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책장을 정리한다는 지인에게서 받은 나눔 리스트에 익숙한 이름 하나가 들어왔다.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을 감명 깊게 읽었다는 한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가 문득 떠오르며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녀의 문체가 궁금해진 나는 그의 작품인 <남자의 자리>를 리스트에 넣었다.
10권가량의 책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얇고 강렬한 제목의 책인 <남자의 자리>부터 펼쳤다. 잠이 오지 않던 새벽에 펼친 책을 앉은 자리에서 두 시간 만에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문학을 상상의 공간으로 여겨왔던 나의 인식을 뒤흔드는 책이었다. 에르노의 문장은 독자의 상상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대신 그녀가 보고 느낀 세계로 독자를 초대한다. 삶이 문학보다 앞서는 그녀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남자의 자리>를 재밌게 읽었다는 말에 지인이 다음으로 추천해 준 책이 <단순한 열정>이었다. 하지만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같은 작가의 글이 맞나 싶을 만큼 분위기가 달랐다.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책의 첫 문장은 독자에게 앞으로 이어질 노골적이고 외설스러운 표현을 미리 경고하려는 듯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담담하게 기록한 <남자의 자리>와 달리, 이 책은 작가의 사적인 삶을 적나라하게 기술한 일기장 같았다.
<단순한 열정>은 19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100쪽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책이다. 발표 당시 프랑스 독서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저명한 작가가 자신이 겪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관계를 거의 사실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보통 불륜을 이야기할 때는 불륜이라는 사실을 감추거나 미화하는 방식으로 서술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에르노는 그 어떤 미화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놀라울 만큼 솔직하게, 독자에게는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당혹감과 불편함을 안겨준다.
이 책은 독자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문단의 반응은 차가웠다고 한다. 여성의 욕망과 집착 같은 감정들을 꾸밈없이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암묵적으로 금기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작가의 고백은 문학적 성취보다는 일종의 노출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이 책이 수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보여준 날것의 감정과 거침없는 자기 고백에 반응했다.
<단순한 열정>은 사랑을 다룬 여타 소설들과는 다르다. 상대방의 관계를 다루기보다는 사랑에 뛰어든 자아의 변화를 포착하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경험을 더 쉽게 대입할 수 있는 구조이기에 깊은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랑에 빠졌을 때 모든 삶의 리듬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다. 사랑 노래가 모두 내 이야기처럼 들리고, 사소한 운세조차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입해 보게 된다. 하지만 에르노가 묘사하는 사랑은 그 정도를 훌쩍 뛰어넘는다.
그녀는 한눈을 팔 수 있는 장소라면 상대방을 생각하며 시간 감각을 잃고, 물이 펄펄 끓는 커피포트를 잘못 내려 카펫을 태우고도 그 자국을 볼 때마다 그와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그가 만나러 올 날짜를 혼자 정해놓고 실제로 그가 찾아오면 자선단체에 돈을 기부하거나 거지에게 적선하기도 한다. 병리학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이 행동들은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되어 독자에게 당혹감마저 안긴다.
그러나 에르노의 문장은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음에도 덤덤하고 건조하다. 절제된 어조를 유지하는 데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그녀는 지금 사랑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자신이 겪은 행동과 감정을 단순하면서도 정확한 단어로 복기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상대 남성을 A라고 지칭한다. 그의 국적, 직업, 나이 등 신상과 관련된 정보들은 일절 언급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작가는 분명히 밝힌다.
[나는 그 사람을 내 존재를 위해 선택한 것이지 책의 등장인물로 삼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A의 존재는 글을 쓰기 위한 장치이자 도구에 가깝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름도 얼굴도 지워진 그 사람은 그녀를 직면하게 만드는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그에 대한 묘사보다 사랑이 불러온 자아의 상실에 훨씬 더 많은 페이지가 할애된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그와의 대화를 잠시 인용하며 이 책이 그에 대한 것도, 자신에 대한 것도 아님을 명확히 선언하며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진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시간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글의 전반에 걸쳐 드러나 있다. 에르노는 반과거 시제를 채택하고 있다. 프랑스어에서 반과거는 과거의 습관적 행동이나 지속된 상태를 나타낼 때 쓰이는 시제다. 즉, 그녀는 반과거 시제를 사용함으로써 기억하고 싶은 과거의 순간을 붙잡으려는 듯한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감정은 퇴색된다. 하지만 그녀는 흐릿해지는 모든 것을 단어로 박제해 놓는다. 잊고 싶지 않은 시절을 잊지 않기 위해 그녀는 글을 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곧바로 A 생각을 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때, 글의 시제는 반과거에서 현재 시제로 넘어온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만 머물 수 없다. 시제 전환의 이유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밝힌다.
[나는 반과거 시제에서 현재 시제로 시제를 바꿔 쓴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리고 언제부터? 최선책은 없다. 왜냐하면 대개의 이야기에서처럼 그 일이 일어난 날짜가 가진 현실의 기호로부터 단절된 영상이 나를 제지할 뿐, 하루하루 달라져가는 A에 대한 열정을 정확히 셈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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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순간 우리는 종종 작품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역시 마찬가지다. 불륜이라는 표면적 소재에만 시선을 고정한다면 도덕적 허용치를 넘어버린다. 그러나 작가는 의도적인 시제의 전환, A라는 문자로 치환된 상대의 이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선언을 통해 모든 장치는 이 책이 사랑이라는 경험을 통해 발생한 사실만을 기술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밝힌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이 겉껍질을 벗겨내는 순간, 우리는 훨씬 더 다층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