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있는 날 아침, 어머니는 평소보다 조금 더 정갈하게 옷을 입으셨다. 단정한 립스틱 색깔과 손에 든 작은 가방, 발걸음엔 은근한 설렘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왠지 낯설면서도 반가웠다. 종로로 향하는 길, 오랜만에 손을 꼭 잡고 걷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자꾸만 “트로트 가수들이 나오는 거 맞지?” 하고 물으셨다.
그 말속엔 단순한 확인을 가장한 들뜬 마음이 있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50722_231810989.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2231915_uwteywpv.jpg)
CGV 피카디리 1958에 도착했을 때, 오래된 간판과 복고풍 간판 조명이 이상하게 어머니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늘 하루, 이 공간은 어머니를 위해 준비된 무대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나란히 좌석에 앉아, 무대를 기다렸다. 기대와 추억이 겹쳐진 시간이었다.
무대 위 첫 음이 울려 퍼졌을 때, 나는 마치 오래된 흑백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 낮은 음으로 부른 ‘빈 잔’, 그리고 꿈을 속삭이듯 이어지던 ‘꿈에’—그 모든 곡이 누군가의 기억 속 풍경을 조용히 불러왔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유난히 눈을 떼지 못하셨던 장면이 있었다. 바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던 순간.
사랑을 속삭이기보단 지켜주고 함께 견뎌낸 부부의 이야기에 어머니는 숨소리마저 아끼는 듯 조용히 무대에 몰입하셨다. 공연이 끝난 후, 어머니는 그 노래가 “30대에도 울컥했지만, 지금 들으니 더 마음이 아리다”라고 말씀하셨다. 인생을 관통하는 노래는, 나이를 불문하고 가슴을 두드리는 법이다.
객석을 둘러보니 대부분이 중장년층, 노년층이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군가는 손을 흔들며 가수들의 무대에 반응했다.
트로트가 이토록 활기찬 장르였던가. 단순한 향수를 넘어, 그 안에는 얼마나 깊이 눌러 담아 두었던 열정이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 가수들이 건네는 손짓에 환하게 웃던 어머니들과 아버지들—그 모습은 젊은 아이돌 무대 못지않은 생동감으로 극장을 가득 채웠다.
![[크기변환]sugden-guy-sugden-JcimvPDC3as-unsplash.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22232309_fzcdaxgm.jpg)
무대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대의 희로애락은 무엇이었는가.”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답하며, 관객은 모두 제 삶을 되짚었다. 그리고 나 또한 한 시대의 관객이 아닌, 그 시절을 함께 살아낸 사람으로서 공연을 마주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어머니는 공연장 밖에서도 여운이 남은 듯 입술로 조용히 가사를 되뇌셨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오늘 이 공연이 단지 한 편의 뮤지컬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건, 누군가의 지나온 삶을 향한 따뜻한 인사였고, 내 곁에 있는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 중 하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