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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코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의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인생영화가 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항상 어렵다. 기준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특히 나는 그때그때 내 상황에 따라 중요하게 느끼는 가치가 달라지곤 한다. 영상미, 탄탄한 스토리, 배우의 연기력, 음악, 혹은 시의적 메시지, 떠오르는 많은 부분들 중에서 어느 하나만을 꼽아 “이 영화야!” 하고 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내가 평점을 높게 준 영화 목록을 찾아보곤 했다. 그러나 그 목록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지금의 내게도 여전히 같은 울림을 주는가에 대해선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분명 뛰어난 영화들이고,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영화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다시 인생영화가 뭐냐는 질문을 받고 곰곰히 고민해 보았다. 그리고 떠올린 생각은 이것이었다.
‘인생영화란 지금의 나에게 다시 보여주고 싶은 영화가 아닐까?’
그런 관점에서 내 인생영화로 떠오른 작품은 바로 영화 [코다]이다.
[코다]는 2014년 개봉했던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제목 ‘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로,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의미한다.
주인공 루비는 엄마, 아빠, 오빠 모두가 농인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루비만이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루비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어업을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
루비는 어느 날 우연히 합창단에 들어간다. 그 때 재능을 알아본 선생님께 발탁되어 버클리 음대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어업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떨치지 못한다. 가족을 보조하는 딸로서의 삶과 음악이라는 꿈을 좇고 싶은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루비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결국 루비는 꿈을 포기하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하고 음대에 합격해 집을 떠나게 된다.
이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루비의 꿈과 성취에 대해 집중했었다. 하지만 최근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에서 루비가 겪는 안정성과 이별 사이의 갈등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함께한 사람들과의 유대감, 그리고 각자의 삶을 위해 떠나야 하는 순간들이 유독 인상깊게 남았다.
루비가 있었기에 가족들은 더 편하게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루비가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들은 새로운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영화의 메인 테마 ‘Both Sides now'의 3절 가사는 이 영화의 메시지인 “인생의 양면성”을 더 명확히 드러낸다.
I've looked at life from both sides now
나는 이제 인생을 양면에서 보게 되었어
From win and lose and sill somehow
이기는 쪽과 지는 쪽 모두를, 그렇게 하고 나니까
It's life's illusions I recall
내가 봐왔던 인생은 환상에 가까워서
I really don't know life at all
나는 인생이 뭔지 정말 모르겠어
인생은 늘 양면성을 지닌다. 그 실체를 완벽하게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그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받아들이며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이 노래에 담겨있다.
에밀리아 존스의 'Both Sides Now'
[코다]를 지금 내게 다시 보여주고 싶은 영화로 꼽은 이유도 이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왔다. ‘나는 왜 이별을 이렇게까지 힘들어할까?’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별을 힘들어한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이 유독 깊고 길게 이어지곤 했다. 공연 활동 등으로 잠시 함께 했던 사람들과의 이별조차,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지면 깊은 상실감에 빠지곤 했다. 친밀감의 정도와는 관계없이, 이별이라는 행위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그 후유증과 이별에 대한 여파가 너무 커 공연을 그만할까 생각했던 순간, 나는 내가 타인에 비해 훨씬 과하고 예민하게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꾸준히 이런 슬픔에 시달렸다. 나는 결국 이런 감정에서 회피하기 위해 안정성을 추구하게 되었다. 익숙하고 꾸준한 관계, 반복적인 일상, 예측 가능한 흐름들을 만들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원한 것은 없었다. 어딜가나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나는 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동료와 이별했다. 그 때 나는 다시 이 영화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전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이별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별은 여전히 슬픈 일이지만 [코다]에서 이야기하는 인생의 양면성을 통해 나는 이별의 또 다른 면을, 또 다른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헤어짐’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함께한 시간의 의미와 그 유대가 쌓인 시간을 기억하는 것에 더 마음을 두기로 했다. 그 사람들의 앞날이 부디 행복하길, 혹시 굴곡이 생기더라도 유연하게 이겨낼 수 있는 굴곡 뿐이기를 바라는 것이 더 긍정적인 마무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수많은 이별이 있겠지만, [코다]에서처럼 담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 순간들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