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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여우 창문이다. 우리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렌즈이자 다른 사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구멍이다. 독일어와 일본어라는 두 개의 여우 창문을 가진 작가는 두 개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람임과 동시에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영혼이 없는 자가 되기도 한다.

 

[“블라이슈티프트라는 단어는 내가 완전히 새로운 물건을 다루는 느낌을 주었다. 연필을 이 새 이름으로 불어야 했을 때 나는 살짝 부끄러웠다.”]

 

독일어와 일본어, 두 개의 언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 그녀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살아가는 그녀는 '연필'을 '블라이슈티프트(Bleistift)'라고도 부른다. 같은 사물이 다른 이름을 갖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같은 사물이 아니다. 언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변모한다.

 

["나는 나에게 언어를 선물해준, 독일어로 여성 명사인 타자기를 말엄마라고 부른다. 사실 이 타자기로는 타자기 안과 그 몸 위에 지니고 있는 부호들만 쓸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이 부호들을 반복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을 거쳐 나는 새로운 언어에 입양될 수 있었다. 물론 사무실에서 쓴 것은 모두 업무상의 편지들뿐이고 시는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타자기를 칠 때 종종 큰 기쁨을 느꼈다. 글자를 하나 누르면 바로 그 글자가 종이 위에 나타난다. 하얀 바탕 위에 검정 글씨로, 비밀스럽게. 새 말엄마를 갖게 되면 유년 시절을 다시 한 번 겪을 수 있다. 유년 시절에는 단어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럼으로써 모든 단어가 각자의 삶을 살게 된다. 이 삶은 단어를 문장 내의 의미에서 해방시켜준다. 심지어 어떤 단어들은 너무나 생명력이 넘쳐 마치 신화 속의 인물처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펼쳐 나갈 수 있다."] - 46쪽, [엄마말에서 말엄마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언어를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다.

 

타자기를 '말엄마'라고 부르며 새로운 언어에 입양된다는 서술은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학습을 넘어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울 때 혀와 입술, 성대의 새로운 움직임을 배우는 것은 입양 서류를 작성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유럽에 도착한 화자는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영혼은 비행기처럼 빨리 날 수 없다"라는 문장으로 현대인의 이동 속도가 영혼의 속도를 초과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잃어버린 것은 영혼이라기보다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두 개의 여우 창문 사이를 오가는 것을 반복하다 길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다와다 요코의 세계를 읽는 것은 여행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영혼을 잃어버린 방랑자로 남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도전이다. 낯선 언어를 배운다는 건 앞서 말했듯 내가 여지까지 봐 온 것과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일이다.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어지러울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는 이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큰 위험은 큰 보상을 수반한다. 이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는 여행은 위험한 만큼 성공한다면 세계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커다란 결실을 안겨줄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표지를 넘기는 간단한 일 하나로 그 위험한 길을 먼저 걸어간 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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