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출판사가 몇 있고 그 중 하나가 제철소다. 제철소는 ‘일하는 마음’ 인터뷰집 시리즈를 출간하는데 나는 그중 <번역하는 마음>, <출판하는 마음>, <문학하는 마음>을 읽어보았다. 앞의 두 가지야 번역하고 출판한다는 말이 있으니 이상할 것이 없지만, ‘문학하다’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책을 읽기에 앞서서도, 책을 읽으면서도, 책을 읽고 나서도 궁금해했고 끝끝내 명쾌한 답을 찾지는 못했다. 동시에 어렴풋이 알고 있다. 하지만 아냐 모르냐 물으면 모른다고 답할 것이다.
이번에 <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라는 책을 받고도 비슷한 궁금증을 가졌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은 해금 연주자이면서 포스트록 밴드 ‘잠비나이’의 멤버라는 오묘한 정체성을 가진 김보미 연주가의 에세이다. 국악과 록의 만남도 흥미롭지만, 잠비나이는 결성 계기도 독특하다.
‘무엇을 해보자’가 아닌 ‘무엇은 하지 말자’로 모이게 된 셈이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기’ 위해서 자주 만났다.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늦도록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p.114)
학교를 졸업한 뒤 연주 아르바이트에 지친 사람들이 만나 이뤄진 밴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라는 게 재밌게 느껴졌다. 내가 최근에 한 생각과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얼마 전까지 나는 나 스스로를 좋아하는 것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냥 싫어하는 것, 가리는 것이 많아서 그 모든 걸 제하고 나니 좋아하는 것이 뚜렷해 보였던 게 아닌지 의심스러워졌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갈 피해 간다고 해서 그게 꼭 도망은 아니다. ‘어떠한 곳’뿐만 아니라 ‘어떠하지 않은 곳’도 목적지가 된다. 무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얼 하지 않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무언가가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조금 위안이 되었다.
잠비나이의 장르가 흥미롭고, 결성 계기가 독특하다면, 작명 계기는 김이 다 빠진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비나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순우리말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호피폴라처럼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언어의 단어라거나.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잠비나이, 팀 이름으로 어때? 뜻은 없어.” “좋아.”
(p.118)
잠, 비, 나, 이. 불현듯 떠오른 이 네 글자를 팀 이름으로 제안하자 다른 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저 ‘좋아’는 잠비나이라는 이름 자체가 좋다는 뜻이기도 했겠지만 동시에 ‘뜻은 없어’에 대한 답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당당하게 무의미한 이름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그런 모함을 해본다. 말의 뜻이 아닌 소리에 집중할 때 느낄 수 있는 맛, 이걸 캐치한 이름이 밴드에 가장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위에 쓴 내용은 모두 책의 2부에 나오는 이야기다. 책의 1부에는 저자가 처음 국악에 빠지고 악기를 시작한 이야기, 혼란과 갈등을 겪으면서도 음악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키워나간 이야기가 담겨 있고, 2부에서는 잠비나이를 결성한 뒤 지나온 굴곡을 말한다. 1부는 전통 음악, 2부는 대중음악에 중점울 둔다. 나에게는 국내외의 큰 록페스티벌에 참여하고 사람을 만난 과정이 담긴 2부의 이야기가 더 재밌었다. 해외에서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 먼 길을 떠나고, 또 우연히 도착한 외국의 여행지에서 한국 공연 팀을 보던 개인적인 경험이 떠올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2부의 제목 ‘두 줄 사이를 오가며’에서 알 수 있듯, 저자에게 국악과 대중음악은 뚝뚝 분리된 것이 아니다. 그 사이를 오가는 것이 김보미 연주가의 음악이고 삶이다. 두 줄 사이를 오간다는 표현은 조금 식상한 듯도 싶지만 사실 이 책에는 가장 알맞은 표현이다. 저자의 전공인 해금 또한 두 줄만을 사용하는 찰현악기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저자가 해금이라는 악기를 처음 고르게 된 사연도 잠비나이의 결성 계기와 비슷하다. 국악에 관심을 갖고 전공 악기를 선택해야 했는데 너무 큰 악기와 폐활량이 중요한 관악기를 빼고 나니 남은 것이 해금이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평생의 직업이자 인생의 재료가 되었다. 심지어 해금은 두 줄밖에 없는 데다가 누르는 대로 소리가 나는 예민한 악기라고 한다. 저자는 두 줄 사이를 섬세하게 오가며 선율을 만들어내는 일의 전문가가 되었다. 해금의 바깥 줄과 안 줄 사이, 전통 음악과 대중음악 사이, 무대와 일상 사이. 그 스펙트럼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낼 수 있다.
이 책은 ‘음악을 한다는 것’은 나아가 ‘삶을 산다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몸으로 부딪혀 끝내 알아낸 이의 담담한 고백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p.7)
전에 ‘문학하는 마음’이라는 단어 조합을 봤을 때는 그것이 ‘표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또 표현하기는 나를 말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단어로 정리하기를 망설였다. 왜냐하면 그랬다가는 ‘번역하는 마음’도, ‘출판하는 마음’도, 내가 아직 읽지 않은 다른 ‘일하는 마음’ 시리즈도 모두 다 ‘표현하는 마음’이 되어 이들의 차이를 알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까지 읽어 보니 결국 표현하는 마음이 맞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음악하는 마음도 표현하는 마음이다. 이 모든 것들의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먼저 눈에 들어와 한데 묶이는 이유는, 이들 모두가 표현하는 마음, 나를 말하는 마음, 그래서 삶을 산다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