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뿅뿅 지구오락실 3'에서 언급된 것을 계기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다시금 화제가 됐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자연스럽게 내가 재밌게 봤던 2000년대 초중반의 드라마들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가 '내 이름은 김삼순'이다. 2005년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50%를 넘기며 인기를 끌었던 이 드라마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2024년에는 8부작으로 리마스터링한 감독판까지 공개됐다.
[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촌스러운 이름과 뚱뚱한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30대 노처녀 김삼순의 삶과 사랑을 솔직하고 경쾌하게 그려낸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공식 줄거리 소개는 이렇다. 20년 전 드라마라 그런지, 지금의 시대상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외모 평가에 기반한 설정과 '노처녀','뚱녀'와 같은 표현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그 시절에는 '남자답다'고 받아들여졌을 폭력적인 성격과 가부장적인 태도도 이제는 불편하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다시 꺼내보는 건 드라마에서 자꾸만 나를 찾게 되고 그 속에서 위로받으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김삼순
삼순은 파리 유학파 출신의 전문 파티시에다. 자기 얼굴로 날아온 케이크를 한 입 맛본 진헌이, 단번에 레스토랑에 스카우트할 정도로 확실한 실력도 갖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여자가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 순 없잖아요."
사랑하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직장에서 해고당한 사실을, 재취업을 위한 면접 자리에서 당당히 고백하는 삼순이의 귀여운 뻔뻔함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가 사랑스럽다 못해 어처구니없게 들리기도 하지만 그녀의 당당함에는 분명 그녀만의 철학이 있다.
삼순은 이름과 나이,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작아지다가도 일과 사랑 앞에선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사랑하고, 살아간다.
어릴 때는 삼순이가 만든 '개자식 케이크'가 얼마나 달콤할지 궁금했다면 지금의 나는, 삼순이가 밤늦은 시간 부엌에서 반찬 몇 가지 넣고 대충 비빈 비빔밥에 소주 한 모금 할 때 그 앞에 앉아 잔을 채워주고 싶어진다.
"인생 뭐 별 거 있어?" 하며 양푼 비빔밥에 소주 한 잔 해버리고 마는 사람.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 그리고 자기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걸 누군가 앞에서 꺼내 놓을 때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그래서 나는 지금도 여전히 김삼순을 애정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런 삼순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것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인생이 담긴 명대사들에 있다. 삼순의 목소리로 담담히 내뱉는 나레이션들에 많은 시청자가 위로받았다.
-제가 만든 초콜릿은 제가 만든 상자에 넣자는 게 제 원칙이거든요
-왜요?
-초콜릿 상자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거든요.
-제가 파티시에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헌책방에 들렀다가 별생각 없이 그 책을 하나 딱 집었는데 그게 바로 프랑스 과자에 대한 책이었어요. 그게 만약 병아리 감별사에 대한 책이었다면, 전 지금 병아리를 감별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집은 초콜릿은 다 맛있었냐는 지배인의 질문에 삼순은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예전과 지금은 다를 거라고, 어렸을 땐 겁도 없이 아무거나 쑥쑥 집어먹었지만, 지금은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하면서 고른다고 말한다.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내가 가진 초콜릿 상자에 더 이상 쓴 럼주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30년 동안 다 먹어 치웠다고.
나는 음식을 먹을 때 덜 좋아하는 것부터 먹고 마지막에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먹으면서 그 행복을 더 마음껏 만끽하는 편이다. 카레를 먹을 때는 당근을 먼저 골라 먹고, 마지막에 햄을 두 개씩 밥 위에 올려 먹곤 한다.
초콜릿도 마찬가지다. 씹으면 묽은 크림이 흐르는 초콜릿을 싫어하고, 안에 바삭한 견과류가 들어있는 초콜릿을 좋아한다.
초콜릿 속에 크림이 들어있을지 견과류가 들어있을지 먹어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초콜릿은 내 거고 어차피 내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 언제 어느 걸 먹느냐 그 차이뿐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다. 수많은 갈림길이 있고, 그 향과 맛이 다를 뿐이다. 어떤 길은 쓴 럼주가 들어있고, 어떤 길은 바삭한 견과류가 들어있다.
-난 겨우 30년을 살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까. 먼 훗날에라도 다시 만나게 되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지 말자.
그래,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여자 김희진이 아니라 파티시에 김희진으로.
그리고 선택을 앞두고 좌절과 실패가 두려운, 서른을 눈앞에 둔 나와 수많은 삼순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제 겨우 스물 몇 개를 집어 먹었을 뿐이고 앞으로 집을 초콜릿들이 더 많다고. 이제 새 초콜릿 상자를 열어볼 날만 남았다고. 이미 쓴 럼주가 든 초콜릿은 다 먹어 치웠으니, 새로운 초콜릿 상자의 첫입은 조금 더 달콤할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