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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글 하나를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첫 문장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쓴 문장을 지우지 않는 일이다. 첫 문장을 쓰자마자 또 Ctrl+Z를 누르고 싶은 강한 충동에 휩싸인다. 고비라는 말이 좀 어색한 것 같기도 하고. 문장이 좀 지나치게 긴 것 같기도 하고. ‘아, 역시 이건 좀 아닌가.’

 

쉬지 않는 자기 검열과 못지않은 망설임에 세상에 나오려다 만 글자들이 무더기로도 여럿이다. 디지털 세상의 따뜻한 클릭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식어간 그 글자들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폴더 깊숙한 곳에 처박혔는지. 끝맺지 못한 글들을 조금씩 긁어내어 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디지털 파묘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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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는


 

글은 어떤 식으로든 필자의 생각을 드러낸다. 하다못해 교과서도 어떤 부분을 강조할지에 대한 집필진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에세이류의 글들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확히는, 생각이 입보다는 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 편한 상황에서 손가락을 움직여 그 생각을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고백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은 바로 다음 달 다가오는 때 이른 대선이나 하방을 모르고 떨어지다가 또 반짝하는 미국 증시 같은 것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돌아가고 우리는 그 세상을 돌리니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결국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미완)

 

 

무슨 이야기를 했냐는 질문에 “그냥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고 얼버무리며 답하는 순간 생략된 말들. 이는 아마 영원히 전해지지 않을 편지에 가깝다. 그렇다고 수취인 없는 편지라도 쓰지를 않자니 생각이 맴을 돈다. 할 말은 이만큼 차서 넘실거리는데 아무 공간에라도 옮기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그래서 글을 쓴다. 그러니까 빨래를 돌리다가 일시 정지를 눌렀을 때. 세탁기 물이 빠지기를 가만히 기다리기보다는 그냥 그 동그란 문을 열어 바닥에라도 물을 쏟아버려야겠다는 충동과 유사하다. 생각은 떠올랐으나 전하지 못할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꾹 참기보다는 무어라도 하려는 움직임. 물이 쏟아진 바닥을 닦는 것은 힘들지만 또 한차례 씻겨 나간 깨끗한 바닥은 후회 위로 옅은 뿌듯함을 남기기 때문이다.


 

 

다시 지웠다가


 

이렇게 벅차올라 터져 나온 글들은 대개 창고행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글쓰기 노트에는 이름을 붙이지 못한 감정들이나 다듬기 전의 불만들이 잔뜩 끄적여져 있다. 기가 막힌 결말을 생각해 낸 소설의 작가처럼 글의 마지막쯤 쓰고 싶은 결론이 퍼뜩 생각나 허겁지겁 휘갈겨 내려가다가도 나머지를 어떻게 채워야 할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어쩌면 그 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도.

 

 

속에서 꾹꾹 누르는 거대한 압력 덕에 건조하게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문득 끈적한 감정이 고개를 들 때면 진통제로 막아왔던 고통이 쏟아지듯, 둑으로 막아놓았던 물이 범람하듯 걷잡을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럴 때는 기형도 시인의 시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이 감정은 질투로구나.

 

질투는 나의 힘 (미완)

 

 

창고 속에는 벽에 핀 곰팡이처럼 꿉꿉한, 어디 보여주기 어려운 고백이 쌓여있다. 질투에 잡아먹히려는 찰나에 토해낸 글자들. 토해냈으나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들. 미처 구체화하지 못한 이러한 감정들이 글로는 종종 쉽게 나타나곤 한다. 그럴 때면 화들짝 놀라 멈춰 서 또다시 Ctrl+Z를 꾹 누르게 된다. 너무 내밀해 아직은 세상에 내보내기가 저어되기에. 거꾸로 재생되는 비디오테이프와 같이 글자들은 앞으로 한 칸씩, 또 한 칸씩 사라진다. 단어가 지워지다가 이윽고 문장이 지워질 때, 뒷걸음질 치던 상념들은 다시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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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을 누르지 않은 글은 말하려다 참은 말과 다르지 않다. “음….” 그 사이의 공백같이 본인이 아니면 더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된다. Ctrl+Z는 왜 이리도 누르기 쉽게 서로 꼭 붙어 설계되어 있는지. 인생의 사건들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단어라도 마음껏 되돌리려는 키보드 제작자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는 것은 아닌가.


 

 

Ctrl+Z, 되돌려서 다시 시작하기


 

하지만 이미 세상 밖으로 나온 글은 아무리 꼭꼭 숨기고 되돌려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될 수는 없다.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움튼 씨앗이 도로 싹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것처럼, 한번 적어낸 표현은 마음속 어디든 피어 있다.


 

벌써 글태기가 온 것이냐는 말을 들었다. 요즘 글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고.

 

글태기. 글태기라. 권태기가 올만큼의 깊은 사이였던가 우리가. 연인에게 했다면 뺨을 세 대는 맞았을 법한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본다.

 

글태기 (미완)

 

 

왜 나는 글을 쓰지 않던가에 대한 문장을 대충 끝맺어놓고서는 일단은 생각을 한편으로 치워놓는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몇 번의 글을 더 쓰고 (혹은 쓰지 않고) 권태기는커녕 아직 고백도 안 한 관계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발행을 누르려다 멈칫했던 순간의 영감들은 아주 뒤늦게라도 세상의 빛을 본다. 그러니 글은 딱히 지워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잠시 꾹, 눌러두는 것 그뿐. 구천을 떠도는 글의 영혼은 언제든 다시 손끝으로 돌아올 테니 말이다. 날것의 생각들을 마주할 만큼 충분히 글이 숙성되었을 때, 그럴 때 한 번씩 열어보고 맛을 본다. 아, 지금은 좀 아니고. 그럼, 지금인가?


Ctrl+Z는 지우는 기능이 아니다. 되돌아가 다시 쓰게 하는 기능이지. 지우고 숨기고 어디 귀퉁이에 처박아놓아도 한 번 썼던 글은 마음의 바깥으로 꺼내어진 생각이다. 한 번 꺼내는 것이 어렵지, 다시 꼼꼼하게 들여놓았다 해도 언제 또 바깥으로 비죽 튀어나올지 모른다. 죽은 줄 알았던 글들의 모음집인 이 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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