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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창조적 영감에 관하여 평면.jpg

 

 

불과 몇 달 전 나는 ADHD 검사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며 나의 산만함이 불러온 능률 저하를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이 마치 내리막길 위에 놓인 바위를 온 몸으로 막아서는 것만큼 버거운 일로 느껴졌다. 심지어 그저 웹서핑을 할 때조차 의식을 흐름을 따라 여러 개의 플랫폼을 오가기 일쑤였다.


그때까지 나에게 ‘산만함’이란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뜸 찾아온 불청객 같은 존재에 불과했다. 이리 저리 기웃대다 결국 어느 것 하나 온전히 완성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 될 때면 어김없이 산만함을 탓했고 결국 그것은 최근 가장 큰 골칫거리로 자리 잡고야 말았다.


이 책에 이끌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몰입과 집중력을 당연한 미덕으로 생각해 왔기에 갖추지 못해 괴로워하는 나와 같은 독자들에게 글쓴이는 ‘유익한 산만함’이라는 지극히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절대 나란히 놓일 수 없을 것 같던 두 단어의 낯선 조합은 책을 펼쳐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다윈은 자서전에서 일평생 진화 연구에만 매진하며 모든 집중력을 거기에만 쏟아 부은 나머지, 비선형적 사고가 무뎌졌고 음악이며 셰익스피어, 심지어 시각 예술에 대한 자신의 취향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고백했다."] (p.31)

 

글쓴이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큰 논지는 산만함이 가능케하는 다양한 인지 요소가 결합된 ‘비선형적 사고’가 가져올 수 있는 이로움이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산만함이 결국 개인의 취향을 가꿔주는 핵심 요소가 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윈의 사례였다.


취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서 개인의 정체성이 형성된다고 믿는 나로서는 그저 악으로만 여겼던 산만함이 그러한 취향의 근간을 이룰 수 있다는 대목에서 굉장히 큰 전환점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의 산만함은 곧잘 다양한 장르와 형식의 콘텐츠에 대한 흥미로 이어졌고, 그것은 곧 간헐적이고도 초인적인 몰입을 불러와 재빠르게 대상을 파악한 뒤 흥미를 잃고 빠져나오거나 혹은 새로운 취향 카테고리를 형성하는 양분이 되곤 했다. 빠르게 몰입하고 그만큼 빠르게 식는 산만함이 취향을 만들어가는 데 누구보다 큰 몫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몽상에 빠지고, 갈팡질팡하며, 쉽게 산만해지기에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다. 또한 몹시 가혹한 상처를 받았더라도 이를 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p.41)

 

글쓴이가 말하는 산만함이 가진 또다른 능력은 불건전한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와 그것 밖에 없는 것처럼 한 대상에 깊이 몰두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산만함을 무기로 무장하여 금세 빠져나와 초연해질 수 있다는 변덕스러움 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가진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하고 있던 나에게도 마법같이 산만함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던 일이 벌어졌는데, 문서 프로그램에 커서를 두고 막 타자를 치려던 찰나 갑자기 느려진 노트북이 블루 스크린을 토해내더니 이내 기능을 멈춰 버린 것이다. 백업해두지 않은 수많은 파일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더듬으며 패닉에 빠지려던 내게 산만함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로 인해 나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과도한 몰입에서 빠져나와 서비스 센터로 향하는 길을 찾고, 수리가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핸드폰으로 여러 콘텐츠를 소비하며 멘탈을 지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파일을 살려내는 결과를 침착하게 기다릴 수 있었으니 산만함은 나의 구원자가 아닐 수 없다.

 

["동기부여와 끈기가 없다면 산만함은 무기력으로 변해버리기에 십상이다."] (p.56)

 

["이처럼 산만한 생각은 창의적인 연상을 불러오고 크로퍼드가 말한 자율성을 높여주지만, 동시에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p.99)

 

그러나 산만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때때로 양날의 검이 되기도 했다. 생각을 벌판에 풀어두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도록 할 때 종종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발한 결과물이 나오곤 했지만, 때로는 완전히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도 더러 있었다.


이 책에서는 산만함이 가진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담고 있다. 산만함의 유익함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면 글쓴이가 언급한 ‘동기부여’와 ‘끈기’라는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산만한 생각은 가끔 고장 난 채 과열된 모터 달린 보트와 비슷해서, 처음 무언가를 시작 할 때 마음 먹었던 동기를 잊지 않아야 지치지 않고 키를 잡아 나아갈 수 있다.

 

["니체는 음식을 먹고 소화할 때처럼 지식을 받아들이고 사유할 때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74)

 

산만함을 제어하기 위해 ‘반추 사고’를 이용하는 것도 꽤 효과적이다. 얼린 시절부터 ‘만약에’로 시작하여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생각이 많았던 나에게 반추는 일종의 방어 기제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었다. 생각의 시작 지점에서 너무 멀어져 길을 잃게 될 때 마다 나는 반추라는 이름의 지도를 펼쳐 새로운 길을 찾거나 왔던 길을 되돌아 가곤 했다.


산만함은 인간만이 가진 무기이자 본성이기에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좋든 싫든 산만해지는 순간을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잘 사용한다면 충분히 유익하게 삶을 도울 수 있는 산만함이라는 우리의 능력을 존중하고 앞서 언급한 여러 장치를 통해 집중력과 산만함 사이를 잘 저울질하기를 권장한다.


사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의 산만함은 불쑥불쑥 나타나 존재감을 드러냈다. 페이지 중간중간 구절을 끊고 나타나는 풍경 사진을 마주할 때면 어김없이 산만함이 집중력을 이겼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일은 번번히 방해 받았다.

 

그러나 글쓴이의 말과 추천사를 읽을 때쯤 이런 페이지 구성이 되려 산만함을 유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생각은 하지 말고 이 책처럼 살아가길’이라는 추천사의 한 구절처럼 글쓴이는 어쩌면 독자들이 산만함을 무기삼아 자유롭게 여러 자극을 오가며 창조적 영감이 찾아오는 순간을 몸소 체험하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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