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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가 한풀 꺾인 덕택인지 여유로워진 한날, 그 여유를 온종일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서울숲에 찾아왔다.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재즈와 자연이 함께하는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 2025’가 열렸기 때문이다. 푸르른 잔디와 나무,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재즈의 선율을 만끽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돗자리와 맛있는 간식을 양손 가득 들고 서울숲으로 향했다. 나 또한 축제의 마지막 날, 일상에서 느껴본 적 없는 색다른 휴식을 찾아 서울숲으로 향했다.
올해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 2025’의 슬로건은 ‘NATURE, MUSIC & LOVE’. 세 가지 키워드가 가지는 공통점이라면 모든 이의 마음을 조금 말랑하게 만들어 주어 포용력을 높인단 것이랄까. 자연 속에서 음악, 사랑을 담아 준비한 축제답게 축제장 내부에는 배려가 한가득 흘러넘쳤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온 아이들, 주인의 옆을 종종거리며 같이 걷는 반려동물들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독 더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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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마련된 가이드가 인상적이었다. 페스티벌에서 제일 곤란한 부분은 축제 과정에서 쏟아져나오는 쓰레기와 음식물들이다. 이 부분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면 즐거움만을 위해 자연을 무자비하게 희생한 기분이라 축제의 즐거움을 반감시키기 마련인데,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 2025’는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신경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축제 안에서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모든 음식물은 다회용기에 담아서만 즐길 수 있었으며, 심지어는 배달 음식도 다회용기를 꼭 체크해 주문해야 했다. 배달 음식을 주문했던 관람객들은 따로 설치된 ‘반납존’에서 용기를 반납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더불어 쓰레기 처리 부스에도 안내 요원분들이 배치되어 있어 깔끔한 처리에 도움을 주셨다. 이런 규칙들이 조금은 성가실 수 있지만, 이 낭만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다면 익숙해지면 좋을 행동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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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페스티벌에는 ‘SUNSET FOREST STAGE’와 ‘DEAR DEER STAGE’, ‘GARDEN THEATRE STAGE’까지 세 개의 스테이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아쉽게도 입구 바깥에서 무료로 운영되는 ‘GARDEN THEATRE STAGE’의 무대는 구경하지 못했는데, 나머지 두 스테이지의 무대를 번갈아 감상하며 재즈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입구와 제일 가까운 곳에서 제일 먼저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스테이지는 ‘DEAR DEER STAGE’로, 관객석과 무대의 거리가 거의 없다시피 가까운 점이 인상적이다. 나무로 둘러싸인 싱그러운 공간 속에서 첫 무대를 연 아티스트는 Rob Araujo로, Jazztronica로 표현되는 그의 음악은 감각적이면서도 독특했다. 키보드를 누비는 손끝에서는 정취와 풍경에 맞는 선율이 흘러나왔고, 언어가 맞지 않아도 관람객들은 저마다 고개나 발끝을 까닥거리며 페스티벌의 운치를 만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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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메인 스테이지인 ‘SUNSET FOREST STAGE’ 앞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울숲은 언제나 느긋하고 여유가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막상 이곳에 설치된 거대한 무대를 마주하니 은근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앞으로 어떤 무대가 펼쳐질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무대의 포문을 연 아티스트는 ‘어노잉박스’. ‘우주에서 온 18인조 빅밴드’라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이 그룹은 유튜버 ‘조매력’을 중심으로 모인 프로젝트성 그룹으로, 장르는 정해져 있지 않은 ‘팝펑크퓨전일렉트로닉재즈빅밴드’다. 잘못 적은 게 아니라 어노잉박스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시간이 되자 슬슬 무대로 올라와 악기를 점검하는 사람 중 제일 먼저 눈에 보인 건 머리에 갓을 쓴 사람이었다. 시작 전부터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고 자세를 고쳐 정자세로 음악 들을 준비를 했다. 기대 끝에 어노잉박스의 무대가 시작되었고, 이들이 내는 사운드가 서울숲을 가득 울렸다.
순식간에 재즈 페스티벌의 무드가 숲 속에 가득 찼다. 그러나 이전에 경험했던 재즈 밴드나 오케스트라와는 확연히 다른, 보다 꽉 찬 느낌이었다. 어떤 악기가 있길래 이렇게 풍부한 소리가 나오는지 궁금해 무대 위의 악기를 보니 재즈하면 딱 떠오르는 색소폰부터 플루트, 트럼펫, 트럼본, 심지어 흔치 않은 수자폰까지 제각기 호흡을 맞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그들 사이에 끼어있는 태평소의 존재였다. 갓을 쓰고 나타났던 바로 그 사람이 태평소를 연주하고 있었다. 재즈에 태평소? 정말 생경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내 귀는 그 소리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국악 전통 악기가 서양의 악기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시도는 기존에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익숙한 건 시도가 되고 있다는 사실뿐이고,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는 또 새로웠다. 현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묘한 울림이 느껴지고 있었다.
정말 기묘한 꿈같군. 이 시간을 보내면서 계속 떠올린 한 줄 평이었다. 9월이지만 한낮이었기에 느껴지는 땡볕 더위가 이들의 음악과는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음악을 들으면서 점심으로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었고, 하늘은 푸르렀다. 소스가 블루투스 키보드에 스며들어 결국 망가졌지만, 신경도 안 쓰일 정도였다. 이렇게만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 기분을 만끽하며 한 곡 한 곡 듣다 보니 5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완벽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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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LI†XIAOCHUAN · Melodious (리샤오촨 멜로디어스)’의 무대였다. 중간 휴식 시간 동안 피크닉용 좌식 의자를 깔고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돗자리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슬슬 일어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일어나니 딱 맞게 이들이 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새빨간 옷이 그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고, 곧장 트럼펫을 들어 연주를 시작했다.
중국의 재즈, 정말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이었다. 한중일 중 일본이야 국내에서 J-POP도 흥행하고 있고, 재즈가 너무 익숙한 풍류다 보니 쉽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중국 노래들도 국내에서 유명해져서 가끔 들은 것이 전부인데 기존에 느껴온 중국 음악에 관한 스테레오타입이 있어서인지 오리엔탈적인 색채가 강하려나,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그러나 리샤오촨 멜로디어스가 연주하는 음악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몽환적인 비브라폰의 사운드로 무대가 시작되자 순식간에 공기가 수분을 머금은 듯 바뀌었다. 영롱하고 깨끗한 소리가 이전과는 다른 빛으로 숲을 물들였고 그 베이스에 리샤오촨의 단단한 트럼펫 소리가 더해졌다.
여전히 햇빛은 뜨거웠지만 그 속에서 나른함을 찾게 만들어주는 음악이었다. 절대 깨지지 않는 유리구슬이 내는 소리 같았다.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긴장감을 자아냈고, 비브라폰의 솔로 독주 부분에서는 피아노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며 투명한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마지막에 연주되었던 곡 ‘Reunion’을 듣는 순간에는 완벽하게 이 팀의 음악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트럼펫과 비브라폰이 끌어낼 수 있는 벅참을 그대로 만들어낸 듯한 선율에 절대 이 곡은 놓치지 않고 재생 목록에 넣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트럼펫의 쭉 뻗어나가는 소리에는 그만한 기상과 의지가 있었다. 결국 집에 오는 버스에서 어렵게 이 곡을 찾아내 재생 목록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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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후에는 앞서 공연했던 어노잉박스의 퍼레이드 세션이 있었다. 점점 사람들이 웅성거리기에 ‘시작되는구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눈앞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어노잉박스와 그를 따르는 관중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재즈 페스티벌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색다른 문화인 것 같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흥겨웠다. 마칭 밴드처럼 줄지어 행진하던 그들은 계속 퍼레이드를 이어 나가며 소리 내 즐거워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929_050717195_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9212722_rbpqhpod.jpg)
어느덧 해가 슬슬 기울며 노을을 앞둔 시간에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Al Di Meola (알 디 메올라)’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퓨전 밴드 ‘Return to Forever’의 기타리스트였던 그의 명성에 걸맞게 빠르고 화려한 테크닉, 그러면서도 기타의 음색이 주는 편안함이 딱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맞물려 한껏 낭만을 부풀렸다.
어째서인지 그 시간에는 음악만 감상하기보다 이 생생한 음악에 독서를 곁들이고 싶었다. 피부를 따갑게 괴롭히던 햇빛이 사그라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독서와 함께한 그의 음악은 최고였다. 중간중간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부분이면 책에서 눈을 떼고 그의 연주에 집중하기도 했지만, 그제야 이 재즈 페스티벌에 온 목적을 달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무대에서 제일 인상적이었던 것은 빠른 속주 속에서 보이는 정확도였다. 누군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그 일을 정말 잘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알 디 메올라는 굉장히 쉽게 그 연주를 해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노을 뒤에 비치던 햇빛처럼 그 뒤에는 그가 쌓아온 관록과 경험치도 같이 비춰 보였다. 알 디 메올라가 얼마나 긴 기간 동안 음악에, 재즈에 몸담고 있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상 마지막 날의 피날레였던 이소라의 무대는 감상하지 못했다. 돗자리를 정리하면서도 과연 여기서 이소라의 무대를 보지 않고 가는 게 맞는 것인지 수십 번 고민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후에 공연 영상을 찾아보니 정말 좋아하는 곡인 ‘Track 9’을 부르고 있는 이소라의 모습에 아주 약간 후회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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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KakaoTalk_20250929_050717195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9212754_elkvcbrz.jpg)
전반적으로 잡음 없이 깔끔하게 진행된 페스티벌이었다. 중간중간 둘러본 스폰서 부스들도 소란 없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고, 열리던 마케팅 이벤트도 요란하지 않고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이벤트들이라 만족스러웠다. 아이들도, 반려동물들도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란 얼마나 귀한가.
한 번 와보니 다음을 위한 기약을 하게 됐다.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걸 싸 와야지. 피크닉 의자도 꼭 가져와야지.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오면 참 좋겠다, 와 같은 감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좋아하는 재즈에 좋아하는 날씨, 좋아하는 들풀과 함께 하루를 온종일 같이 보냈으니 당연한 감상이었다.
잊을 수 없는 하루, 이 순간을 위해 다들 치열한 삶을 버티고 있는 걸까. 스스로 묻게 되는 날이었다. 자연과 음악, 사랑이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각기 다른 꿈을 꾸고 있을 테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할 하루였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찾아오고 싶은 곳, ‘서울숲 재즈 페스티벌 2025’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