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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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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뮤지컬 <르 마스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 르마스크_메인 포스터.jpg

 

 

 

상처의 역사


 

8월 6일부터 11월 9일까지 이모셔널 씨어터가 선보이는 창작 뮤지컬 <르 마스크>는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의 파리를 배경으로 한다. 작품의 주된 무대인 ‘초상 가면 스튜디오(Studio for Portrait)’는 미국인 조각가 안나 콜먼 래드가 설립한 실제 공간을 모티프로 삼는다. 그녀는 전쟁으로 얼굴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군인들의 가면을 제작하여 그들이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르 마스크>는 이 특별한 아틀리에의 역사를 무대 위에서 새롭게 재현한다. 주인공 레오니는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으로, 초상 가면 스튜디오의 견습 조각가이다. 불편한 한쪽 다리로 인해 늘 잡일만 도맡던 그녀는 어느 날 가면을 직접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된다. 그녀가 맡은 가면의 주인은 귀족 출신 병사 프레데릭이다. 전쟁 후유증으로 삶의 의지를 상실한 프레데릭과 장애 여성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소외당한 레오니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회복과 치유의 참된 의미에 다가선다.

 

 

 

송두리째 사라진 삶


 

2-1. 르마스크_컨셉컷_프레데릭 역 이창용.jpg

 

 

첫 번째 넘버 <봉쥬르>가 묘사하는 프랑스의 평화롭고 활기찬 정경은 갑작스러운 폭격과 함께 아수라장으로 뒤바뀐다. 연인과의 아름다운 결혼을 꿈꾸던 귀족 청년 프레데릭은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악몽에 갇혀버리고 만다. 절망에 빠져 좋은 날은 다 끝나버렸다고 믿는 프레데릭의 어두운 모습은 프로포즈를 향한 포부를 야심 차게 밝히던 과거의 그와 동일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 범죄, 자연재해 등의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은 뒤 발생하는 불안장애로, 사건을 지속적으로 재경험하며 인지와 기분이 부정적으로 변화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프레데릭의 성격적 변화는 PTSD의 흔한 양상에 해당한다. 전쟁이라는 참상이 그에게 안긴 상처의 깊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특히 초상 가면 스튜디오에 방문한 첫날 프레데릭이 보이는 행동은 ‘플래시백(flash-back)’이라는 심리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는 트라우마와 관련된 대상을 접했을 때 그 기억에 강렬하게 몰입하여 당시의 감각이 그대로 재현되는 증상을 말한다. 마치 치열한 전장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듯 격렬한 공포에 사로잡힌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보고 있는 풍경의 참혹함을 엿볼 수 있다.

 

다들 선뜻 나서지 못하는 가운데, 레오니가 다가가 그를 진정시킨다. 다행히 그녀의 따뜻한 격려에 힘입어 프레데릭은 차츰 안정을 되찾는다.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능력과 치유의 가능성은 이때부터 암시된다. 의식을 잃기 직전, 프레데릭이 중얼거린다. “르네, 르네가 보고 싶어.” 이는 그가 영영 잃어버렸다고 믿는 아름다운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존재 증명


 

1-4. 르마스크_컨셉컷_레오니 역 이지수.jpg

 

 

한편 레오니의 상처는 그만큼 격렬하지는 않지만, 훨씬 오래되었다. “가만히 있어, 너는 할 수 없어.”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레오니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말이다. 세 번째 넘버 <절름발이 레오니>는 장애로 인해 직업적 기회를 박탈당하고 늘 짐이 되어야만 했던 레오니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프레데릭을 만나 우연히 얻게 된 기회는 그런 레오니에게 천금과도 같았을 것이다. 이미 후원자를 확보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담 레드의 말에도 그녀는 부담을 내려놓지 못한다. 실패하더라도 ‘대신할 사람’은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대신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레데릭의 망가진 얼굴을 복원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의 초상화를 그리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가 가져온 그의 사진들 가운데 온전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모든 의욕을 상실한 프레데릭은 국가의 명령으로 마지못해 스튜디오에 왔을 뿐, 그녀에게 협조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희미한 흔적이라도 붙잡아야 해, 나를 증명하기 위해.”

 

 

 

편하게 말해 봐요


 

르마스크_공연 사진_레오니 역 박란주, 프레데릭 역 현석준_제공 이모셔널씨어터.jpg

 

 

레오니는 다시 한번 프레데릭에게 다가서기로 한다. 이때의 넘버는 <편하게 말해 봐요>. 나를 포함해 많은 관객이 인상 깊은 넘버로 꼽은 곡이다. 레오니의 설득을 거부하며 계단에 주저앉은 프레데릭의 옆에 다가앉은 그녀는 하나씩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이름은 무엇인지, 고향은 어디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마치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던지는 안부 인사처럼.”

 

그녀의 사려 깊은 질문에 프레데릭은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이는 레오니의 다가섬이 단지 자신의 기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따뜻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주고받다가 자신이 프레데릭보다 연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살짝 거만해지는 레오니의 태도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관계는 개선되었지만, 프레데릭의 얼굴을 되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꿈을 향한 절박함과 그의 회복을 바라는 간절함 속에서 고뇌하던 레오니는 결국 프레데릭의 당부를 외면하고 그의 약혼녀 르네에게 몰래 편지를 보낸다. 그녀가 보내준 사진 덕분에 작업은 수월해지지만, 뜻밖의 불행이 닥친다. 종전과 함께 스튜디오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토록 꿈에 그리던 기회를 잃게 된 레오니는 좌절한다. 그러자 이번엔 프레데릭이 그녀에게 다가선다. 프레데릭의 목소리를 통해 리프라이즈되는 <편하게 말해 봐요>는 진심이 담긴 손길은 결국 되돌아오기 마련이라는 진실을 들려주는 것 같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응원보다는 조용히 곁을 지키는 배려라는 것 또한.

 

 

 

난 언제나 살고 싶었어


 

르마스크_공연 사진_레오니 역 이지수, 프레데릭 역 임정모_제공 이모셔널씨어터.jpg

 

 

송별회에서 연설로 후원자들을 모으겠다는 프레데릭의 약속에 그녀는 희망을 되찾지만, 다시금 문제가 발생한다. 르네에게서 프레데릭을 만나러 오겠다는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레오니의 소꿉친구 페르낭이 그녀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장면을 프레데릭이 목격하고 만다. 그리고 르네는 모습이 변한 프레데릭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성을 잃고 절규하는 프레데릭의 슬픔은 <나의 추락>을 통해 절정을 맞이한다. “신은 왜 나를 살렸나, 왜 나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나.” 만년필의 펜촉을 제 목에 겨누는 프레데릭과 다리를 절며 필사적으로 그를 말리는 레오니의 교차는 긴박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생사의 기로에서 이들이 깨달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삶의 의지’였다. “우리 사실 살고 싶잖아요.” 레오니의 말은 그의 숨겨진 진심을 대변한다.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라는 말은 그 상투성으로 인해 종종 무책임해지지만, 중요한 진실이 담겨있다. 박살난 인생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자신을 증명할 유일한 기회를 잃고도 다시 일어서려는 이유. 죽음으로 기우는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엔 늘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잠들어있다. 이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말처럼,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살기 싫을 뿐이다.

 

이때 파리의 풍경을 비추던 스튜디오의 창문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바뀌어있다.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살아있어>는 삶에 대한 선언 그 자체다. 색유리 너머로 쏟아지는 빛은 있는 힘껏 노래하는 그들을 성스럽게 감싼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빛나는 결의를 보여주는 듯하다. 조명과 장소의 분위기를 굉장히 잘 활용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내지 못해도 돼


 

르마스크_공연 사진_레오니 역 홍지희, 프레데릭 역 이창용_제공 이모셔널씨어터.jpg

 

 

죽음의 문턱에서 프레데릭을 구해내면서 레오니 역시 스스로의 진실에 도달한다. “이미 충분했던 걸지도 모르겠다고.” 가면을 쓰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송별회에서 제대로 연설을 끝마치지 못한 프레데릭을 위로하며 레오니가 부르는 <내 세상 살아가는 길>은 <살아있어>와 더불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무너지더라도, 해내지 못하더라도, 꼭 오늘이 아니어도 돼.” 프레데릭의 실패를 통해 레오니는 자신의 실패와 마주한다. 사실은 너무나 보잘것없었던 두려움과.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었다. 타인을 향한 선의에는 자신의 바람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도우며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깨닫곤 한다. 나는 너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나. 왜 그토록 돕고 싶었나. 우리는 삶을 사랑하기에 타인과 연결된다. 선의가 되돌아오고 퍼져나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마담 레드는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레오니는 조각가의 꿈을 이어 나가게 된다. 프레데릭은 고향으로 돌아가 르네에게 청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젊은 남녀가 두 주연이기에 르네가 프레데릭을 외면하고 레오니와 프레데릭의 러브라인이 성사되는 결말을 상상했는데 로맨스가 아닌 우정이기에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다. 레오니가 파리의 거리를 향해 커다란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엔딩은 벅찬 여운을 남긴다.

 

 

 

빈자리에도 불구하고


 

르마스크_공연 사진_레오니 역 나하나, 프레데릭 역 임진섭, 페르낭 역 박근식, 마담 래드 역 정영아_제공 이모셔널씨어터.jpg

 

 

공연을 볼 때는 큰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리뷰를 적다 보니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지수, 이창용, 박근식, 정영아 네 명의 배우 모두 고음이 잦은 넘버들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2인극으로 만들어졌어도 서사가 크게 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은 분량과 역할 속에서도 빛나는 매력을 지닌 조연들이기에 더욱 미련이 남는다. 레오니를 향한 페르낭의 귀여운 짝사랑은 트라우마라는 어두운 소재와 함께 가라앉는 극의 분위기를 발랄하게 중화시킨다. 그의 사랑스러운 열정 앞에 나를 포함한 많은 관객이 웃음으로 무장해제되었다.

 

마담 레드 역시 선악이 불분명하고 어딘가 미스테리어스한 캐릭터성으로 눈길이 간다. 얼굴이 훼손된 군인들을 위한 가면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라는 독특한 소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데, 서사가 더 주어지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속을 알 수 없기에 생겨나는 매력도 있지만.

 

관객들이 스튜디오의 후원자가 되어 이야기와 함께하는 구조도 인상적이다. 앞의 관객들이 마담 레드의 건배사 “Santé!”를 큰소리로 따라 외치자 정영아 배우가 “벌써 취하신 건 아니죠?”라는 애드리브를 던진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그때만큼은 공연장의 모두가 무대의 일원이었다. 100분 동안 그들의 여정에 동행한 후원자로서 이 따뜻한 스튜디오의 앞날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상처가 아픈 까닭은 그것이 치유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이 진실만 깨닫는다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잡지 못하는 기회는 있어도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 순간은 없기에.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도달한 삶의 진실과 함께 이제는 각자의 길을 나아갈 레오니와 프레데릭의 미래는, 이미 충분히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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