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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인 교감을 원하는 남성, 정서적인 교감을 원하는 여성


 

틈만 나면 여성의 옷을 벗기려 하며 관계를 요구하는 남성과 그의 요구를 끝까지 거절하며 대화를 시도하는 여성.

 

언뜻 보면 소위 ‘티키타카’가 잘 맞는 연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파트리샤(진 세버그)의 말처럼 그들은 각자 할 말만 할 뿐, 서로의 물음에는 원하는 답을 주지 않고 상대방의 말에는 귀 기울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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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바뀌는 대화 주제,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말들의 연속.

 

러닝타임 89분 내내 두 남녀의 대화만 들리지만, 그 말들은 마치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인상을 준다. 이 지점은 해당 작품이 개봉 당시 일부 관객들에게 외면당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 속 연인들의 대화를 가만히 떠올려 보면, 파트리샤와 미셸(장 폴 벨몽도)의 대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로의 말이 완벽하게 맞물리는 순간을 경험하는 연인들은 몇 없다. 아니, 어쩌면 대화가 잘 통한다는 생각조차 그들의 착각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가장 전형적인 남성적 사고를 지닌 미셸과 여성적 사고를 지닌 파트리샤를 등장시켜 평범한 남녀의 대화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대화는 일상 속 연인의 대화와 다를 바가 없기에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비록 경관을 죽이는 주인공의 설정 때문에 다소 판타지적인 요소가 섞여 있긴 하지만, 두 남녀의 대화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누벨바그의 대표작,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는 1960년에 제작된 작품으로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와 함께 누벨바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누벨바그의 대표작답게 남녀의 사랑이라는 일상적인 소재를 영화 속으로 끌고 들어와 자유분방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나에게 유독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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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결이 완벽한 서사와 명확한 답을 제시하는 <금지된 장난>, <공포의 보수>,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400번의 구타>를 지나 <네 멋대로 해라>는 누벨바그의 정수를 보고 있는 듯하다. 정형화된 기존 영화 문법을 의도적으로 거스르며 모든 클리셰를 부정한 채 독자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바로 ‘자유분방함’이다.

 

형식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통제되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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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시퀀스부터 주인공 미셸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카메라 너머에 있을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온몸으로 누벨바그 영화임을 알리고 있는 셈이다.

 

핸드헬드 기법으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화면과 주인공의 앞을 서슴없이 가로지르는 행인들. 심지어는 관객에게 지금 영화 촬영 중이라는 사실을 대놓고 알리기라도 하는 듯 카메라를 빤히 응시하는 사람들. 그리고 점프 컷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단절시켜 관객의 몰입을 단숨에 깨버리는 시도들까지.

 

전체적으로 자유로우면서도 어딘가 위태롭고 불안한 영화의 분위기는 두 남녀 주인공이 자유로운 동시에 방황하는 청춘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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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샤는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미셸에 대한 자신의 진심을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는 미셸이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원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기를 원하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그를 경찰에 신고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미셸은 노골적인 자유의 상징이다. 모르는 사람의 차를 쉽게 훔치고 경찰을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등 사회의 규율과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그는 현상금이 걸린 지명 수배자로 형사들에게 쫓기는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3번 만난 여성에게 함께 이탈리아로 도망가자고 제안하는 여유까지 챙긴다.

 

이 대목에서 그가 사람과의 관계, 더 나아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도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초반 여성의 집에서 그녀의 눈을 속인 사이에 돈을 훔치는 장면만 봐도 그가 관계를 얼마나 가볍게 대하는지 알 수 있다. 미셸의 이런 자유로운 성향을 알기에 영화 말미에 그가 파트리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강한 울림을 준다.

 

기존의 틀을 해체하는 개성적인 연출과 자유롭지만, 불안한 두 청춘의 등장은 형식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시종일관 자유롭지만 동시에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 영화는 결국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 작품이 누벨바그 시기에 제작된 영화라는 점, 그리고 감독이 생전에 남긴 여러 인터뷰를 미루어 보아, 오히려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두 남녀의 행동들과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말들이 이미 말해주고 있듯이,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강요하는 여타 영화들과 달리 끝내 어떤 메시지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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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만 하고 있었어"

 

영화 후반 파트리샤가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뒤 미셸에게 건네는 대사다.

 

영화의 주인공인 두 남녀조차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고, 상대의 강도와 절도를 보고도 눈감아주는 여자조차 자신의 마음에 끝내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이들의 사랑과 영화에 대해 정답을 내릴 수 있을까.

 

오히려 누벨바그가 추구해 온 정신 그대로 영화가 풍기는 자유로운 분위기와 흐름을 따라가며, 있는 그대로의 감정과 관계를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영화는 현실적인 대화와 사랑의 방식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영화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가 알고 있듯 현실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 대신 진짜 이야기, 그리고 진실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네 멋대로 해라>는 관객 각자가 저마다의 결말을 만들 수 있도록 내버려둔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이 영화가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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