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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현대 AI를 발전시킨 가장 주요한 화제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나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건 바로 예술”이라는 믿음이라 단언한다.


예술은 감수성이 존재하지 않는 인공지능이 결단코 만들어낼 수 없는 창의력의 영역이라 받아들여졌지만, 오히려 이에 대해 과하게 맹신했기 때문일까. AI는 인간의 창작물을 학습하여 말 그대로 요청하는 창작물을 찍어내고 있다.


물론 이것을 ‘예술 작품’이라 부를 수는 없다. 인간의 ‘예술’이 작품성과 예술성을 지니는 건, 창작자의 의도와 그 생애, 과정이 깊숙이 관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예술 작품을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수용자가 하는 판단의 영역 내에 있으므로, 이에 대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예술로 정의할 수 있는가 역시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

 

각설하고, AI가 예술을 대체할 수 없다는 그 강건한 믿음은 ‘창의성’에 대한 과도한 믿음, 그리고 숭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새뮤얼 W. 프랭클린의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전후 시대 이후 왜 갑자기 급부상하게 되었는지, 그 사회적 의미를 추적하는 책이다.


여전히 창의성은 현대인에게 있어 세련되고 매력적인 개념이며, 더 나아간 미래에도 유효해 보이는 개념이다. 이 책을 들여다본다면, 이 사회가 ‘창의성’이라는 개념 이후 어떻게 성장해 왔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보다 자세히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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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란 정확히 무엇인가?


 

Creavity,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정확히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단어로 하여금 무엇을 기대하는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어릴 적부터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단어에 매우 익숙할 정도로 노출되어 있다.


‘창의력이 풍부하다’와 같은 칭찬은 무궁한 미래로 이어질 것 같고, “유쾌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고, 특별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왔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여기서 등장하는 ‘창의성’이란 사실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20세기 중반 이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폭발적으로 사용된 때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시대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단어는 존재했지만,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전후 이후, ‘현대’에 들어서서야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확장된 단어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천재성이나 영리함, 독창성, 상상력과 같은 단어로는 다 포괄할 수 없는, “새롭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 “예술과 기술, 비범한 것과 일상적인 것을 동시에 설명하는 동시에 사회적인 현상보다는 개인적인 현상으로 축소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전쟁과 창의성 


 

언뜻 언어학과, 역사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일본에게서 독립한 지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의 흔적은 여전히 언어 속에 잔존하고 있다. 오뎅, 다라이, 구루마 등이 그 예이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결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강력한 나라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와 정의의 수호자’와 같은 권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전쟁 이전 1929년부터 41년까지, 암흑기와 같던 경제 대공황을 겪어왔고 전쟁을 발받침 삼아 부흥하게 되었음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이들의 승리는 정의에 목적한 듯 보이고, 언뜻 경제적인 성장이나 권위는 이에 대한 보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자부심은 추후 베트남 전쟁에서 산산조각나게 된다.


미국의 라이벌 격이었던 당대 소련은, “재능을 징발하는 식으로” 기술적인 우위를 확보해왔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었다.


이들에 대항하는 격으로,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처럼 되지 않으면서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들의 패권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미국이 내세운 자유주의적 가치와, 문화적 목적과 개인에 대한 존중을 내세우는 방식으로 정당화되었다.


더불어 신성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도덕성과 영성을 짓밟는데 일조하였다.


이러한 시대적인 결핍에 가장 해답을 주는 것은, 바로 합리성이나 효율성이 아닌, ‘창의성’이었다.


블루칼라 노동자가 아니라 화이트 칼라 노동자들의 파이가 더 넓어지고, 풍요로운 시대에 있어 실용성은 당연할진 몰라도 매력적인 개념은 아니었다.


생산이 아니라 ‘혁신과 마케팅’이 우선시되는 시대적 흐름에 있어, ‘창의성’은 생산성을 내포하면서도 새롭고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인 감각을 주는 개념으로 확립되었다.


미국을 상징하는 ‘아이언맨’처럼, ‘창의성’이라는 말은 개인주의적이면서도, 타자를 향해 열려 있는 영웅적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창의성’이라는 개념은 전쟁으로 한순간 바뀌어 버린 시대가 만들어 낸 가치이며,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이다.

 

 

창의성은 우리 시대의 공통된 감수성을 담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전후 시대와 오늘날을 잇는 다리로 볼 수 있다. 창의성은 한편으로는 인간이 스스로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찬양하는 전형적인 현대적 가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창의성은 진리에 대한 강한 잡착이 없고 진보라는 목표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포스트모던적 가치이기도 하다.

 

- 326p 중.

 

 

 

우리는 창의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프랭클린의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는 1장부터 9장에 걸쳐, 이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 시대적인 정신에 기반했음과,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창의적이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깊은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작가가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잘못되었으며, 이것을 폐기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이 창의성이라는 개념이 다방면으로 사용될 수 있는 도구이며, 더 활용될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감지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에 대한 왜곡된 인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그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성이라는 말을 당연하게 숭배해온 이 시대에, 이 책은 그것이 결코 자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들춰낸다. 창의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논의는 책의 각 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 이 책은 ‘창의성’에 집착하는 이 시대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 보다 잘 볼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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