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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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모든 의욕과 감각을 마비시킨 지난 오후, 삼청동 언덕 끝에 위치한 뮤지엄 한미를 찾았다. 국내 최초 미술관으로 출발한 한미사진미술관이 개관 20주년을 맞아 삼청동으로 본관을 옮겨, 뮤지엄 한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종로구는 서울에서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특히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일대는 관광객과 시민들로 거리가 늘 북적인다. 그러나 뮤지엄 한미는 삼청동 깊숙한 곳에 위치해있다. 언덕을 오르며 점차 고요해지는 풍경은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부터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심어주며, 전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뮤지엄 한미에서 현재 진행 중인 전시는 <포토북 속의 매그넘>으로 지난 80년 동안의 매그넘 포토스가 자신들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보여준다. 전시 소개에 앞서 매그넘 포토스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매그넘 포토스는 1947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조지 로저, 데이비드 사이무어를 주축으로 설립된 사진가 협동조합이다. 매그넘 소속 사진가들은 전 세계를 무대 삼아 세계 곳곳의 사건, 인물, 문화를 그들만의 시선으로 포착해왔다.

 

["매그넘은 사고의 공동체이자, 인간 공통의 특성,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호기심, 그것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려는 열망이 모여 있는 곳이다"]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이번 전시는 포토북 전시이기 때문에 기존의 사진전과는 확연히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을 전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매그넘 포토스 소속 사진가의 포토북을 직접 읽고 만져볼 수 있는 리딩룸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특히 Part 5에서는 출간되지 못한 포토북과 제작 과정에서 오간 서신 일부도 만나볼 수 있다.


단순히 사진을 감상하는 전시가 아니라, 그 사진들이 모여 한 권의 포토북으로 완성되기까지의 맥락과 의도를 따라가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인상깊었던 전시였다.

 

 

 

Part 2. 시대 속의 매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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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간인 시대 속의 매그넘에서는 매그넘 소속 사진가들이 포착한 전 세계 주요 사건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사진예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가게 하는 공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역사를 글로 배운다. 교과서의 문장 몇 줄과, 연표의 숫자, 인물의 이름. 그러나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임팩트는 종종 수많은 글보다 더 깊고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생각해 보면, 한국사에서 유독 선명하게 기억나는 시기가 1800년대 후반부터다. 현세대와 시간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 시기부터는 역사책에서 사진을 통해 역사를 직접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사진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아주 오래전 일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록함으로써 후대가 지나간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인지 가장 오래 시선이 머문 사진은 한국전쟁의 모습을 찍은 베르너 비쇼프의 사진이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목격한 후 수동적인 관찰자로 머물 수 없다는 자각에 사진 저널리즘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대피하는 민간인의 모습과 전쟁고아 그리고 전투 지역에 갇혀있던 아이들이 서로의 모습을 씻겨주는 비쇼프의 사진은 전쟁의 참혹함을 상기시키며,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 될 역사라는 메시지를 강력히 전했다.


몇 걸음 뒤 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가장 큰 인명 피해를 낳은 테러로 기록되는 9.11 테러를 기록한 사진도 마주할 수 있었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연기에 가려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은 단 한 장의 사진으로도 그날의 충격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과연 사진이라는 시각 매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우리에게 과거를 이토록 생생하게 마주할 기회가 있었을까. Part 2는 단순히 시대를 기록한 포토북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사진이라는 예술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공간이었다.

 

 

 

Part 3. 마틴 파와 2000년 이후 포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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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사진전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다. 2021년 진행된 요시고 사진전은 무려 관람객 40만 명을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사진을 예술의 영역으로 온전히 받이들이는 데까지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사진이 역사적 기록물로서 지닌 가치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이미지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예술적 무게를 지닐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이 일상화되어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고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만큼,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사진이 예술작품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어느 날, 회화 전시에는 관심이 없지만 사진전만큼은 얼리버드로 예매해 관람하는 지인에게 왜 사진전만 보러 가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은 간결했다. 회화 작품은 어렵고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사진은 내가 직접 찍기도 하니까 감상하기 쉽다는 이유였다.


돌아보면, 나는 예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면서도, 왜 오랜 시간 공들인 회화 작품보다 사진전에 더 많은 관심이 몰리는 것일까라는 질투 섞인 마음에 정작 사진이 지닌 예술적 깊이나 의미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술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다고 믿으면서 정작 스스로는 사진이라는 장르를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사진, 더 나아가 포토북이 하나의 온전한 예술 작품임을 납득하게 해주었다. 포토북은 사진가의 시선과 태도가 고스란히 담긴 하나의 예술이다. 무엇보다 포토북은 펼치는 순간 어느 장소든 한 사람만을 위한 전시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이들이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낸 장르이기도 하다.


여러 포토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와 관련 인터뷰 영상을 접하며 사진을 예술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던 과거의 태도가 부끄러워졌다.  2000년대 이후 포토북을 바라보는 방식에 점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변화의 흐름을 전시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또 새로운 장르가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Part 3에서는 유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유연하지 못했던 생각의 울타리를 부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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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전시 공간이었던 Part 6에서는 여러 지역을 배경으로 한 포토북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포토북을 단지 여러 장의 사진을 한 번에 모아볼 수 있는 오프라인 사진첩 정도로 여겼지만, 전시를 관람한 후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는 포토북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서 앞으로 더 주목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사진에는 찍는 사람의 태도와 애정이 그대로 담긴다. 동일한 피사체를 두고도 사진이 전달하는 분위기나 메시지가 달라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포토북은 단순한 이미지의 나열이 아니다. 포토북은 한 작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의 조각들이 모여있는 하나의 작품이다.


<포토북 속의 매그넘>은 뮤지엄 한미에서 9월 14일까지 진행된다. 사진전에 익숙한 관람객뿐 아니라, 사진예술에 회의적이었던 이들에게도 포토북이 가진 새로운 매력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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