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콕콕 아프다. 어제 아침, 손에서 미끄러진 헤어드라이어가 얼굴을 강타했다. 이마와 코 사이에 피가 났고, 그 자리에 파랗게 멍이 들었다. 너무 바보같은 일이었기에, 처음에는 스스로를 탓하고 싶었지만, 바보 같음의 기준치를 훨씬 넘은 그러한 상황에서는 비난의 마음조차 사라졌다. 나는 오히려 폭소하는 바보처럼, 약간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마저 말렸다.
사실 어제 내가 정말로 비난하고 싶었던 것은 헤어드라이어를 놓친 바보가 아니라,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 온 ‘게으른 인간’이었다. 패기나 도전 정신 없이, 세상의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탐구하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마음이 태평한 적이 없었기에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 이름 붙이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을 비난하고 싶었다. 나는 얼마나 무거운 몸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나는 어딘가에 묶여 있기나 한 걸까?
하지만 비난하는 마음이 슬며시 올라올 때쯤 나는 비난하기를 그만두었다. 좋아하는 연주자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게으른 사람의 남은 힘으로는 비난하던가, 슬퍼하던가 둘 중 하나만 할 수가 있었다. 나는 언제든지 하고 있는 비난은 미뤄두고, 하루쯤은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를 생각하기로 했다.

알프레드 브랜델의 음악을 접한 것은 영화 ‘불멸의 연인’을 보았을 때였다. 어린 나이에 본 영화는,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불멸'과 '연인'으로 이루어진 영화의 제목 때문에 나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특히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베토벤 소나타'는 영상과 더불어 영화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기억하게 했다.
나는 그 후부터 베토벤 소나타를 찾아들었다. 몇 개의 베토벤 음반이 있었지만 그중 계속 듣게 되는 한 음반이 있었다. 그 음반의 연주는 다른 베토벤 음반의 연주와 비교했을 때 어떠한 ‘과잉'이 없었고, 진지함과 균형이 있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 음악들은 너무 반복해서 들은 나머지 나의 일상의 배경 음악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다 어느 날, 누군가가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 영상을 보내주었다. 그 영상 속에서 음반으로만 들었던 알프레드 브렌델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 안경 너머의 눈빛, 건반을 내려다보는 진지한 표정, 자신이 연주하는 음악을 존중하는 듯한 태도. 그의 모습은 연주만큼이나 인상 깊었고, 영상을 보내준 이에 대한 나의 감정으로 인해 내게 더욱 특별한 존재로 남게 되었다.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73 "Emperor"
Beethoven: Piano Sonata No. 8 in C Minorm Op.13 "Pathetique"
Schubert: 4 Impromptus, D. 899, Op. 90 : No, 3 in G-Flat Major. Andante
알프레드 브렌델은 흔히 떠올리는 천재 연주자의 전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정규 음악 교육을 오래 받지도 않았고,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며 주목받은 적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체계 바깥에서 스스로 음악을 익히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보와 씨름하며 연주를 만들어낸 연주자였다.
그가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70년, 영국에서 열린 베토벤 리사이틀 무대였다. 이 공연을 계기로 브렌델의 이름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대형 음반사 필립스와의 본격적인 녹음 작업이 시작되면서 그는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브렌델은 "연주자는 작곡가와 음악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단순히 감정을 실어 연주하는 것이 아닌, 악곡의 구조와 작곡가의 의도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깊이 이해함으로써, 음악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같은 태도는 그의 연주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그의 연주는 화려한 기교나 개성이 두드러지기보다는 지적이고 분석적인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브렌델은 동시에 "음악은 감정에서 시작해 감정으로 끝난다"고도 했다. 이는 그의 예술 세계가 단순한 분석이나 이성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의 음악은 언제나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모든 것을 삼키지 않는 그 지점에서 존재했다.
단순한 연주자가 아닌 '사유하는 예술가'였던 브렌델은 깊은 사유를 통해 음악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것을 청중에게 투명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연주를 무대 위에서 들을 수 없지만, 다행히도 그는 많은 녹음과 글을 남겼고, 그 안에서 그의 진지한 탐구와 사유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다.
그의 해석은 여전히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연주는 어디서에서 시작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