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최근 면접을 봤던 두 곳의 회사로부터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너의 열정은 무엇인지, 어디서 동기부여를 얻는지 설명해 줘. 요리하기, 좋아하는 TV쇼 보기, 여행. 그게 무엇이든 말이야. 우리 회사에 대해 열정이 있다는 말은 안 믿으니까 진짜 너 얘기를 해.”


뇌정지가 왔다. 면접장에서 그럴듯한 대답을 꺼내야 한다는 압박을 떠나서, 지난날의 나는 이런 것들을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한국은 10대 때 구체적인 진로가 없으면 대부분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편이니 일단 공부를 했다. 동아리와 봉사도 내가 특출나게 그 분야에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남들이 하니까, 장학금 충족 요건에 있으니까’ 라는 이유가 더 컸다. 물론 그 또한 나의 개인적인 성향과 관심사가 반영된 활동들이었으며, 이때 만났던 사람들과 지금까지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그 중에는 나를 아트인사이트까지 이끌어준 소중한 인연도 있다. 요는, 돌아보니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술술 이야기할 정도로 깊이 생각해 봤던 적이 손에 꼽힐 만큼 드물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이 질문을 했던 첫 번째 회사가 답변을 준비할 시간을 줬다. 그래도 올해는 아트인사이트에 지원서를 쓰면서 비슷한 생각을 깊게 해봤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지원서를 뒤적거리며 지난날을 차분히 돌아볼 정도의 여유는 없었다.


그러다 정말 뜬금없게도 어떤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의 한 장면이었다. 땅울림을 발동한 에렌을 막기 위해 좌표의 공간에서 동조자인 지크를 설득하는 아르민의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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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장면 中, 출처: 화면 캡처


 

“저녁노을이 질 무렵, 언덕 위의 나무를 향해서 셋이서 달리기를 했어요.”

 

“그날은 바람이 따스해서 그저 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어요.”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셋이 달리기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닐까 하고요.”

 

 

왜 갑자기 이 장면이 생각난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근에 전직 웹툰 작가이자 유튜버인 ‘침착맨’의 진격의 거인 감상회 영상을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 장면이 면접장에서 나의 열정과 동기부여를 설명하기 위한 제법 괜찮은 인사이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나는 재빠르게 답변을 메모했고, 면접관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나의 열정은 전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문화예술에 대한 열정. 특히 더 많은 사람들과 미술의 즐거움을 나누는 것을 어떤 포지션에서든 이루고 싶다.”


“그리고 후자는 내 일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때로 우리는 각자가 세운 목표를 이루지 못하거나 목표 자체를 잃고 방황하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동기와 열정은 일상에서 온다. 산책하며 길에서 고양이 사진을 찍는 것. 길거리에서 따스한 햇살을 즐기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내가 다음날 눈을 떠야 하는 이유가, 내가 내일을 기대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대하다 보면 새로운 목표가 생긴다. 그래서 일상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즐기려고 한다.”


이게 면접관이 듣고 싶었던 이상적인 답변인지는 모르겠다. 당시에는 ‘문화예술에 열정이 있습니다’ 한마디만 던져놓고 정적 속에서 의미 없는 말들만 두세 마디 반복하다 얼버무리는 상황을 초래하지 않았다는 점에 자축하며 스스로 임기응변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에 돌아와서 면접을 복기한 후로도 그때의 대답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일상을 사랑하기. 생각해 보면 이것이 요즘 나의 진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첫 좌절의 감정, 사회의 찬 맛이라는 것을 느꼈다. 때로는 경쟁 속에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입장에서 창의적인 무례함을 겪어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나를 서서히 잠식했던 무기력과 막막함은 내가 무엇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결정론과 자유의지를 아우르는 원대한 사유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은 제법 오랜 시간 이어졌다.


우연히 면접장에서 받았던 질문은 내 방향성의 실마리를 찾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목표를 위해 일상을 충실히 살아가기도 하지만, 일상을 누리기 위해 다음 단계를 구상하기도 한다. 무엇이든 소홀히 여길 것은 없었고, 소중한 것이 생기면 목표와 방향은 어떤 형태로든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지치지 않기. 컬쳐리스트 지원서를 작성하며 소개했던 나의 목표 중 하나다. 지금까지의 나는 스스로 지치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지치지 않을 것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차근차근 일상에서부터 작은 즐거움을 찾아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 최근의 루틴은 일주일에 4번은 저녁 산책을 나가기. 나가서 고양이를 발견하면 사진찍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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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은 고양이 사진들. 출처: 직접 촬영

 

 

또 다른 루틴도 있다. 사소한 것에 감사하기다. 감사하게도 나를 불안감에서 오래 잠식되지 않게 이끌어준 분들이 있었다. 언젠가는 이분들께 받은 호의만큼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우연한 계기가 겹쳐 삶을 기대하게 되는 동기는 생각보다 다양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이든 어떻게 해서라도 잘해보려는 자세로 임하다 보면, 사소하더라도 뜻하지 않은 작은 성과가 뒤따르는 것 같다. 앞으로의 나는 또 어떤 경험에서 동기와 열정을 찾게 될까? 나의 주변을 색다르게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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