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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오늘도 잘 놀다 갑니다_표지_평면.jpg


 

늘 여행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막상 새로운 곳에 가는 건 두려워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장르의 유튜브 채널 중에서도 특히 여행 유튜브를 가장 즐겨본다.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여행 영상을 찾아보는 게 일상 속 사소한 낙이랄까. 화면 속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고, 영상을 통해 대리만족하며 직접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곤 한다.


소풍족도 챙겨보던 유튜브 채널 중 하나였다. 처음 알게 된 건 약 1년 전 요르단 여행 시리즈였다. 그중에서도 6번째로 업로드된 세계 7대 불가사의 페트라를 간 영상이었는데, 해당 영상에서 만난 페트라는 이국적인 풍경과 오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에는 단순히 '페트라'라는 제목에 끌려 클릭했지만, 영상이 끝날 때쯤에는 소풍족 채널을 운영하는 두 사람의 케미에 빠져들어 한동안 소풍족 채널을 몰아보기도 했다.


현재 소풍족은 약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만난 김은영과 박서우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채널이다. 다양한 여행 채널을 즐겨 보지만, 두 사람의 케미는 소풍족만의 특별한 매력을 만든다. 사실 대부분의 여행 유튜버들은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떠나는 여행 영상은 낯선 공간에서 홀로 마주하는 순간들을 온전히 담아내기에 흥미롭지만, 가끔은 여러 명이 함께 떠난 여행의 즐거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소풍족의 영상은 두 사람의  다른 리액션이 어우러져 더욱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오늘도 잘 놀다 갑니다>는 소풍족 멤버 김은영이 쓴 첫 번째 에세이다. 소풍족으로서 함께한 여행뿐 아니라, 저자의 사적인 여정에서 겪은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느낀 감정들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위트 있고 담백하게 풀어낸 저자의 이야기는 마치 소풍족의 영상을 보듯 눈앞에 생생한 장면이 펼쳐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헬로, 마이쁘렌


 

저자는 북인도를 3주간 돌기로 했다. 3주간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마지막 도시인 자이 살메르에서 사막 노숙을 한다. 모래 위에서 음식을 준비하다 보니 차파티에서는 모래가 씹히기도 했지만, 함께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칭얼대지 않았다. 저자는 누워 인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인도의 추억들을 회상했다.


자전거 릭샤를 탔던 순간, 갠지스강에 가서 죽음을 마주한 순간, 현지인들 사이에서 발리우드 영화를 관람했던 순간. 그 순간들을 떠올리다 보니 저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 인도에 도착해서 '지저분하다', '시끄럽다' 생각했던 스스로가 교만하게 느껴졌다. 지저분하고 시끄럽다는 판단의 기준은 '나'였다. 이 안의 사람들에게는 생활일 뿐이고 잘 살고 있는데 여행이랍시고 와서는 툴툴대다니. 분명 인도의 어떤 모습은 도의적으로 안타까운 점도 있지만, 그저 며칠 머물다 훌쩍 떠날 내가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이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보다 더 따뜻하게, 나보다 더 자주 웃으며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p.44-45
 

 

저자의 인도 여행기를 읽으며 나의 지난 여행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즐거웠던 순간들이 훨씬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여기는 이게 별로네', '이랬으면 더 좋았을 텐데'하고 평가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가 사막에서 느낀 통찰은 여행의 본질을 잘 드러낸다. 누군가는 여행을 단순히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도피처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낯선 풍경 속에서 세상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의 시선과 태도를 비춰보게 만드는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즐거우려고 떠난 여행에서도 평가하던 지난 모습들은 결국 여행지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이어졌던 태도의 문제였다. 살아온 배경이 다른 만큼 생각 또한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 사실을 잊고 섣부르게 재단했던 게 얼마나 오만한 태도인가.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순간을 마주하는가이지 않을까.

 

 


상하이 벌쓰데이


 

저자의 생일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이다. 학생 때는 겨울방학이라 친구들과 함께 보내기 어려웠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상징성이 오히려 부담이 되어, 누군가와 함께 보내자고 먼저 말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30대가 된 뒤, 저자는 "이제는 내 생일은 내가 챙겨야겠다"라고 생각하며 한 달에 100만 원씩 생일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상하이 여행을 떠났다. 중국은 기념일에 폭죽을 터뜨리는 문화가 있어서 하루 종일 폭죽이 터지기를 기다렸지만, 대기오염 문제로 폭죽은 보지 못했다.


처음엔 상하이까지 왔는데 이번 생일도 별거 없이 지나간다고 아쉬워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쨌든 상하이에 왔고, 야경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폭죽 하나 안 터졌다고 해서 내 생일이 의미 없던 건 아니라고.

 

 

평소에는 분명 나름대로 재밌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꼭 '생일'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지나온 시간을 이리저리 돌려 보게 된다. p.244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생일이 떠올랐다. 나의 생일은 시험 직전이라 즐기기보다 시험 걱정에 묻혀 그냥 지나가곤 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한 번 열어준 생일파티도 스스로 즐겼다기보다는, 친구들이 여는 생일파티가 부러워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생일파티였던 거 같다. 그래서 그 생일파티를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라기보다는 엄마에게 늘 미안한 감정이 든다.


시험기간 생일은 남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그냥 생일이라는 걸 말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생일 축하받고 싶어 안달 나 보일 것 같기도 하고, 모두가 시험기간이라 바쁠 텐데라는 생각 때문에 늘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축하해 주길 바라며 기다리는 편이다. 하지만 친한다고 생각했는데 생일을 잊고 한참 지나서야 축하해 주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보면 서운한 건 사실이다. 물론 시험기간이라 바쁜 사실은 이해하지만 나조차도 잘 챙기지 못하는 생일이 남에게도 잊힌다는 건 더 슬프게 느껴져서일까.


그래서 저자의 심정을 알기에 더욱 공감이 갔다. 읽다 보니 나도 매년 생일을 그렇게 흘려보내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생일을 특별하게 만들 책임은 결국 나에게 있는 게 아닐까. 생일은 남이 챙겨줘야 특별해지는 게 아니라, 내가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특별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작은 것 하나라도 스스로 챙기며 즐길 수 있는 생일을 만들어보고 싶다. 물론 그래도 친구들이 기억해 준다면 좋을 거 같다.

 

 

 

여행, 나를 알아가는 가장 솔직한 방법



 

낯선 곳을 걸어야만 새롭게 알게 되는 내가 있고,

낯선 맛을 삼켜봐야만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내가 있다.

낯선 햇빛 아래 서야만 새롭게 보이는 내가 있고,

낯선 내가 되어야만 만날 수 있는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책에는 저자가 경험한 다양한 여행의 순간들이 담겨있다. 혼자 떠나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족과 동행하기도 한다. 각 여행 속에서 마주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저자는 자신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냈다.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게 되고, 또 어느 순간에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두렵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으로 발을 내딛는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에게 여행이 필요한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특별한 목적의 여행이 아니라 하더라도, 낯선 길 위에서 우리는 지금껏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된다.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간다면, 아마도 우리는 평생 단편적인 나만 알고 지나갈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다양한 모습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매력을 알아차리고, 또 그러한 나를 아껴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건강한 자기 사랑의 방식이 아닐까. 누군가의 여정을 따라가며 또 다른 나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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