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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아주는’ 밴드를 가끔 만난다. 내가 말하는 잘 놀아주는 밴드는 관객이 그들의 노래를 잘 알지 못해도 그 무대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밴드다. 그들의 노래를 잘 알면 두 배, 세 배로 즐겁게 해주는 밴드다. 잘 놀아주는 밴드가 결국 공연을 잘하는 밴드라고 생각한다. 공연을 잘하는 것과 작곡이나 연주, 노래를 잘하는 것은 다르다. 관객이 한껏 몰입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야 공연을 잘하는 것. 예전에는 호응 유도를 잘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호응 유도를 하는데도 점점 더 가라앉는 무대, 그리고 별다른 호응 유도 없이도 관객을 흥분시키는 무대를 각각 봤다. 그렇다면 관객을 몰입시키는 ‘잘 놀아주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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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토킹 헤즈의 콘서트 실황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를 보고 왔다. 이름은 알지만 70, 8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미국의 뉴웨이브 밴드라 내 관심 분야와 겹치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토킹 헤즈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들어 보기로 했다. 역시나 아는 노래는 없었고, 열댓 개의 노래로 이루어진 셋리스트 중 마지막 두어 개가 그나마 귀에 익숙했다.


무대 구성이 화려한 편이 아닌데도 볼거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전에 본 밴드 공연들에서는 ‘볼거리’가 많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다. 악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아서 귀 호강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반면 사브리나 카펜터와 제스 글린 같은 팝 공연을 처음 봤을 때 그들의 무대는 눈도 호강하는 기분이라 놀랐던 기억이 있다. 화려한 무대 의상도 그렇고 우리나라 아이돌 같은 퍼포먼스는 아니지만 춤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있는 것이 밴드 1975의 공연이라고 느꼈다. 저게 설마 안무일까 싶으면서도 저 움직임이 없으면 이 무대가 부족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토킹 헤즈의 움직임에도 그런 감상을 가졌다. 처음에는 리듬을 타는 방법이 특이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여러 명이 같은 동작을 하는 경우도 많아 나름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무대의 일부임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영화관에서 받은 책자를 펼쳐 보니 일본의 전통극에서 영감을 받은 안무라고 한다. 하나 같이 절도 넘치는 움직임이라 부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도, 같은 이유로 인해 박자가 강하게 전해졌다. 나도 어느새 발과 고개를 까딱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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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신기했던 점 중 하나는 관객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열광했는지 보여주는 가장 쉬운 방법이 환호하는 현장을 보여주는 것일 텐데 그런 장면이 없다시피 한다. 대신 땀을 흘리며 무대를 활보하고 서로 눈을 맞추는 연주자들을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담았다. 꼭 자기들만의 세상에 갇힌 것 같고, 어떤 면에서는 연극을 보는 듯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놀아준다’라는 표현은 주로 아이를 대상으로 쓴다. 어른을 놀아주지 않는 이유는, 같이 노는 상대도 즐거워할 때에야 본인도 즐거워지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사회적 경험이 부족해 본인이 즐거우면 상대도 즐겁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대로 성장한) 어른은 타인의 기분을 상대적으로 더 잘 파악하는 만큼, 놀이를 함께하는 상대가 즐거워하지 않으면 본인도 재미를 덜 느낀다. 그러다 보니 어른 사이에서는 같이 놀면 놀았지, 놀아주고 놀아줌을 받지는 않는다. 상대가 나를 놀아주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재미는 사라진다.


이를 고려하면 ‘잘 놀아주는’ 능력을 갖춘 듯 보이는 밴드도 사실은 본인들이 먼저 ‘잘 논다’라는 뜻이다. 관객을 위한 무대를 한다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무대를 하고 있으니 그게 자연스럽게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이 실황 영화에서 관객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토킹 헤즈가 보여준 무대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데 다른 관객이 얼마나 뜨겁게 환호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무대를 구성하는 요소와 그 위에서 자체적으로 내뿜는 열기를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열기가 40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지난 뒤 펼쳐진 납작한 화면으로도 전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가사의 일부이자 영화의 제목인 ‘Stop Making Sense’. 영화 내에서는 ‘상식의 틀을 깨버려’라는 식으로 번역되었던 것 같은데, 내게는 이보다 더 반항적인 뉘앙스로 다가왔다. ‘말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또는 ‘상식 좀 그만 지켜’처럼, 처음 들었을 때 ‘너 방금 제대로 말한 거 맞아?’라고 되물을 만큼 이상한 말. 이성적인 개입을 사전에 방지하다 못해 몰아내는 듯한 이 말처럼, 그들은 무대에서든 영화에서든 자신들의 음악과 행위에 관한 설명은 전혀 하지 않고 바로 보여주고 들려주기만 한다. 토킹 헤즈의 이런 방식이 게으르거나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놀아주는 대신 본인들이 놀고 있을 때 관객이 가장 재밌게 놀듯이, 그들도 관객에게 보여주고 들려주기보다도 서로 보고 듣는 시간에 우리를 끼워주며 하고 싶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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