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상이란 무엇일까.
일상은 반복되는 패턴과도 같다. 그래서인지, 딱히 그렇다 할 기억이 없거나 곱씹을 거리가 없기도 하다.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일상에 너무나도 익숙해져있다는 말일 것이다. 수없이 마주하고, 지나쳐버린 일상의 찰나를 기록 가능하다면 어떨까? <애프터 양>은 그 지점에 대해 파고든다.
영화는 문화 테크노(로봇)인 양이 미카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화면에선 양이 보이지 않고 미카, 제이크, 카이라만 보이는데 이는 양이 미카 가족의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가족들의 맞은편에 서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양의 시선으로 본 미카 가족의 모습인 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양의 시선을 경유하며 영화가 진행될 것이라 암시한다. 이 씬 또한 양의 메모리 중 일부라는 점에서 영화는 “기억”을 다룰 것이라 암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양의 눈은 곧 카메라다. 순간을 촬영하며 메모리 뱅크에 눈으로 본(촬영한) 것들을 기록한다. 하지만 모든 기록이 다 메모리 뱅크에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선별 기준은 알 수 없지만, 추측건대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순간을 기록하는 듯하다. 이는 양(로봇)-인간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생성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인간 또한 경험한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양 또한 기록한 모든 순간을 메모리 뱅크에 저장하진 않는다. 또한, 인간은 기억으로 저장되는 순간 특정 부분의 왜곡이 발생하기도 하고, 기억이 휘발되며 그 생생함이 시간의 지남에 따라 퇴색된다.
하지만 양은 눈을 통해 촬영한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영상처럼 떠올릴 수 있다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는 제이크가 양의 메모리 뱅크를 열어 확인하던 것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
<애프터 양>은 로봇과 인간 사이의 공통점이나 차이점, 인간을 동경하는 로봇, 혹은 로봇은 가지지 못한 인간성 같은 논쟁적인 부분엔 관심이 없다. 그저 “기억”이란 것을 어떻게 바라보며, 다루어야 하는지 초점을 맞출 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애프터 양>은 로봇과 인간 그리고 더 나아가 복제 인간에 관한 판단을 보류한다. 그저 한 “존재”로서 이들 모두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양이 떠난 후, 미카, 제이크, 카이라는 각자 양과 있었던 일화를 떠올린다. 양과의 일화는 모두 다르지만, 기억을 통해 양을 다시 불러낸다는 것은 그를 추억하는 행위로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미카는 입양아라는 설정으로 인한 부모님과 다른 인종적 정체성으로 친구들과의 갈등을 겪었고, 제이크는 자신이 하는 일과 가정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또한, 카이라는 미카를 케어해주던 문화 테크노인 양이 떠난 뒤, 미카의 가정 교육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고 있었다.
세 사람은 양과의 순간을 복기하며 당장 그들에게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나 해결해야 할 것들에 대한 방향성을 잡게 된다.
양의 시선을 따라 발걸음을 향하던 제이크는 양과 꽤 가까운 사이였던 에이다라는 복제 인간 여성을 만나게 되고, 양의 과거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복제인간과 로봇에 은근히 편견이 있던 제이크는 에이다를 만나고, 양의 메모리 뱅크를 보며 자신이 인식해 왔던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깨닫는다. 제이크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잊고 지내던 소중한 순간들을 양의 메모리 뱅크를 통해 확인한다. 영상으로 재생되는 메모리 내의 제이크는 행복했고, 찬란했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의 많은 순간들을 기억하고 그 순간의 감정을 모아 잘 간직하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프터 양>은 그 순간의 지점을 보여준다. 카이라는 양과의 일화를 회상하며 양이 한 말을 곱씹는다. ‘끝은 새로운 시작’. 우리의 하루는 매일 어떻게든 끝난다. 스스로 기억할 수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는 하루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매일의 끝이 모여 인간은 언젠간 삶의 끝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 끝을 통해 누군가는 끝난 이의 삶을 기억한다. 그렇게 매일과 삶은 연결되어 있으며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끝이 아니란 말과 동일하다. 다 잊은 것처럼 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아주 좋았던 날의 추억들처럼 끝난 것으로 보였던 것들도 끝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는 순간을 추억하며 삶을 살아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