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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상반기를 끌고 간 공연 3편


 

골라놓고 보니 어쩐지 3편 다 연극이지만 모리스나 라파치니의 정원 같은 좋은 뮤지컬들도 많았다.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에게도 응원을 보내며, 1월부터 6월까지 나를 자꾸만 ‘앉을까요?’ 하게 만든 공연 3편을 소개한다.



1. [연극] 카포네 트릴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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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작의 연극이다. 한 에피소드 당 75~80분으로 이루어지고 각 에피소드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하나씩만 봐도 무방하다. 카포네의 도시 시카고에서 벌어진 3개의 에피소드가 시간 순으로 나열되는데 순서는 로키-루시퍼-빈디치 복선을 찾는 재미를 느끼고 싶으면 순서를 거꾸로 보는 것도 재미있다. 빈디치에서 두스와 빈디치가 찾아내는 단서들이 로키와 루시퍼에 등장해 아~ 그거!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이 짜릿하다.


‘나쁜 일은 항상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는 연극의 카피처럼 시카고의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일어나는 세 에피소드는 카포네 조직의 권력 다툼과 배신, 복수가 이리저리 얽혀있다. 이 공연을 즐기게 된 이유는 세 옴니버스 스토리 간의 유기성과 복선을 찾아가는 재미,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도 있었지만 자유와 해방의 문을 열고 나아가는 ‘로키’ 에피소드의 ‘롤라’ 덕분이기도 했다.


시카고의 클럽에서 가장 유명한 쇼걸인 롤라는 드문드문 끊긴 기억을 가지고 잠에서 깨어난다. 이 기억을 다 되찾아야만 렉싱턴 호텔 661호에서 나갈 수 있다고 말하는 광대들은 롤라에게 전날 밤의 기억을 전부 재생시킨다. 카포네 보이들의 끝없는 살인과 치정, 바람, 사랑. 여러 가지가 얽힌 채로 쌓인 거짓말들이 합쳐지며 롤라의 결혼식 전날 밤은 점점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끌린다.


정신없는 내용이 70분을 가득 채우지만, 결국 마지막 10분은 롤라의 쇼타임이다. 혼자서는 이 방을 나갈 수 없는 롤라가 자신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줄 남자를 찾으며 거짓말과 죽음으로 탑을 쌓아올리지만 결국은 깨닫는다. 살인의 도시인 이 카포네에서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 모두를 사랑한 척 하였으며, 실제로는 그 누구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당신을 나가게 해 줄 남자를 찾았냐고 말하는 광대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난 누구도 사랑한 적 없고, 혼자서 이 방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롤라의 모습은 어쩐지 눈물을 찔끔 흘리게 된다.


카포네의 도시, 살인자의 여자가 아니라면 살아남기 어려운 이 피로 물든 도시에서 롤라는 클럽에서 추던 춤을 추고,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혼자서 661호의 문을 열고 달려 나간다. 웨딩드레스를 버리고, 살인과 사랑으로 뒤덮힌 도시를 떠나 해방을 맞이하는 배우들의 웃는 얼굴이 공연장에 나를 자꾸만 앉게 만들었다.

 


2. [연극] 타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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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내용이 아주 완벽하게 들어맞아 소름이 돋았던 극이다. 자첫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둘 표를 예매했을 만큼 좋았던 극이다. 독일 극으로, 동독의 방첩기관 슈타지의 민간인 사찰을 소재로 다룬 극이며 동명의 영화가 존재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비밀경찰이 민간인 사찰을 진행하며 동독의 시스템과 이데올로기를 부정하는 예술가들을 잡아낸다. 비밀경찰인 비즐러는 반체제 극작가인 드라이만을 감시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보고서에 작성하지만 어느 순간 드라이만의 사생활, 그가 동독의 비참한 현실을 알리는 연극을 쓰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눈과 귀를 막는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를 보고하며 감시 보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하고, 드라이만의 연인인 크리스타에게 응원을 건네는 등, 초반 냉혈한의 모습에서 완전히 뒤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악의 평범성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이렇게 변화한 계기는 ‘타인의 삶’을 깊숙하게 들여다보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드라이만의 모든 일상을 감시하며, 그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원래 알아가기 시작하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게 되면 같은 편이 되고 싶거나, 혹은 용서하게 된다. 타인의 삶을 모조리 들여다보는 것은 애정을 되찾는 일이다. 드라이만의 생각, 동독의 시스템을 비판하는 사상, 이러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함께 모여 글을 쓰는 열정. 이 모든 것들을 맥락과 함께 받아들이게 되면 그를 이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연극이 가장 좋았던 이유는 깊이있는 텍스트에 그치지 않는 짜릿한 연출에도 있다. 감시를 받지 않았다고 믿었으나, 자신이 주요 감시대상이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드라이만은 감시기록 열람을 요청한다. 한박스 정도일 거라고 예상한 감시보고서가 몇십 박스씩 흩날리고, 무대 위로는 수많은 도청선들이 떨어지는 연출은 정말 압권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얼마나 많은 생각, 사상, 창작물 등을 보호받으며 살아왔는지. 자신의 책을 비즐러에게 헌정하며 끝나는 결말은 서로에게 타인인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의 삶에 동요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결국 개인은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되는지 지켜보는 2시간이 매우 흥미로웠다. 재연이 돌아온다면 꼭 전캐스트를 다 보고 싶은 마음!!



3. [연극]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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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지... 로 시작하여 필리버스터를 하고 싶은 극이다. 못사극 중 가장 궁금했던 극 TOP3에 순위를 올리고 있는데 (나머지 두 개는 R&J, 나쁜자석. 프라이드가 오연으로 돌아오며 못사극 3개를 전부 보게 되었다.) 연극열전의 극을 믿고 보는 사람으로 6년만에 돌아왔다는 이 레전드 극이 도대체 어떤 극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


1958년과 2008년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 연극은 이름이 같은 두 시기의 등장인물로 구성된 극이고 내용에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없지만 ‘동성애’라는 주제가 극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동성애가 비정상적이었고, 정신과적 질병이라 치료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었던 1958년과 성소수자들의 퍼레이드가 열리며 함께 퍼레이드를 즐기는 2008년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 모두에서 지키고자 하는 ‘나’와 ‘나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드라는 제목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동성애가 질병이던 시절에는 나를 빼앗기고, 감정에서 나아가 존재까지 부정하며 잃어가던 프라이드. 그리고 현재에 와서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며 우정과 사랑을 모두 쥐고 퍼레이드에 뛰어들어 지켜내는 프라이드.


자신에게 들리는 목소리를 믿고 따라가다가도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없었던 1958년의 필립, 올리버, 실비아와는 다르게 2008년의 그들은 자신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사회의 변화와 함께 성장한 개인을 무지개빛 조명 아래에서 바라보는 일이 참 뭉클했다.


사랑과 우정,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며 깊은 마음 속에 있는 ‘나’를 들여다보는 연극. 연극열전이 늘 말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소재가 이번에도 내게 정통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며 자셋까지 하는 3회차 내내 지루할 틈 없이 모든 것들을 깊게 느낄 수 있는 연극이었다.


하반기에는 더 좋은 연극, 더 좋은 뮤지컬과 스쳐 만나기를! 입을 떡 벌리며 돌아오는 길에 인터파크로 들어가 다음 표를 잡을 날짜를 검색하는 순간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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