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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 특별전’은 제목만으로도 기대를 자극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전시는 단순한 ‘미술 전시’를 넘어, 미술사의 흐름과 정신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 여행 같은 기획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부터 시작해, 인상주의, 아방가르드, 현대미술,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당대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에 걸친 시기와 지역, 그리고 사조를 아우르는 143점의 작품은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엮여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포스터_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5.16~8.31).jpg

 

 

전시장을 돌며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은 모든 미술 사조가 기존 사조에 대한 불만 혹은 반항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었다. 고전주의의 균형과 이상미에 반기를 들고 감정과 주관을 내세운 낭만주의, 감정의 과잉에서 벗어나 사회 현실을 담고자 했던 사실주의, 그저 대상의 형태를 넘어 빛의 순간을 포착하려 한 인상주의, 색채 자체의 자율성을 실험한 후기 인상주의와 점묘법까지, 예술의 역사란 곧, 이전 질서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의 역사였다. 기존의 미적 기준과 형식, 나아가 정치적, 사회적 질서에 의문을 던진 화가들의 불편함이 축적되어 하나의 시대를 끝내고, 다음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예술은 발전했고, 그 전복과 실험의 흔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전시의 흐름은 단순한 시간 순이 아니라, 각 사조 간의 대립과 전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기획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상주의 이전과 이후를 명확히 나누고, 그 사이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후기 인상주의의 흐름을 짚어가는 구성이 그러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의 감정적 회화를 부정하며 등장했고, 모네와 드가는 '지금 이 순간'을 붙잡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했다. 드가는 특히 무희들의 움직임, 찰나의 동세를 통해 회화에 시간성을 부여하려 했으며, 그의 일부러 생략된 구도는 오히려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점묘법으로 이어지는 시냑의 라로셀이 나타나는 순간, 우리는 예술이 색 자체를 해체하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음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했던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그림이었다. 나는 예전에 그의 평전을 읽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폭력과 욕망, 고통과 절망을 캔버스에 뒤엉킨 살점처럼 쏟아내는 그의 작품 세계는 단순히 '기괴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밀도를 지니고 있었다. 회화라는 형식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펼쳐낸 화가가 또 있을까.

 

그의 삶 또한 작품만큼이나 격렬하고 극단적이었다. 종교적인 유년기, 동성애자라는 정체성, 방탕하고 파괴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그 모든 삶의 잔재들이 그림 속에서 한데 뭉쳐 으스러지는 듯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나는 그를 단순히 좋아한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분명 가장 깊이 각인된 화가 중 하나다.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안고 전시장에 들어섰다. 스크린이 아닌 실제 화면, 인쇄물 너머의 질감과 붓질, 그 기묘한 색채를 직접 보는 순간, 베이컨 특유의 강렬한 정서가 한 겹 한 겹 내 게 덮쳐오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전시 후반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작품은 점차 추상화되고, 사회적 맥락과 더 깊이 연결된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눈에 들어온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와 억압된 시선을 지닌 이들의 작업은, 그 자체로 저항의 예술이었으며, 표현의 자유가 단순한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던 이들의 기록이었다.

 

모네와 앤디워홀이라는 익숙한 이름에 이끌려 전시장을 찾았지만, 정작 마음에 가장 깊은 흔적을 남긴 건 이름조차 처음 들어보았던 예술가들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좋은 전시의 미덕 아닐까. 우리는 가끔 예술을 ‘아는 만큼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모르기에 더 자유롭게 감동받을 수 있다.

 

이 전시는 단순히 ‘미술사’의 굵직한 줄기를 훑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늘 질문이 있고, 충돌이 있고, 불편함이 있다. 예술은 언제나 질문에서 시작되며, 질문은 불만에서 나온다. 시대의 질서와 형식에 대한 불편함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고, 그것이 문화의 한 축을 바꾸어 왔다. 그리고 이 전시는 그 ‘변화의 흔적’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과거 예술가들이 변화에 맞서고, 반응하고, 도전했던 흔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예술이 단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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