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마을 다이어리>, <괴물> 등으로 유명한 일본 영화계의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유일하게 넘어서고 싶었던 감독”이라고 언급한 소마이 신지의 영화 <이사>가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국내에 개봉한다.
영화는 가족의 해체와 치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11살 소녀 ‘렌’을 통해 그려낸다. ‘렌’을 통해 바라본 130분의 여정은 가족의 해체라는 가슴 아픈 순간을 오히려 사랑스럽게 담아낸 영화이기도 하다.
‘렌’의 부모인 ‘나즈나’와 ‘켄이치’는 돌연 이혼을 선언하고 별거를 시작한다. 이혼을 결정하며 아버지 ‘켄이치’는 집을 나가게 된다. 그를 따라가 짐 정리를 도와준 ‘렌’에게, 집에 돌아온 뒤 엄마 ‘나즈나’가 건넨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말은 곱게 들릴 리 없었다.
모든 가정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남들은 그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한다.
‘렌’의 동급생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친구들은 ‘렌’의 가정이 화목할 것이라 생각하며 저들끼리 떠들다 싸우기도 하지만, 그중 친구 ‘미노루’와 ‘타치바나’와는 점차 마음을 터놓고 가정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이를 은근히 시기하던 일부 아이들은 그들 사이를 이간질하기 시작하고, 와중에 ‘렌’의 가정사가 소문으로 돌자 ‘렌’은 홧김에 학교에 방화를 저지르는 사건을 벌인다. 이로 인해 ‘렌’의 어머니가 학교로 불려오지만, 그 틈을 타 아버지를 찾아간 ‘렌’은 부모의 이혼에 대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부모님과 셋이 함께 떠나는 여행을 몰래 계획한다. 그 과정에서 ‘렌’의 부모는 과거를 들춰내며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다투기도 하고, 가족의 치유를 위한 시도들을 겪어 나간다.
‘렌’ 역시 처음엔 가족의 회복을 위해 여행을 계획했지만, 그 여정 속에서 해체된 가족을 받아들이는 스스로를 인정하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영화 속에서 유쾌하게 그려지지만, 11살밖에 되지 않은 ‘렌’이 스스로의 치유 방법을 직접 찾아간다는 점은 안타깝게 다가온다.
영화는 소마이 신지 감독 특유의 롱테이크 기법을 자주 사용한다. 이로 인해 영화의 호흡이 다소 느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가족의 변화 과정을 차분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며, 관객들 역시 이 가족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된다.
‘렌’ 역할을 맡은 당시 아역 배우 타바타 토모코의 연기도 인상 깊었다. 배우의 천진하고 생동감 있는 연기를 통해 관객들은 이혼을 마주한 어린아이의 복잡한 심경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일상적이면서도 때로는 복잡한 단어이다.
무엇이 가족을 완성시키고, 무엇이 부족할 때 가족은 해체되는가? 성인이 되어서도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가족’이라는 단어가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를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가족 형태의 다양성이 인정되는 시대지만, 이혼이라는 사건은 부모에게도, 어린 자녀에게도 상처가 되곤 한다.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가족이란 ‘해체 가능한 것’이라고 인지하기란 쉽지 않기에, 흩어진 부모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을 겪게 된다.
영화를 통해 처음엔 소녀 ‘렌’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후반부에는 이혼을 겪는 부모의 입장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렌’보다 훨씬 성숙한 어른이었지만, 그들 역시 이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음속의 응어리, 자신의 서툼, 상대에 대한 원망 등이 뒤엉켜, 누구보다 도움이 필요한 ‘렌’을 오히려 방치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가족의 치유 과정에는 상대에 대한 관용,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관용이 동시에 필요했다. ‘렌’ 역시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며 가족의 치유 과정을 마무리 짓는다.
필자를 포함한 관객들 역시 영화를 통해 가족의 해체와 치유라는 과정을 아름다운 미장센과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