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아직 아파트 밖을 벗어나지도 않았는데 복도에서부터 이미 덥다. 정말 너무 덥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숨을 턱 막고 뜨거운 햇빛이 피부 위로 쏟아진다.
어휴, 여름 냄새 나.
에어팟을 귀에 꽂고 스포티파이에 들어가 스크롤 쭉 올린다. 한동안 듣지 않았던 음악을 다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겐 여름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들어야 하는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딱히 여름이기 때문에 듣는 건 아니다. 그냥 내 몸이 이 여름을 기억하고 그 노래를 자연스럽게 찾는다.
때때로 음악은 추억을 품은 타임머신 같다.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그때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노래를 들었던 장소, 그곳의 냄새, 그때의 기억과 감정까지 통째로 꺼내놓는다.
오늘도 몽글몽글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을 따라 그 여름날 나를 다시 꺼내보려 한다.
나의 지난 여름날의 기억은, 어느 한 장소보다는 그곳으로 향하던 길 위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휴양지에 도착해 놀았던 순간보다 그 바다를 향해 달리던 도로 위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더 또렷하게 남아있다.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50713_004844516.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13132312_dawbscsc.jpg)
"음악 좀 틀어봐."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길, 살짝 열어놓은 창문 틈 사이로 살짝씩 들어오는 더운 공기와 함께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차 안을 가득 채운 음악이 넘치다 못해 차창 밖을 비집고 새어나간다.
혹은 혼자 에어팟을 꽂고 버스 창문에 기대어 조용히 음악을 듣는 순간들. 음악에 취해 내려야 할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한다.
차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목적지로 향하던 순간들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그 감정 상태 그 자체로 기억된다.
얼마 전, 강원도로 1박 2일 여행을 떠났다. 3시간 반 동안의 지루한 이동시간을 채워줄 음악이 필요했다. 새로운 여름 노래를 찾는 일을 잠시 미뤄두고 나의 여름을 책임졌던 익숙한 노래를 다시 꺼내본다.
You Better Know - 레드벨벳
처음의 설레임 빛나던 이끌림 지금 넌 어디쯤에 있는지?
네 심장을 뛰게 했던 소중한 꿈이 널 부를 때
포근하게 널 감싸줄 나의 이 노랠 들어줄래
You better know 눈 부신 빛을 따라 하루를 그려
You better know 이런 널 기다려온 세상이 있어
레드벨벳을 단숨에 썸머퀸의 자리에 올려준 앨범이 있다. 바로 2017년 7월에 발매된 레드벨벳의 여름 미니 앨범, 'The Red Summer'다. 수록곡 맛집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게, 타이틀곡 못지않은 명곡들이 앨범을 가득 채우고 있다. 타이틀곡 '빨간 맛' 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가 상큼하고 톡톡 튀는 여름의 에너지로 가득하다. 여름 향기 한가득 묻어나는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하나씩 맛보듯 들어보길 바란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곡은 'you better know'다. 이 곡은 여름의 뜨거움보다는 청량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담고 있다.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가사, 그리고 후렴에서 몰아치듯 터지는 멜로디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만든다.
나는 아마 몇 년 후 나는 그해 여름을 you better know라는 노래로 기억할 것이다. 또 그 기억으로 살아가고 다음 여름을 기약하며 그렇게 그 계절을 흘려보내겠지.
정말 오지 않았으면 했던 여름도, 음악으로 기억되는 순간 문득 돌아가고 싶은 계절이 되기도 한다. 미웠던 여름마저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음익이다.
Love You Different - Justin Bieber
2021년 3월에 발매된 저스틴 비버의 여섯 번째 정규앨범, 'Justice'.
아내 헤일리 비버에 대한 사랑을 담은 곡들이 다수 수록된 이 앨범은 내 마음속 '명반'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이 공감하고, 유대감을 느끼면서, 외로움을 덜 느낄 수 있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라는 저스틴 비버의 말처럼 나는 이 앨범에 시끄럽고 강렬한 여름의 한가운데서 조용한 위로를 받았다.
16곡 모두 빠짐없이 명곡이지만, 그중에서도 나에게 여름으로 기억되는 노래는 'Love you different'다.
![[크기변환][포맷변환]KakaoTalk_20250713_00481053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7/20250713132152_fdytazdv.jpg)
홍대 앞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출퇴근길마다 빠짐없이 이 노래를 들었다.
뜨거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걷던 여름날, 한 손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귀에 꽂힌 에어팟 너머로 울리는 비트를 들으며 걷던 서교초등학교 옆 골목. 그 길은 지금도 이 노래와 함께 떠오른다. 여름에 발매된 앨범은 아니지만 이 곡은 분명 내 여름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지금도 그 음악을 들으면 그날의 공기와 이마로 흐르는 땀, 근무지로 향하는 길의 감정까지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앨범은 단순한 팝 음반이 아니라 그의 사랑과 회복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비버는 사랑뿐 아니라, 그를 위기에서 구원한 여러 가치에 대해 노래한다. 그리고 나는 이 앨범 덕분에 나의 어느 여름을 위로와 사랑의 계절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괜찮아, 사랑이야>OST
여름이 다가오면 꼭 다시 꺼내보는 드라마가 있다.
Cross My Mind - Twin Forks
You're My Best Friend - The Once
Hero - Family of the Year
최고의 행운 - 첸 (CHEN)
<괜찮아, 사랑이야>의 삽입곡들이다.
베스트 셀러 작가 장재열과 정신과 전문의 지해수가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괜찮아, 사랑이야>는 정신 질환과 사랑,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노래들을 들으면 드라마를 보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서, 극 중 인물들로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어느새 내가 지해수가 되어 있고, 때로는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수광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마치 여름을 통째로 안에 담아둔 것 같다.
10년이 넘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지해수의 감각적인 여름 패션, 레몬에이드처럼 톡 쏘는 대사, 여름을 떠올리게 만드는 OST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름의 시작과 함께 이 드라마를 다시 찾게 만든다.
글을 쓰다 보니 알게 됐다. 내가 떠올리는 여름은 생각보다 위로로 가득한 계절이었다. 뜨겁고 시끄럽고 어쩌면 벗어나고 싶었던 여름 속에서, 나는 사랑과 치유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나의 여름은 또 어떤 노래로 기억될까. 당신의 여름은 어떤 노래로 채워져 있을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까.
어느 여름날, 창문을 열고 푸른 해변 도로를 달리며 서로의 여름을 나눌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