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네 번째 에피소드를 맞이한 시점에서 나의 일상 속 배경음을 잔잔하게 채우던 음악들을 되돌아보는 일에 새삼 감회가 새롭다. 이 글을 쓰면서 요즈음 여러 자극적인 콘텐츠를 탐독하느라 이동 시간만큼은 항상 음악을 들으며 사색 시간을 챙기던 습관을 잊고 있었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이 글을 통해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을 되새김질하고, 다시 한번 그 안에 녹아든 일상의 기억까지 사랑해보려 한다. 특히나 이번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할 곡들은 스스로에게, 혹은 세상 만사에 지쳐 무감해진 순간 나에게 일상의 사랑스러움을 일깨워 주거나 어김없이 찾아올 내일을 기대하는 힘을 준 곡들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음율 – 피차일반
이 곡은 비교적 최근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합류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에는 귀를 사로잡는 멜로디 때문이었다. 최근 깨달은 건데 나는 유독 이 곡과 같은 J pop 느낌이 나는 밴드 음악 기반에 한글 가사가 가득 담긴 곡에 약했다.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소개했던 ‘미로 – 계절범죄’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무조건 공감할 것이다)
보통 나는 취향의 멜로디 음악을 발견하면 질리도록 여러 번 들으며 가사를 파악하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가사까지 합격점을 받으면 프로필 뮤직 플레이리스트에 속하게 되는 식이다. 오래도록 들은 곡이 아님에도 이 곡을 소개한 이유에는 멜로디와 가사를 넘어 표지 디자인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떨어지는 곡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뤄낼 미래 그 이상을
상상만 해도 좋잖아
믿지 않는 당신도
내일을 꿈꾸잖아
여전히 다를 게 없네 우린
피차일반이네”
프로필 뮤직에 곡을 올리게 되면 표지 디자인이 배너로 뜨는데, 그 때 처음 이 곡의 앨범 표지를 확인하면서 나의 오랜 향수와 사색이 담긴 기억을 대표하는 곡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송소희 – 진한 바다를 거슬러’를 소개하며 넘실거리는 물결에 대한 나의 애정을 드러낸 바 있는데, 그렇기에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곳들은 주로 나의 사색터이자 도피처가 되곤 한다.
동작 대교 위의 작은 카페, 노들섬이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이 공간들에서 나는 주로 한강의 느릿한 물결과 함께 대교를 지나는 전철의 모습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며 위안을 얻곤 하는데, 그건 노래의 제목와 가사에 나오는 ‘피차일반’에 기반하곤 한다.
피차일반, 그러니까 내가 남들과 별반 다르게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야 말로 어쩌면 자신을 위로하는 가장 따듯한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이 세상이 나에게만 각박한 것 같고 나만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마주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 나는 한강 대교 위 전철 속 누군가의 고단한 하루를 그려보며 그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내일을 마주할 용기를 얻는다.
또한 별 거 없는 하루에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게 해주는 것은 언제나 전철 차창을 통해 보이는 한강의 모습이었다. 모두가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각자의 고단함에 집중하거나 회피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하나의 풍경에 집중하는 순간,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를 것 없는 삶을 응원하고 작은 희망을 품게 되는 지도 모른다.
윤하 – 별의조각
어린 시절 나는 침대에 누워 몇 시간이고 상상 놀이를 하곤 했다. 그 시작점은 주로 나는 이 별에 어쩌다 불시착한 외계인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그 가정은 마치 나를 특별한 사람처럼 만들어주었고, 그 안에서 나는 온갖 나의 가능성들을 가늠하고 상상해보며 꽤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어느새 상상 놀이를 하기에 너무 커버린 나이의 지금, 그때와 같은 가정과 의구심을 가지는 순간들은 항상 이 별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쳐 나의 존재 의미에 회의감을 가질 때 뿐이었다. 윤하의 노래는 그런 가정 속에서도 결국 이 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말하며 나에게 작은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돌아갈 수 있다 해도
사랑해 버린 모든 건
이 별에 살아 숨을 쉬어
난 떠날 수 없어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고르지 못했다고 해도
나를 실수했다 해도
이 별이 마음에 들어”
생각해보면 노래 가사처럼, 이 별에는 수많은 고통의 기억들이 있지만 그 크기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큰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어릴 적 상상처럼 정말 내가 태어난 곳이 이 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나에게 태어난 별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아마 나 또한 가사의 주인공처럼 선뜻 떠나겠다고 선택할 수 없었을 것 같다.
어쩌면 지구의 입장에서 내가 이 별에 태어난 것은 그저 우연, 혹은 확률적 실수였을 수도 있겠다. 그 사실이 어쩐지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엄청난 사명과 기대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내 마음 가는 데로, 별다른 부담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그저 이 별에 발 붙이고 살아가며 사랑해 버린 것들을 오래도록 가까이 두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