는 것이었다보니 그만큼 귀찮음이라는 감정에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고 포기해도 상관이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실제로 그 판단에 따라 포기했었다.

 

추가로 여러 자잘한 이유가 있지만 일단 정말 포기했던 기록 작성에 다시 눈길을 돌리고 시도하도록 이끌어준 가장 큰 이유는 이렇게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나에 맞춰서

변화시킨 기록법


 

그렇게 시작한 일력 작성이었지만 해당 게시물에서 본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시도가 모두 실패로 귀결되면서 내가 귀찮고 시간 오래 걸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또 까먹지 않고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시야에 둘 수 있는 기록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었다.

 

첫 번째 변화는 일력을 작성한 후 뜯어서 파일에 모아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수첩에 풀테이프로 붙여서 수첩 자체를 일력 작성용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파일에 넣으면 넣고 빼는 것에도 귀찮을뿐더러 그만큼의 파일을 구매하는데 드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그냥 하지 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일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던 중 수첩에 붙여서 모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수첩의 첫 부분에는 올해의 목표와 같은 것들을 적어 수첩 자체가 일력뿐만 아니라 무언가의 목적을 갖고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두 번째 변화는 일력 작성 아래에 해당 날짜의 지출 금액을 적는 것이었다. 꾸준하게 기록하는 걸 힘들어하니 일기 작성뿐만 아니라 가계부 작성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적어도 이주 조금 안되는 정도까지는 해본 적이 있으니 일기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어쨌든 결과는 포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이것 또한 힘듦과 귀찮음 때문에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굳이 작성하지 않아도 하루하루 어느 정도 계획한 대로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 지출이 나갈 때마다 기록하려니 너무 자주 기록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랬던 과정들을 떠올려보다가 이번에 일력에 지출 금액을 적을 때에는 별다른 기록 없이 ‘해당일의 지출 금액 전체’를 적었다. 뭘 샀고 어디에 돈을 얼마만큼 썼는지의 기록이야 수첩에 일력을 작성하면서 어느 정도는 쓸 터이니 그냥 전체 금액만 작성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판단은 나에게 아주 잘 맞았다.

 

세 번째 변화는 지출 금액을 작성한 뒤에는 도장을 찍고, 일력을 모두 작성한 이후에는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옆에 붙여주는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음, 보상이라면 보상이랄까. 지출 금액을 작성해야 도장을 찍을 수 있고 일력을 모두 작성한 후에야 ‘참 잘했어요’ 스티커를 붙일 수 있다는 설정을 하고 기록을 시작하니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서 일력을 작성하기도 했다. 뭐랄까, 하루도 놓치지 않고 모으고 싶은 마음을 이용한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 어릴 적에 쓰고 써본 적이 없는 스티커를 붙이면서는 혼자서 웃었지만 그래도 그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이기 위해서 꾸준하게 일력을 작성했기 때문에 나에겐 큰 영향을 준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을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일력을 밀려 쓰거나 간간이 작성하지 않은 날짜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리고 어떤 이유가 되었던 하루를 넘기고 이틀을 넘기기 시작한다면 나중에 가서도 ‘어 오늘은 힘드니까, 귀찮으니까, 피곤하니까’와 같이 별다른 큰 일이 없어도 미룰 것 같아 간단화 방법에 보상 시스템까지 장착한 것에 더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미루지 않기로 혼자서 약속했다.

 

네 번째 변화는 책 구매와 같은 영수증이 발급 가능한 경우에는 버리지 않고 가져와서 일력 뒤에 붙여버리는 것이었다. 지출 금액을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돈의 사용 장소에 대해서 기록할 수 있었고 평소 계획해 둔 금액보다 많이 지출되었다면 쓸데없이 돈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영수증을 붙이는 행동까지 더해져서 이중삼중으로 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일력 뒤에 영수증을 붙인다면 나중에 보더라도 어디서 얼마의 금액을 사용했는지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돈 사용에 고민할 거라고 생각이 들어 도입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변화시킨 방법들은 나에게 잘 맞았다. 이렇게 매일매일을 기록하는 것이 재미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일 작성하고 있다. 그런 생각도 든다. 수첩에 일력을 붙이고 기록한 다음에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면서 그 과정이 나에게 ‘기록’만이라기보다는 ‘만들기’와 같이 느껴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반복되는 행동이고 귀찮음을 느꼈던 기록이라는 행위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다는 그 생각이 이 기록법을 재밌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의 중요성


 

기록은 중요하다. 반박할 수 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록한 것을 정리해서 분류하는 것 또한 중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평소 정리하고 분류하는 걸 좋아하던 나로서는 기록 습관만 잘 잡히면 기록을 정리하는 것은 당연히 이어지는 행동이었다.

 

기록은 과거의 내 변화와 성장, 생각 등을 알 수 있게 해주고 현재의 나를 내면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며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가벼이 여기고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것이 기록이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무겁게 다가오는 것 중 하나가 기록이기도 하다.

   

 

 

더하여


 

일력 01.jpg

 

 

넉 달간 꾸준하게 기록했다. 이렇게 꾸준하게 기록하지 못할 것 같았는데 목표치만큼 성공하여 뿌듯했다. 하지만 몇가지의 문제점을 발견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일력으로 사용한 수첩이었다. 스프링도 아니었으며 양면으로 사용하다보니 너무 부풀어올라 나중에는 글씨를 쓰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다음 번에 일력을 쓸 땐 좀 다른 형태의 수첩을 찾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

 

다양한 기록법을 해보면서 나는 이런 기록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일력 작성을 해보면서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다를 뿐 그 자체를 잘하고 못하고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없는 기록 시도 끝에야 나와 잘 맞는 방법을 찾았듯이 지금 내가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 보았을 때 그중 하나의 방법이 나와 잘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결과만으로 나와의 적합도를 판별해 버리고 포기하기보다는 다른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 다시 도전하는 자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 명함 - 손수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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