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웹툰 < 아홉수 우리들 >에 관한 이야기를 펼칠 때가 되면 내 글 속 주제는 의심할 여지 없이 < 사랑 >일 거라 확신했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글을 쓰려니까 자꾸만 < 친구 >라는 주제가 툭툭 치고 올라온다. 나 좀 봐달라는 듯이, 사실 진짜 주인공은 내가 아니냐는 듯이.
아침에 핸드폰을 확인하면 상단에 매일같이 떠 있는 것은 ‘웹툰’ 알림이다. 일명 ‘쿠키’(이용권)를 구우라는 메시지부터, 관심 웹툰으로 설정해 놓은 웹툰의 새로운 화 등록 알림, 추천 웹툰까지. 확인하지 않고 지워버릴 거면 꾸준히 오는 알림을 차단할 법도 한데, 그것도 귀찮은 나는 그냥 매번 올 때마다 손수 스크롤 해서 없애버린다.
그런 내가 절대 지나치지 않는 알림이 있다. 바로 매주 토요일 연재되는 웹툰 < 아홉수 우리들 >!
하지만 알림이 온 직후에 보지는 않는다. 이 웹툰에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구축할 때까지 오히려 알림이 삭제되지 않도록 조심히 다룬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낮에 친구와 약속을 보내고 있는데 연재 알림이 뜨면, 고이 모셔두었다가 밤에 내 방구석에 자리를 잡고 딱 맞는 노래를 틀고서야 떨리는 마음으로 알림 메시지를 클릭한다.
벌써 한 7년째 이러고 있다. 2019년 처음 < 아홉수 우리들 >을 발견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 세 명의 ‘우리’들과 시즌 4까지 함께 달려왔다. 그리고 빼먹으면 섭섭할 나와 같은 댓글 속 독자들도 같이.
2019년, 내 나이는 고작 중학생이었다. 앗, 중학생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계산해 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고등학생이었겠지 싶었는데, 중학생 때부터 보는 눈이 있었나 싶어 놀랐을 뿐이다.
중학생인 나의 눈에 이 웹툰의 장르는 ‘로맨스’였다. ‘봉우리’의 사랑스러운 연애와 ‘차우리’의 쿨하지만 어딘가 씁쓸한 어른의 연애를 꿈꾸지만 당시 연애 한 번 못해본 ‘김우리’의 심정에 공감하고 혹 나도 저렇게 될까 두려워했다. 그래도 여전히 기대했다. 나도 저런 연애와 사랑을 하게 될까 신나서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위해 마치 선행 학습하듯 ‘우리’언니(?)들에게 사랑을 배웠다.
당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내가 그토록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건, 이 웹툰이 지극히도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고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또다시 되찾으면서 누구나 겪는 감정을 그려낸다. 아주 촘촘하고 정교하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봉우리’가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집에 들어가 “아파”라는 말을 연신 내뱉는 장면을 보며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을 때다.
아파 아파 아파아파아파아파아파. 온 몸이 너무 아파. 손 끝도. 귓 속까지. 불 타는 것처럼 아파.
아무것도 먹은 게 없는 데 구역질이 난다. 난 뭘 토하고 있는걸까.
아득한 절망.
(*40화)
짝사랑 한 번 해보지도 못한 중학생이었던 내가 ‘봉우리’의 감정에 자연스레 동화되었다는 게 신기했다. 40화에 이르기까지 작가님이 나를 설득해 온 거다. 꾸준하게 촘촘하고 정교한 시간을 들여 나를 그 지점에 데려다준 거다. 극도로 잘 만들어진 간접경험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나를 데려다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던 기억이다.
29살이지만 그나마 다니던 직장도 잃고, 꿈도 이루지 못해서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미래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고, 20대를 바쳐 사랑했던 남자친구와는 이별했지만, 이별할 때 화려한 귀걸이가 잘 어울리고 제법 어른의 행색을 갖춘 옷을 입은 ‘봉우리’의 모습이 나에게는 꽤 선망의 대상이었다. 단순히 옷을 잘 입어서는 아닐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별 장면에 이르기까지 ‘봉우리’는 내가 그리던 ‘어른’의 모습이었다.
첫 화가 봉우리의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어’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것처럼 ‘봉우리’는 중학생이었던 내 눈에도, 시간이 흘러 같이 성장한 지금도, 나에게는 ‘멋진 여자’이다.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어. 아름다운 빈티지 원피스, 뿌염을 거르지 않는 길고 풍성한 웨이브 머리, 감각적인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인기 일러스트레이터, 쇄도하는 잡지 인터뷰, 망원동에 위치한 내 작업실은 녹색 벽지의 핑크 타일 벽,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사랑하는 연인, 그리고 그가 사 온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한 조각- 정말이지 멋진 여자가 되고 싶었어.'
(*1화)
처음 웹툰을 볼 때는 중학생이었고 그때 내게 가장 흥미로운 키워드는 < 사랑 >이었다. (물론 사랑이 내게 중요한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학창시절에 친구는 계속 주변에 있으니까 < 친구 >는 그렇게 관심을 두고 탐구해보고픈 키워드는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 휴학을 앞둔 요즘, <아홉수 우리들>을 볼 때 초점을 달리 둔다. ‘우리’들의 관계인 < 친구 >에 더 집중한다. ‘봉우리’, ‘차우리’, ‘김우리’가 각자의 아홉수와 지난한 삶을 겪으면서도 다시 내일을 살아볼 수 있게 일어날 힘을 만드는 건 서로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힘들 때 털어놓을 수 있고 나를 애써 꾸미지 않아도 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그 존재를 떠올리기만 해도 힘이 된다.
혼자 가능한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소중한 친구 딱 1명만 남아도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는 그 뻔한 말들이 최근 더 와닿고 있다.
휴학을 앞두고 더 이상 규칙적으로 가야 할 곳이 없어졌다는 사실은 굉장히 홀가분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겁이 나기도 했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소속될 곳이 잠시 사라져도 내 곁에 사람이 많이 남을지 고민하는 밤이 이어졌다.
그 밤이 계속되면서 29살까지 친구인 ‘우리’들이,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축하하고 이상한 일이 생기면 같이 욕해주기도 하고 슬프면 같이 울어주고,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는 단호하게 일으켜주는 그런 ‘우리’들의 관계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에서야 왜 <아홉수 우리>가 아니라 <아홉수 우리‘들’>인지 깨달았다.
비록 박봉이지만 일할 수 있는 직장도 있고, 챙겨주는 직장상사도 있고, 생일이라고 달려와주는 친구들도 있고, 오랫동안 만나고 있는 멋진 남자친구도 있다.
이정도면 꽤 행복한 이십대의 마지막인지도 몰라.
비록- 비록- 핑크색 타일에 딸기 케이크는 없지만-.
(*2화)
하지만 지난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다행히 나에게는 ‘우리’들 같은 친구들이 있다. 감사하게도 그 이름을 대자면 < 아홉수 00,00,00,00,00..... > ..하지만 그 수가 중요한 게 아니란 건 일찌감치 깨우쳤다. 마음 쓰는 건 나도 누군가에게 ‘우리’ 같은 존재일 수 있을지. 나는 결코 내 친구가 될 수 없으니까 아마 그건 29살에도 모를 것 같다. 그러니 걱정하는 대신 내가 ‘우리’라고 생각하는 친구에게 나 또한 앞으로 꾸준히 ‘우리’가 되려고 노력할 거다.
아홉수는 생각해 보면 매일의 일상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오늘 일어나는 사건을 성실히 처리하면서, 또 내일의 우리를 그리면서, 그렇게 29살, 39살, 49살을 걸쳐 129살이 되는 그날까지.
129살에 딸기 케이크 먹으며 돌아 보는 내 아홉수들은 끝장나게 찬란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