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이 왔다. 여름은 공포 영화의 계절이다. 관객들은 오싹함으로 여름의 무더위를 날리고자 한다. <씨너스: 죄인들>은 조금 이른 시기에 개봉했다. 지금은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나 상영관 수가 많지 않다. 영화가 완전히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에 관람하길 추천한다. 특히 나처럼 공포 영화와 담을 쌓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적당한 심장의 벌렁거림과 살벌한 영화적 깊이를 꼭 큰 스크린으로 경험하길 바란다.
나는 이 영화를 이렇게 평한다. 공포와 음악을 완벽하게 결합한 복합 장르 혹은 공포 영화를 가장한 음악 영화. 흑인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세밀하게 담아내면서도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코드 진행을 놓치지 않았다. 대형 영화, 대형 배급을 목표로 한 바 오리지널 IP 영화로 북미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둬들였다. 동시에 감독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끝까지 지켜냈다. 이런 균형 잡힌 영화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씨네필뿐 아니라 1년에 한두 편 극장을 찾는 관객까지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영화다.
한국에서의 성적은 다소 아쉽다. 배급사의 소극적 홍보와 스크린 독점 구조 탓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한국 관객은 자국 중심의 역사 지식에 익숙하다. 미국 흑인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대한 배경 지식이 부족하다면 영화의 상징적·은유적 장치들이 마땅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지나쳐 강렬한 전율을 느낄 수 없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동안 배경 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영화의 핵심 메타포인 음악과 신앙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블루스(Blues)'라는 죄악

블루스는 19세기 미국 남부 흑인 공동체에서 태어났다. 초기 가사가 주로 차별과 억압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고 있어 영미권에서 '우울하다'라는 뜻을 가진 'Blue'에서 기원했다. 영화의 배경인 미시시피 델타는 블루스의 고향이라 불린다. 1930년대 미국 남부는 짐 크로 법으로 백인과 흑인의 분리와 차별을 합법화했다. 블루스는 흑인 공동체가 만들어낸 고유한 음악 장르이기 때문에 백인 사회에서 편견이 존재했고 흑인 기독교 사회에서조차 악마의 노래로 배척됐다.
블루스가 불리는 주크 조인트는 흑인 공동체가 만든 술집이자 댄스홀로, 음악과 춤을 통해 하루의 고단함을 잊기 위한 공간이다. 주인공 새미는 델타 블루스의 대표적인 악기인 레조네이터 기타를 치며 블루스를 즐겨 부른다. 레조네이터 기타는 흑인 노동자들이 값싼 금속판을 붙여 만든 시대성이 깃든 악기다. 새미가 그곳에서 ‘I Lied to you’를 부르는 순간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흐려지고 초시대적·범세계적 공간이 펼쳐진다. 진정한 음악은 모든 공동체와 문화를 하나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통칭 ‘죄악의 노래’의 실체는 이렇다. 모두가 즐길 수 있고, 모두가 연대할 수 있는 노래.
주술과 미신의 전복성

스모크 스택 형제는 꿈의 도시, 시카고로부터 돌아온다. 스모크는 그곳에 꿈과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본으로 힘과 권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모크의 아내인 애니는 형제가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이 매일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그녀는 서아프리카 고유 신앙인 후두교 주술사다.
기독교는 흑인의 종교적 공동체 형성에 중심이 되지만 백인로부터 강제된 종교이기 때문에 백인이 흑인을 노예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상징하는 KKK단은 흑인 공동체를 해체하고 폭력을 자행했다. 후두교는 권력 구조 바깥에서 공동체를 보호하고 이들을 억압하려는 세력에 대항하는 영적 수단이 된다.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하는 장치인 뱀파이어 ‘레믹’은 백인이면서 아일랜드인이다. 아일랜드인은 영국의 식민 지배를 겪은 민족이다. 레믹은 흑인 공동체을 향해 함께 억압에 맞서자며 연대를 제안한다. 그가 내민 자유의 손에는 ‘영원한 생명과 부’라는 달콤한 미끼가 숨겨져 있다. 결국 흑인 공동체를 해체하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새로운 폭력 구조일 뿐이다. 영화 후반, 새미는 기타의 원반을 레믹의 머리에 박아 반격한다. 뱀파이어 무리는 태양 아래에서 타올라 사라진다.
진정한 자유

영화는 고유 문화를 중심으로 주류 문화에 대한 저항의지를 드러낸다. 진정한 자유와 공존은 하나의 문화가 다른 문화를 정복하는 형태가 아닌 하나로 융합되는 형태로 가능하다. 영화는 장르적 융합을 통해 소수 공동체와 문화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고전적인 뱀파이어 설정, 단순한 주술 규칙으로 '공포' 장르에 대해 쉬운 방식으로 설득력을 가져간다. 공포는 대중을 위한 오락성을 가진 효과적인 맥거핀 장치로 기능한다.
한국 관객에게도 억압의 역사가 있고, 이를 음악으로 승화한 경험이 있다. 뮤직 프로듀서인 세레나 예란손은 그 예로 <아리랑>과 <강강술래>를 들었다. 숨어 있는 역사적·문화적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재밌겠지만 이 영화에는 한국 관객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여름밤 무덥고 습한 공기를 물리칠 짜릿한 공포 영화를 찾는다면 극장으로 달려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