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다. 신비한 행성을 뒤엎으며 친구들과 모험을 떠나는 [타라 덩컨], 학창 시절 한창 유행했던 정령, 요정 소재의 [정령왕 엘퀴네스], [숲의 종족 클로네], ‘중세 판타지’를 처음 접했던 [SKT], 그리고 너무 어렸을 때 읽어 기억나지 않는 [황금나침반]과 같은 고전 판타지들까지. 책을 펼치는 손길이 곧 내 머릿속을 한 꺼풀 들어내는 것 같았다. 새로운 판타지의 책장을 열어젖힐 때마다 내 몸의 문이 열려, 또 다른 내가 솟아났다. ‘나’는 책 한 장만큼의 무게로 내가 발을 딛고 사는 곳에서 아주 먼 별세계로 모험을 떠나곤 했다.
안타깝게도, 옛날의 이야기다. 어느덧 어린 어른이 된 내 인생은 아주 무겁다. 머리를 한 겹 들춰봐도 ‘나’는 솟아나지 않고 그저 움츠린다. 책은 모험이 아닌 시험을 위해 열린다. 100쪽, 아니 200쪽도 앉은 자리에서 해치우던 호기심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는 열 쪽만 읽어도 뇌가 지쳐 흐물거린다. 도서관의 800번 서가에 가지 않은 것이 어느덧 8년이나 되었다. [타라 덩컨]의 1쇄를 모으던 어린이치고는 재미없는 성장기를 거친 것 같다.
어른의 판타지란 시시콜콜한 웹소설을 읽는 5분 남짓의 시간이고, 짧은 영상 콘텐츠로 화려한 액션을 지켜보는 백만 번의 5초다. 누군가 영화관에 나를 가두지 않는 이상 이제는 진중한 이야기가 조금 어렵다. 분명 곧잘 했는데,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린 아이가 된 것 같다. 유아 풀에서 바닥을 짚고 다니듯, 가볍디가벼운 여가생활만 골라 즐기고 있다. 가끔은 뇌가 너무 무거워서 가누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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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마법사]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정말 오랜만에 떠난 모험이다. 제목부터 조금 신이 나 덥석 수락한 문화 초대이기도 하다. 보통 서양 판타지에 등장하는 기사와 마법사 조합에 ‘기병’이라는 변주를 준 것이 흥미로웠다. 최지수 작가의 휘황찬란한 표지 작업이 ‘이 책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인상적인 간만의 여정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호기롭게 책을 펼쳤다.
아, 아무것도 찾아보지 않았던 것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이렇게나 멋진 마법사, 그리고 이렇게나 근사한 기병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뾰족하게 뽑을 만한 장점 없이 기승전결이 전부 몰입도 높았던 책이라, 한 마디로 [기병과 마법사]를 정리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어떻게든 압축해 보자면, “마법 같은 생기”로 내 시간을 증발시킨 신선한 이야기다. 여전히 내 머리는 무겁고 근육은 전부 굳어 그 어느 곳으로도 날아갈 수 없지만, 뻑뻑하던 눈이 산뜻해졌음에 감사한다.
김초엽 작가의 추천사를 인용했다.
다시 보아도 정말 멋진 표지다.
스포일러 없는 후기
이 재미있는 기승전결을 아직 이 책을 읽기 전인 예비 독자들에게 흘려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으므로, 이야기의 흐름을 제외한 채 생각하기 좋은 요소들을 열심히 추려보았다. 워낙 인상적인 세계를 바탕으로 쓰인 서사라 그런지 간단한 톺아보기도 즐거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몽골 여행이 가고 싶어
[기병과 마법사]는 시류를 참 잘 탄 이야기다. 요새 내 또래들 사이에서 몽골 여행이 정말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가야 한다’라며 너도나도 몽골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을 얹을 정도다. 이야기의 주 배경은 드넓은 초원으로, 주인공의 이름과 주민들의 풍습, 높고 깊은(단어 사용의 실수가 아니다) 하늘과 그 위를 달리는 말이 마치 선망했던 풍경을 활자로 옮겨 놓은 것만 같았다. 체력이 부족해 가지 못했던 스텝 기후 초원 지대로의 여행을 기병과 마법사가 대신 전장을 누비며 안내해 준다.
판타지의 돌파
읽는 내내 작가의 나이가 궁금했다. 어떻게 청년 세대가,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의 근원을 이렇게나 잘 잡아내 넣었을까? 작중 인물들이 나와 또래(인 것 같았다.)인 터라 더 몰입됐다. 나의 일기장 속 압제과 반발, 두려움과 염세, 체념과 혼란, 흐릿한 소속감과 외로움이 주인공들의 마음이라는 세탁기에서 털털 돌아가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원래 있던 감정들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 근 반년간 내 일기장을 더럽힌 건 세상이다. 세상이 내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그 세상은 독재를 위한 폭정과 선동을 멈추지 않는 빨간 넥타이고,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수십, 수백을 학살하는 추악한 웃음이며 이웃을 이해하고 존중하지 않으려 기를 쓰는 입가의 턱 근육이다. 사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 애매하게 꿈틀거리는 발가락이기도 하다.
작가 배명훈이 만들어낸 이 독특한 판타지 세계는 이런 마음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을 위한 연극 같다. 이 책에서 어떤 신나는 전투를 하든, 어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든 내가 사는 현실은 그대로 슬프다. 때때로 읽던 책을 덮고 일을 할 때면 속상함이 생각을 치고 올라온다. 그래도,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내 마음이 초원에 있다. 기병의 잘 훈련된 군마 옆에서 함께 달리며 폭정을, 파괴를, 소멸을 돌파한다. 뻥 뚫린 하늘 같은 마법이고, 판타지이기에 누릴 수 있는 상쾌함이다.
대하드라마를 그리워했을지도
[기병과 마법사]엔 전투 장면이 많다. 여기까지는 스포일러가 아니길 바란다. 제목부터가 ‘기병’이잖아! 책 속의 인물들은 제각기 다른 전략으로, 매번 다른 형세로, 때때로 이기며 전투를 이어 나간다. 누군가에게는 복잡하고 부담스럽게 다가올 요소이긴 하지만, 기세로 쭉쭉 밀며 읽어내리는 나에게는 이보다 잘 읽히고 재미있는 연출이 없다. 진영의 변화? 이해하지 못했다. 전술 변경의 의의? 내가 병법을 알아 무엇하리! 재미있는 것은 이 많은 사람이 움직이는 사이 첨예하게 날을 세우는 사고의 대치고, 둑이 터지듯 쏟아지는 병사들의 함성이다. 실제 사람이 다치지 않는 가상의 전투를 읽으며 끓어오르는 아드레날린을 느끼는 과정이 참 좋았다.
이 책의 전투 장면에서 유난히 옛날에 크게 유행했던 대하드라마가 생각났다. 구체적으로는 멋진 투구를 쓴 장군이 진격을 외치자 마치 파도가 몰아치듯 앞으로 나아가는 병사들의 인산(人山)이다. 그런 장면이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전시 해설을 진행할 때마다 관람객의 나이에 상관없이 ‘어떤 드라마에서 이 투구와 갑옷을 그대로 따와 만들어 장군 역할의 배우를 입혔대요~’ 하고 언급하는 우리 박물관의 붉은 갑옷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제는 좀처럼 만들지 않는, “이랴!” 하고 “이야!” 하는, 그런 이야기가 그리웠나 보다.
오랜만에 어른스러운 아이로 돌아간 기분이다.
뒤늦게 찾아보니 이미 배명훈 작가의 소설 [미래과거시제]를 읽은 적이 있었다. 어쩐지, 분명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어 ‘아하!’ 싶었다. 글을 정말 잘 쓰고, 독자의 마음을 슬그머니 움직일 줄 아는 멋진 작가다. 친구에게 배명훈의 [기병과 마법사]를 읽었노라고,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은 오랜만이라고 하자마자 ‘아, 배명훈’! 하며 다른 책을 추천받았다. 조만간 그 책을 들고 다시 찾아올 수도 있겠다.
잔잔히 흔들리는 수풀 같은 책이다. 작가의 창작 세계관 속 낯선 어휘들이 있는 힘껏, 그러나 고요한 수묵화처럼 초원을 펼쳐낸다. 그 풍경에서 느껴지는 풀 내음이, 즐거움이, 감동이 마치 시원한 레모네이드같이 톡톡 터지듯 내 안으로 들어와 지금까지도 상쾌하다.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난 뒤, 그 끝물에 남은 달콤함이 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아직도 들뜬 마음을 안고, 기병과 마법사가 함께할 초원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