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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땐 추리 소설 신작인가? 싶었다. 자고로 미술은 (업계인 또는 애호가가 아니고서야)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로 가득 찬 미술관은 어딘가 신비롭고 미지의 공간 같지 않는가. 수상쩍은 사건이 발생하기에도 딱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정직하게 책 제목에 책 내용을 담았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는 제목 속 스파이는 바로 저자를 의미하며, 예술에 문외한이었던 저자가 미술을 알고 싶다는 열망에 뉴욕 현대 예술계에 잠입(브루클린의 작은 갤러리에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다)해 취재 기록을 아카이브한 책이다.

 

저자의 호기심은 매우 적극적이다. 행동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갤러리 직원에 그치지 않고 컬렉터들의 사교 파티, 구겐하임 미술관 경비원 등 예술계의 민낯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먼저 문을 두드렸다. 저자의 아이디어에 주변 사람들 모두 실현 불가능하고 위험하다고 말렸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인 비앙카 보스커의 생각은 확고했다. 예술의 중요성과 예쑬이 과연 인간을 바꿀 수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 해답을 찾고자 예술에 삶을 바친 미치광이(작가의 표현이다)들 한가운데로 떠났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파트는 구겐하임 미술관의 전시실 경비원 시절 이야기였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메트로폴리탄, 모마(MoMA)와 함께 뉴욕 3대 미술관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칸딘스키, 피카소, 세잔, 모네 등 여러 거장들의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 저자가 신입 경비원으로서 맡은 일은 특정 구역의 관객과 작품, 가구 위 먼지층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전시실 안내원은 사진 촬영 규칙을 알리는 게 주 업무이지만 그 기회를 삼아 관객과 함께 작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누구보다 미술관 작품을 오래 보는 사람이 경비원일 것이라는 문장을 읽고 나도 언젠가 정년은퇴를 하게 된다면 소일거리로 미술관 또는 박물관 경비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도서관의 경우 높은 확률로 책등을 오래 보고 막상 책을 펼쳐 이야기를 접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일단 분량이 기니까)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눈앞에 펼쳐진 것이 작품들이 경비원들이 컬렉터보다 작품을 오래 본다는 건 사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경비원들처럼 한 작품을 컬렉터, 큐레이터보다 오래 보면 무엇이 달라질까. 특정 예술 작품과 몇 시간 연속으로 몇 달씩 관계를 맺는 걸 최신 용어로 <느리게 보기>라고 일컫는다. 느리게 보기를 실천할 경우, 예술을 깊게 이해하고 예술을 보는 법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한 구역을 지키는 40분 동안 단 한 작품만을 바라보는 실험(물론 다른 작품들도 꾸준히 함께 봤다)을 계속했다. 작품과 유대감을 쌓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유치원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또는 사랑에 빠졌던 감각을 작품으로부터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 덩어리로 된 작품에도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체감하자, 저자는 새롭게 사랑할 새로운 작품을 계속 나섰다. 한 작품만 파면 질리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예상과 반대되는 결과였다.

 

"'한 방에서 한 작품을 고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세요. 난 하루에 한 시간씩 몇 주 동안 이 조각을 보고 있는데요. 아직도 새로운 게 발견된답니다. 미술관은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이제 나에게 미술관 경험은 메뉴에서 요리를 골라 주문하는 일에 가까워졌다. 원하는 몇 가지만 시키면 된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을 꾸역꾸역 삼길 필요가 없다."라는 파트에서는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예술이란 풀꽃과도 같구나. 저자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니 미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저자와 동기화된 것처럼 조금씩 허무는 듯 하다. 풀꽃이나 나무 같은 숲 자연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고 되려 눈이 맑아지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술 또한 오히려 계속 느리게 보면 새로움이 커진다고 하니, 나도 다음에 미술관에 갈 때는 한 놈만 노린다는 마인드로 한 작품과 사랑에 빠지고 와야겠다.

 

이처럼 책은 그저 예술계 현장을 본 그대로만을 담지 않고 예술에 대한 사색도 깊이 첨가돼 있다. 지금까지 읽은 미술 관련 책은 특정 작품 또는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재미있게 정리된 책들이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책은 참고문헌 제외 450쪽에 달하는 분량을 자랑하는 만큼 단숨에 읽기에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평소 예술에 대해 지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다가오는 10월 황금연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저널리스트인 작가의 탐사 일지는 흡입력 있게 예술계로 당신을 데려다 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르포라는 장르를 따르고 있는 만큼 눈 앞에 그려지는 듯한 설명과 그 현상 속 숨겨진 메세지를 접하기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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