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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창경궁 대온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린 이야기다. 이에 ‘대온실’이라는 장소를 중심으로 여러 서사가 중첩되며 서술된다. 주인공 영두는 창경궁 근처 ‘낙원하숙’에서의 과거를, 창경궁 대온실 공사 책임자인 후쿠다 노보루가 작성한 기록과 지하 배양실에서의 어느 피난민 가족의 사연까지. 각각의 서사가 한 장소에 흘러들어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한다.

 

 

 

1. 어른과 아이의 이야기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성년과 미성년, 어른과 아이에 관해 이야기한다. 모두가 어른일 수는 없어도 모두가 아이일 수는 있다. 어른이 되었더라도 어린 시절은 남는다. 어린이와 청소년, 그 미성년의 시간에 겪은 사건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직할 수밖에 없는 시절이다. 그리고 대개는 부정적인 무엇을 지닌 채 성장한다.

 

 

그날 이후의 기억은 어떤 것은 상세하고 어떤 것은 듬성듬성 잘려 있다. 심리상담사는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트라우마가 사라진 건 아니라서 말로 꺼내 질서화하지 않는 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되리라고, 슬픔을 어떻게 질서화할까. 나이가 훨씬 들고 나서도 나는 그 부분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슬픔은 안개 같은 것이라서 서 있으면 스스로의 숨결조차 불확실해지는데.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p.201

 

 

영두가 지닌 과거는 ‘억울함’ 내지는 ‘포기’라고 할 수 있다. 사는 집을 숨기기 위해 주기적으로 다른 동네로 귀가하는 척 속여야 했고, 리사와의 관계, 문자 할머니의 정체를 숨기며 살아가야 했다. 고작 중학생이었던 영두는 조건부의 서울살이를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도 차츰 서울 생활에 적응해 갔다. 첫사랑을 만났고, 리사와 평탄히 지냈다. 유민의 개입이 아니었더라면 영두는 평화로운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 자들의 욕망과 상처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민은 유독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편이었기에 어떻게든 영두의 자존심을 꺾고자 했다. 이에 영두는 자존심을 꺾더라도, 자신이 하지 않은 행동으로 누명을 썼더라도 지켜야 할 신념이 있었기에 사과를 건넨다. 하지만 유민은 아무런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슈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문자 할머니가 영두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는 그 손을 잡을 여력까지 잃고 만다. 누명이 벗겨져도 억울함은 해소되지 않고, 영두가 받은 상처는 그의 의지를 좀먹고 포기하게 만든다. 그는 포기하고 외면한 채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겪으면서 삶을 살아냈다. 그렇게 성년이 된 영두는 여전히 낙원하숙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서늘해진다고 말한다.


영두는 은혜의 딸 산아의 고민을 경청하고 함께 해결한다. 산아의 친구 스미가 보이는 행동이 방어기제라는 것을 이해하고 조언해 준다. 과연 영두에게도 곁을 지키는 친구와 지난 세월에 근거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 어른이 있었다면 상처가 적은 과거가 될 수 있었을까? 적어도 상처가 제때 치유될 수 있었을 것이다. 생각만으로 서늘해지는 마음도, 곪아 버린 과거의 상처도 없이 자라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곁에 균열이 나지 않은 어른은 없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은 아이도 없다.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p.179

 

 

‘불안하지 않은 아이도 없다.’ 아이의 불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어른의 사고가 가진 맹점이다. 어른은 아이의 울타리이자 때로는 세상이 된다. 균열 난 세상을 바라보며 자라난 아이는 불안과 고통을 해소하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렇게 균열이 난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 끝나지 않는 굴레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그곳에 속하지 않은 힘이 발휘되어야 한다. 엇나간 길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했던 문자 할머니처럼, 자신의 아픔을 거울삼아 아이의 상처를 들여다본 영두처럼 노력하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러한 존재의 필요성에 대하여, 어른과 아이의 상처에 대하여 논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흔적들을 발견하며 ‘어른아이’들을 위로한다.


 

 

2. 재건의 이야기 – 장소와 기억, 기록


 

멈춘 듯했던 영두의 시간은 새로운 일을 맡아 낙원하숙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며 기록 속의 누군가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고 과거를 되돌아본다. 끝맺지 못했던 시간이 다시 흐르고 그 인연을 만난다.


 

알고 싶은 만큼 알기 위해서는 누군가 과거에 대해 얘기해주어야 했다. 어떤 것이라도 들어서 차곡차곡 모아놓아야 했다.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p.96

 

 

할머니와 절친한 사이였다는 안문자에게 영두는 과거를 묻는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시간을 하나씩 알아간다. 알고 싶은 만큼 알기 위한 질문이 이어지고, 영두는 그 시간을 짐작했고 문자 할머니는 자신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그 사실로부터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수리에 필요한 문서를 살펴보는 영두, 문서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다. 지하 배양실에 관해 유일하게 기록해둔 작성자 기노시타 코주, 영두는 그를 배양실 관련 기록의 작성자로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이후 기노시타가 박목주였고 그가 안문자의 양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또한, 지하 발굴조사 과정에서 사람 뼈로 추정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곳에서 과거에 사람이 죽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영두는 정식 조사에 착수하길 바라는 기색을 보인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p.267

 

 

어떤 이유에서 진실이 밝혀지길 바랐을까? 박진리 즉, 안문자와 그녀의 동생 박유진이 지하 배양실에 몸을 숨겼다는 기록이 발견되기도 한다. 영두는 발견된 시신의 주인이 배양실에 숨어있던 남매가 아닐까 생각했는지 모른다. 혹은 끝맺지 못한 마음을 알아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기 때문에 발굴조사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는지도 모른다. 미완의 사건을 과거에 두고 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미련을 생기게 하는지 알기 때문일 수 있다. 비록 업무에서 손을 뗀 영두는 보고서를 끝까지 작성하지 못했지만 성장했다. 과거 낙원하숙에서의 인연을 돌아보고 정리하여 무너졌던 삶의 한구석을 재건했다. 강영두라는 인물에게 주어진 목표는 미완으로 남은 과거의 일을 마주하고 재건해 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목표를 설정하고 이뤄가는 과정을 담은 『대온실 수리 보고서』, 미완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볼 힘과 위로를 담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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