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신동엽문학상 수상작인 최진영 작가의 <팽이>가 11년 만에 개정판을 선보였다. <팽이>는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을 집필한 최진영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최진영 작가는 개정판 작업을 하며 ‘이렇게나 희망이 없을 수 있다니’라며 놀랐다고 한다. 실제로 초판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미련도 희망도 없이, 지금 나는 쓴다.’
맞는 말이다. <팽이>에 수록된 10개의 소설은 별 스티커가 잔뜩 붙은 귀여운 표지와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는 제목과는 다르게 차디찬 현실을 그린다. 소설의 인물들은 대부분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결코 온전히 스며들지 못한 채,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 나가려 애쓰는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보장된 해피엔딩이란 없다. 그것이 어쩌면 2025년 사회에 던지는 가장 큰 화두일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꿈과 완벽한 어른은 허상일까
<엘리>의 주인공은 코끼리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산 아래 버려진 집에서, 수세식 화장실이 아닌 재래식 화장실, 이른바 ‘똥통’을 뒷간으로 쓰는 집에서, 2025년에 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코끼리와 같이 산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 소화불량에 걸렸다.소화되지 않은 채 내 안에 들어차기만 하는 그것 때문에 자꾸 더부룩하다.p108, <엘리>
나이만 먹고, 공부를 하지 않고, 코끼리와 사는 막내아들은 집에서 그저 골칫덩이일 뿐이다. 나잇값을 하려면 그 나이대의 사람을 소화해야 하는데, 그렇게 한 살 두 살 먹은 나이가 소화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사회에서 제 쓸모를 다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도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엘리를 안전하게 아프리카로 보내주는 것, 나아가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씻어내는 것 역시 그의 소망이다. 그러나 현실은 살아내는 것 자체가 사투다. 자신을 스스로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은 온전히 살아내는 것 자체가 도전이니까.
다른 직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이십사개월이나 삼십육개월 할부로 내 청춘과 인격을 팔아넘긴 기분이지만, 별수 없다.청춘과 인격이 밥 먹여주는 건 아니니까.p147, <창>
<엘리> 주인공 가족의 관점에서 보면 <창>의 주인공은 쓸모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단 회사에 취직했으니까, 회사에서 왕따를 당해도 꿋꿋이 버티며 출근하니까, 모두가 나를 괴롭혀도 굴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창>의 주인공은 그 전 회사에서는 싫은 소리를 못 하고 대표가 시키는 일을 다 받아서 한다고 선배들에게 왕따를 당했다. 그렇게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회에서 버려진 후, 새 회사에서는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득만 취하다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 어느 조직에서나 쓸모를 인정받지 못하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자신만의 믿음이라는 코끼리를 키우며 청춘을 보내는 남자와, 24개월 할부로 저당 잡힌 청춘을 고통으로 팔고 있는 여자. 종래에 이 둘은 모두 현재 상황을 타개하는 선택을 한다. 남자는 모두가 의심하는 자신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걸어서 아프리카를 향한 횡단을 시작하고, 여자는 회사 사람들의 컴퓨터 자료를 닥치는 대로 지우고 회사라는 창에서 벗어난다. 결국, 더욱더 사회에서 배제되는 인간으로, 쓸모가 없는 인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온전한 사람과 미완의 괴물은 같은 이름일까
스스로 존재 자체만으로 괴로워하며 사회와 단절된 인물은 <월드빌 401호>에도 등장한다. 화자는 종철이라는 이름의 강아지를 키우는데, 사실 ‘종철’은 본인의 이름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혼자가 된 그는 괴물의 희생양이 되었다. 친구라는 탈을 쓴 괴물의 가차 없는 폭력의 피해자. 폭력은 다시 대물림되어, 피해자인 그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 가해자가 되는데, 그 대상인 강아지에게조차 자기 이름을 붙인다. 결국 이 폭력마저 본인이 본인에게 행하는 것.
종철이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것이다.혹은 플라스틱 프라가 되거나. 뭐, 심장이 없는 무엇이든.배고플 때마다 자기 심장을 꺼내 조금씩 조금씩 떼어 먹는지도 모른다. 웩.심장을 토해서 뻘건 핏덩이를 야금야금 뜯어먹다가, 뜯어 먹을수록 심장은 아프고, 그렇지만 너무 배고프니까, 고통스럽게 허기를 채우고 다시 꿀꺽 삼킨다.p275, <월드빌 401호>
이 부분이 너무나 ‘최진영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특히 과거 최진영스러움이 유독 드러났다. 2024년 <원도>로 개정된 소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바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실제 <팽이>가 2014년,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가 2013년 발간되었으니 비슷한 시기에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에서 아무리 큰 멸시를 받아도 그보다 더 큰 자기 경멸을 가진 사람의 고백. 강아지 ‘종철’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 사실 본인을 투영하여 말하는 문장들.
냉혹한 사회에서 완전한 꿈, 완벽한 어른, 온전한 사람을 이루지 못하는 존재는 어떻게 사회에서 존재해야 하는가? 이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 <어딘가>에서처럼 평생 길을 잃은 채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못하고 헤매며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팽이>처럼 인생은 평생 홀로임을 받아들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야 하는가? <남편>의 부부처럼 평생 알 수 없는 문제 속에서 억울함에 치여 살아야 하는가? <돈가방>의 동생네처럼 평생 배반만 당하며 살아야 하는가?
괴로움과 수치, 모욕과 고통을 견딜 때마다 나는 완전한 낙타가 되었다.p260, <새끼, 자라다>
맞다. 최진영 작가는 ‘맞다’고 대답한다. 그 모든 ‘희망 없음’의 상태가 맞다고. 괴로움과 수치, 모욕과 고통을 견디는 것이 인생인 것이라고. 그것이 사회의 이치이기에,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다고. 사막에서 눈이 뽑히고, 가족을 잃고, 본연의 나를 잃으며 ‘낙타’가 되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고, 살아남는 것이 사회의 전부라는 걸 깨달은 <새끼, 자라다>의 자라 새끼처럼. 그렇다면 사회의 이치란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미완의 괴물이 되는 길일까.
희망 없는 곳에 가장 희망이 볕 들어 있다고
<팽이>는 <원도>에 이어 리마스터판의 매력을 톡톡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나란 존재가 살아 있다는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지금의 삶 역시 죽음과 다를 바 없다는 정서를 담은 <월드빌 401호>는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구원’마저 초코파이처럼 돈을 주고 사야 한다는 <팽이>의 대사는, 10여 년 이후 발간된 <단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최진영 작가 특유의 ‘구원 유니버스’가 어떻게 확장되는지 엿보게 했다.
온전히 좋은 기억이란 흔치 않았다.기쁜 일엔 죄책감이 묻어 있고 사랑엔 자괴감이 따라왔다.p15, <주단>
너무 좋아하면 죄책감과 원망은 옵션으로 붙는 걸까?p124, <엘리>
<팽이>에는 좋음을 있는 그대로의 좋은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캐릭터가 없다. 모두 과거의 자신 혹은 미래의 자신의 행동에 부채감을 느끼며 살아간다. 등을 돌려 과거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 죄책감에 묶여 뒤로 걸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돌고 돌아 결국 자신을 찌르는 사람들은 끝이 없다. 끝이 없어서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어서 개선이 없다. 끝없는 악순환의 굴레, 그러나.
어젯밤 C가 문자를 보내왔다.“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어요. 희망 없는 곳에 희망이 있다고.”『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가장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이 볕 들어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사랑이 뭐냐고 물어 다녔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라는 분명한 답을 이미 알고 있었던 <첫사랑>의 화자처럼. 희망 없음의 상태를 느끼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을 담고 있는 씨앗일 수 있듯. ‘당신들이 말하는 희망이 거짓이라는 걸 내가 보여주겠어.’라고 다짐하며 초판을 쓴 작가가 10여 년 뒤 개정판 작가의 글에서 ‘여러분이 건네준 야광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