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란 '세상을 사는 방식과 태도'를 말하며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이다. 그래서 아비투스는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이며, 계층 및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기도 하다.
성공한 삶과 개인의 품격은 돈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책에 따르면 지식이나 문화적 취향, 외모, 말하는 방식, 그리고 심리 상태와 사회적 관계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러한 자본 중에서 문화적 자본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2022년쯤 SNS에서는 올드머니룩이 유행이었다. 올드머니룩은 대대로 이어진 부유한 상류층들이 입던 스타일로, 요란하게 드러내기보다는 실루엣이나 소재로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한때는 큼지막한 로고가 프린팅된 옷들이 많이 보였지만, 올드머니룩에서는 로고가 보이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만 알아볼 수 있는 명품을 입는다. 유행은 변하더라도 전통과 우아함을 중시하는 상류층 문화자본의 특징이 올드머니패션에서 드러난다. 이처럼, 책에 따르면 부유층이 갖는 우월한 감정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매너, 가치, 고급문화에 대한 감각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과거보다 엄청난 경제발전이 일어난 시점에서 순수한 물질 소비는 이제 더 이상 사회적 의미를 구성하는 척도가 아니다. 그래서 몇 년에 걸쳐서 축적된 문화적 자본, 즉 "취향"은 돈이 있다고 당장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예로, 부유층들이 갖는 문화자본은 당장 돈으로 살 수 있는 예술 작품이 아닌, 어린 시절부터 즐긴 수상 스포츠 취미나 악기연주 같은 것들이다.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어렸을 때부터 훈련된 취향과 트렌드를 꿰뚫는 통찰력이 필요하기에 문화자본은 경제 자본보다 훨씬 높게 평가된다고 한다.
저자는 "교양 있는 사람은 취향을 드러내되 절대 거기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라고 하며 그 예시로 놀이공원 입장권보다 저렴한 전시회 입장권을 든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최근에는 SNS의 영향으로 전시회도 상류층만의 문화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전시회가 갖는 의미 또한 변화하여 예술 작품 감상을 넘어서 "인증샷"을 위한, 즉 문화자본을 누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1960년대에 피에르 부르디외는 20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이 찍는 사진을 분석하여 '대중적 취향' - '허세적 취향' - '정통 취향'으로 나누었다. 사진을 분석한 결과, 문화자본은 개인적 선호보다는 사회적 지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르디외의 유명한 말인 "취향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게 하는데, 인간은 자기가 가진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는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좋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가진 것에 만족하는 태도도 옳지만,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엘리트들이 즐기는 고급 취향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중산층의 사람도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뛰어난 문화자본을 가질 수 있다. 결국 남들이 "허세"라고 일컫는 취향도 엘리트층의 문화자본을 가지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격식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서로의 관계를 편하게 만들기 위한 매너가 아닌, 사회적 상호 관계를 더 일상적이고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매너는 우아함과 고상함의 상징이다. 이때, 격식이 필요한 지위에 오르기 전에 매너를 미리 익혀 두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예절 규칙을 돌아보고 좋은 습관이 몸에 배도록 하여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문화자본을 가지면서도 '소탈함'을 지켜야 한다. 애써 과시하지 않는 세련됨이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화적 자본은 까다롭고 내면화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 모두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트렌드 전문가인 마티아스 호르크스는 좋은 취향이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진짜 자기 일을 진정성 있게 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즉, 계속해서 바뀌는 문화 속에서 변화의 흐름을 읽고 통찰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문화자본이 "삶을 더 높은 차원과 연결함으로써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결국 취향은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나아가게 하는 힘으로써의 가치가 있기에 단순히 사치나 예쁜 것, 복잡하게 가꾸어야 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일부분으로 바라보며 함께하는 것이다. 거창하게 생각하기 본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 타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가끔씩 궁금해하는 걸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