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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에는 구석이 자리한다. 한가운데에서 조금은 먼 곳에 머무르는 이들. 그런 구석이 만나 우리가 되는 영화가 있다. 2023년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다. 이른바 정상이라 불리는 것들만이 옳다고 여겨지는 세계, 그곳에서 소외된 우리는 바뀌어야 하는 걸까.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괴물은 이러한 질문에 답한다. 몇 번을 보아도 한 치의 의심 없이 사랑하게 되는 영화. 그러므로 그토록 애정하는 작품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시선을 담아 본다. 이 세상 모든 구석의 안녕을 빌며.

 

 

 

괴물을 찾아서


 

괴물이 관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손색없는 플롯 때문일 테다. 작품은 총 3부작으로, 1부는 시오리의 시점, 2부는 호리의 시점, 3부는 미나토의 시점을 다룬다. 이때 어떤 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건은 각기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영화의 개봉에 앞서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괴물은 누구게?”라는 대사가 중심을 이룬다. 그렇기에 관객은 영화의 흐름 속에서 괴물을 추적하게 된다. 그러나 플롯은 이러한 관객의 심리를 활용한다. 분명하게 악인 같았던 인물의 진실이 밝혀지는 과정. 그 끝에 다다를 때 우리는 이곳에 단 하나의 괴물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은 플롯은 다중 시점을 통해 진실의 왜곡에 대해 말하는 일본의 고전 영화 <라쇼몽>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괴물은 그러한 시점을 활용함으로써 관객의 오인을 유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다르다. 인간은 작품의 시점, 그러니까 주체가 되는 인물에게 몰입하는 경향이 강하며, 무엇이든 선과 악을 구분 지으려는 습성을 보인다. 그러니 관객은 괴물과도 같은 존재를 찾아 나서게 된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는 씨네21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작자, 감독, 각본가는 관객들이 ‘이 등장인물을 방해꾼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자’라고 생각하면서 이야기를 움직이도록 덫을 설치한다. 말하자면 우리가 평소에 영화를 보고 ‘이 캐릭터는 좋고 이 캐릭터는 싫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발적으로 함정에 빠진 것이다.” 제작자는 영화에 덫을 설치한 셈이다. 그의 함정에 빠지게 된 순간, 이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다. 어쩌면 사건의 단면만을 믿고 악을 찾으려 했던 나 자신이 괴물일지도 모른다고. 관객이라는 자격을 얻어 스크린 속 저들은 모르는 일을 모두 보았으리라 확신했던 마음은 무색해지고, 그렇게 사카모토 유지가 전달하고자 했던 ‘진실은 바깥에 있을지도 모른다’라는 메시지가 우리에게 닿는다.

 

 

 

상처를 끌어안는 구원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 그리고 각각의 시점 전환이 발생하는 장면들에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언제나 시작에는 화재가, 끝에는 태풍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불과 물이라는 요소가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한 요소임을 시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3부로 갈수록 화재 현장에 대한 거리감은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때 3부의 주인공이자 해당 화재 현장에 있었던 요리는 불과 맞닿는 자다.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해왔던 요리는 늘 위태로웠으며, 그로 인해 상흔을 지니는 인물이다. 마치 그의 팔에 있는 화상 자국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런 요리의 곁에는 미나토가 있다. 흔히 불과 물은 우리가 상반된다고 여기는 존재로, 타오르는 불을 식힐 수 있는 존재는 물이다. 속성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괴물에서 불은 위기 혹은 상처와 혼란을, 물은 구원을 의미한다. 나아가 불은 요리, 물은 미나토를 상징하고 있으며, 이는 그들이 늘 착용하는 의상 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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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와 요리. 이들이 함께하는 3부에서는 앞선 장면들에서는 부재했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순간부터 요리는 적과 청이 나란히 있는 의상을 착용하고 있다.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을 당하며 살아가던 요리에게 미나토는 구원이다. 위태롭게 일렁이는 불을 끌어안는 것은 오직 물. 감독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일본 사회의 혼란 속에서 연대와 사랑을 꿈꾼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세상으로


 

작중에는 ‘새롭게 태어난다’라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미나토 아버지의 제사를 치를 때에도, 죽은 고양이를 땅에 묻어줄 때에도 말이다. 이처럼 요리와 미나토는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빅 크런치’를 기다린다. 빅 크런치란 빅뱅 우주론에 입각한 멸망 가설로, 우주는 자신이 가진 중력에 의해 일정 수준까지 팽창한 뒤 팽창을 멈추고 다시 한 점으로 모일 때까지 수축하는 현상이다. 영화에서 빅 크런치는 모든 것이 원 상태로 돌아가는 순간, 즉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빅 크런치를 위해 그들은 산 속에서 발견한 폐열차 안을 여러 소품으로 꾸민다. 창문에는 별 스티커를, 천장에는 행성 모형을 매달아 자신들만의 우주를 직조한다. 정돈되지 않은 소품들의 배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로워진 둘의 모습 같기도 하다. 이러한 작은 우주는 몰아치는 태풍 속에서 파괴된다. 망가진 소품들과 화면을 가득채운 어둠. 마치 소멸한 우주를 닮아 보인다. 빅 크런치는 그렇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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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들은 새롭게 태어났을까. 영화의 마지막은 태풍이 지나간 풀밭 위를 뛰는 요리와 미나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관객들은 둘의 생사 여부에 대해 저 나름의 다양한 해석을 제시해주었다. 절대적인 정답이 없는 장면이지만, 필자는 그들이 결국은 살았으리라고 믿는다. 새롭지 않게 온전히 그대로. 혼란한 일본 사회에서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택했다. 그러나 바뀌어야 하는 존재는 다름아닌 세계이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게,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세계. 그러니 아이들은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바뀌어야 하는 것은 너와 내가 아닌 바로 세상이라는 바로 그 말을 전하기 위해 당당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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